[하재봉의 영화사냥]천군

한민족의 현재와 과거를 뒤섞고 있는 퓨전사극 ‘천군’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민족의식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둘러싸고 국제적 갈등을 빚고 있는 현재의 한반도 위기를, 과거의 위기와 연결시켜 해법을 찾고자 하는 데서 영화는 출발한다.

과거의 위기란, 조선시대의 가장 큰 민족적 위기였던 임진왜란이다. 그러나 ‘천군’에서 임진왜란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 영화의 라스트 신에서 명량대첩의 전투를 앞두고 있는 이순신의 모습이 잠깐 보일 뿐이다.

그렇다면 ‘천군’에서 다루고 있는 임진왜란은 무엇인가. 더 섬세하게 말하자면, ‘천군’에서 다루고 있는 역사적 과거는 임진왜란이 아니라, 임진왜란에서 조선을 구한 민족의 영웅 이순신의 낭인시절이다. 이순신은 1572년 그의 나이 28세에 무과시험에서 낙방한다.

그가 무과에 급제한 것은 4년 뒤인 1576년 그의 나이 32살 때였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늦게 무과시험을 통과한 그의 인생에서, 그 직전의 4년간의 흔적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천군’이 착안한 것은 바로 그 시기다.

‘천군’은 2005년 10월, 남북한이 극비리에 공동으로 개발하던 핵무기 비격진천뢰의 완성을 앞두고 그 사실이 미국에 알려져 핵무기가 회수되게 된다. 북한장교 강만길(김승우 분)은 핵물리학자 김수연(공효진 분)을 납치해서 비격진천뢰를 연구소에서 탈취하고, 그 뒤를 남한장교 박정우(황정민 분) 일행이 뒤쫓는다. 캄캄한 압록강 위에서 그들이 대치하고 있을 때, 433년 만에 지구를 스쳐 지나가는 엄청난 혜성의 영향으로 그들은 1572년의 압록강 주위로 시간이동하게 된다.

이것이 ‘천군’의 도입부다. 핵 개발을 하던 남북한 군인들이 과거로 돌아가서 만난 것은 낭인 이순신(박중훈 분)이다. 무과 시험에 떨어지고 압록강 주변의 빈 집에 기거하면서 중국산 인삼이나 밀매하던 보잘 것 없는 이순신은, 그를 알아본 남북한 군인들에 의해 다시 힘을 얻게 된다.

즉 자신의 삶을 포기했던 낭인 이순신이, 과거로 간 남북한 군인들의 도움으로 여진족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국경 주변의 조선 사람들을 지키며 다시 무과시험에 도전하려는 용기를 얻는다는 것이 ‘천군’의 큰 줄거리이다.

‘천군’의 영화적 아이디어는 재미있다. 현재의 위기를 과거의 위기를 통해 되비쳐보는 시도도 좋고, 이순신을 뛰어난 지략을 가진 성웅이 아니라 초라한 낭인시절로 등장시킨 것도 좋았다. 그러나 ‘천군’에서 넘쳐 나는 것은 지나친 국수주의적 발상이다. 여진족과 대치하는 국경 마을, 또 장차 왜군과 대치하는 조선 수군의 모습을 통해, 현재 한반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 하고 싶어 한다.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는 것보다, 남북한이 힘을 합쳐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방법이 아닌가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현실 문제는 예민하다. 정공법으로 이 문제를 들고 나가기에는 위험하다. 따라서 제작진들은 퓨전 사극이라는 방식으로 현실 문제를 우회적으로 제기하려고 한다.

‘천군’은 지나친 민족적 동일성 확보와 국수적 발상이 지배하고 있어서, 재미있는 소재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경직되어 있다. 문제 제기는 적절하지만 해결 방식은 천편일률적이다. 섬세한 고민보다는 대의명분에 의한 우직한 해결이 등장한다. 이것이 영화의 기본 발상에는 동의하게 하지만 정서적으로 동의할 수 없게 만드는 부분이다.

어려운 주제를 풀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시나리오와 일급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힘이 있는 중견배우들의 연기 때문에 ‘천군’은 벼랑으로 추락하려는 아슬아슬한 위기를 여러 차례 견디어내고 있다.

퓨전사극의 재미는 현실과 과거의 정교한 교차와 뒤섞임이다. 그 미시적 부분에서 웃음이 터질 수 있는 희극적 요소를 확장시키고, 또 주제를 밀어붙이는 거시적 힘은 굴곡 있게 끌고나가는 입체성이 확보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된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