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백의 武林紀行](21)최초의 무기 `원시적 창`

후지와라 요시히데(藤原芳秀)라는 일본인 만화가가 있다. 무술과 만화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일본인으로 중국권법인 팔극권을 익혀 중국까지 건너가 할아버지를 찾고 소림사에서 수련도 하는 등의 내용으로 전개되는 ‘권아(拳兒)’, 혹은 ‘권법소년’이라는 만화와 그 작가를 잘 알 것이다. 한 때 일본과 한국에서 실전 최강의 권법으로 팔극권 열풍이 일어나는 계기가 된 만화와 그 작가다.

그런데 사실 이 후지와라 요시히데는 그림만 그린 것이고 ‘권아’의 스토리를 제공한 마츠다 류치(松田隆智)가 이 방면으로는 더 유명하다. 그는 실제로 팔극권의 고수로 알려져 있고, 중국에서도 보기 드문 중국무술의 역사를 저술하기도 했다.그의 ‘중국무술사’에 의하면 중국의 사서에서 최초로 무기, 병기에 대해 언급한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 오제본기’다. 여기에는 ‘황제가 간과(干戈)를 병사들에게 훈련시켰다’는 언급이 있다. 간과는 원시적 형태의 창을 말한다. 또 ‘사기 세본’에는 ‘치우는 과, 수, 극(戟), 존모(尊矛), 이모(夷矛)라는 다섯 가지 병기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언급한 과, 수, 극, 존모, 이모 역시 모두 원시적 형태의 창이다.

이건 인류학이나 고고학의 범주에 들어가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이 최초로 사용한 무기는 아무런 가공이 되어 있지 않은 나뭇가지, 혹은 돌멩이일 것이다. 중국 무술계의 금언 중에 ‘곤(棍)은 백병지모(百兵之母)’라는 것이 있다. 곤, 즉 몽둥이가 모든 병기의 어머니라는 것인데 이러한 인류학적 사실을 말해주는 금언인 듯하다.

이런 몽둥이와 돌멩이에서 한 발만 더 나가면 창이 된다. 창은 즉 뾰족한 돌멩이와 몽둥이가 조합된 병기가 아닌가. 이렇게 극히 초기에 탄생한 데다가 구조적으로도 단순한 병기에 불과한 창은 사용법을 익히기가 쉽고 위력은 강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어서 고대 뿐 아니라 근세에 총이 도입되기 전까지 오래도록 병기의 중심이 되어 왔다. 이런 점을 반영한 중국 무술계의 금언이 ‘창은 백병지왕(百兵之王), 즉 창이 모든 병기 중에서도 왕이라는 금언이다.

도와 검은 곤과 창에 비하면 비교적 후기인 청동기 시대에 와서야 탄생한 무기다. 특히 도는 검에 비해서도 아주 후기인 철기시대에 와서야 탄생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건 제련기술의 발전과 관련된 일이다.

먼저 도와 검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간단히 말하자면 도는 외날, 즉 한쪽에만 날이 있고 검은 양날, 즉 양쪽에 모두 칼날이 있다는 차이가 있다. 중국에서는 이 분류를 엄격히 지키는데 반해서 한국에서는 양날 검을 도라고 부르기도 하고(환두대도는 명백히 검의 형태를 갖고 있는데도 도라고 부르고 있다) 외날인 도를 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제독검은 형태상 외날을 가진 도다) 그보다 한국에서는 도고 검이고 모두 뭉뚱그려서 칼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아예 외날인 일본도를 모두 검이라고 부른다.

한, 중, 일 삼국의 용어상 혼란은 이 외에도 많지만 여기에서는 중국을 기준으로 해서 검은 양날, 도는 외날이라는 분류를 받아들여서 말하기로 하자.도가 왜 검보다 후대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가. 형태상 검은 찌르기를 위주로 하고 도는 베기를 위주로 한다. 검으로는 벨 수 없다, 도로는 찌를 수 없다고 하는 말이 아니라 비율로 따지면 검으로는 찌르기가 7할, 베기가 3할 정도고 도는 그 반대라고 말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휘둘러서 벨 수 있을 정도의 날카로움이 구현되려면 청동기로는 힘들다는 것이다. 즉 청동검은 가능해도 청동도는 병장기로서는 현저히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청동기 시대였던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무기의 주력은 창과 활이었고, 검은 근접전에서만 사용되었다. 혹은 의식용으로도 검이 사용되었는데 병기로 사용될 정도로 충분히 날카로운 검은 제후와 귀족이나 가질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신분의 상징이 되고, 고귀함의 징표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근세에 이르기까지 검이 동양의 문인들 사이에서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 불리며 애장된 것이나 도교에서 귀신을 물리치는 효능을 갖고 있다고 제사에 사용된 것도 이런 전통의 연장인 듯하다.

지금도 명검의 대명사처럼 전해지는 간장이니 막야, 거궐이나 어장 등등의 검은 전국시대 말기에 나타난 것인데 오월동주의 고사로 유명한 오나라와 월나라에서 주로 만들어진 것이고, 이 오나라와 월나라가 중국에서 가장 빠르게 철기시대로 진입한 국가라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즉, 제련술이 가장 발달한 국가가 오나라와 월나라인 것이고, 그 제련술을 바탕으로 해서 명검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와신상담의 고사로 유명한 월왕 구천은 명검을 다수 만든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의 지시에 의해 만든 검 중에 지금까지 전해져서 중국의 보물로 보관되는 것이 ‘월왕구천지검’이다. 청동으로 만든 이 칼은 길이 56.4㎝, 칼날 길이 45.7㎝, 무게 810g이다. 철기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검의 대부분은 청동기였다는 증거가 되는 게 이 월왕구천지검인 것이다.

길이에도 주목해 보자. 칼날 길이가 45.7cm 밖에 안 된다. 서양의 클리모어나 롱소드에는 비교도 안 되고 로마의 짧은 칼에 겨우 비교될 정도의 길이다. 왜 더 길게 못 만들었을까? 청동으로는 더 길게 만들기 어려워서다. 굳이 만들어도 한 번 부딪히면 쉽게 부러져 버린다. 이런 검으로 사람을 벤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베기를 주력으로 하는 도는 철기시대인 한나라 때에 와서야 탄생한 것이다. 흉노와 싸우기 위해서였다.

흉노는 기마병이 주력이다. 기마병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스쳐 지나가면서 베는 무기가 효과적이다. 검은 베기에 적합한 무기가 아니다. 당시의 부족한 제련기술로 만든 검을 휘둘러서 적의 무기와 부딪치면 쉽게 부러지기 때문이다. 부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두껍게 하는 게 필요했다. 그런데 양날을 가진 검은 어느정도 이상으로 두껍게 하는 것도 어렵다. 그래서 한쪽 날만 있는 도가 탄생한 것이다.

그나마 초기의 도는 직도(直刀)였다. 검처럼 곧은 몸체에 한쪽으로만 날이 있는 무기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도, 즉 완만하게 굽은 형태의 칼을 곡도(曲刀)라고 부르는데, 이건 한나라 다음에 세워진 수나라 때나 탄생했다.

삼국지의 배경은 한나라 말엽이다. 이때까지는 아직 곡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곡도가 없으면 굽은 칼날에 긴 자루를 단 대도(大刀)도 없다. 관우가 휘둘렀다는 청룡언월도는 대도의 발전된 형태다. 어떻게 된 일일까? 대도도 없다는데 웬 청룡언월도? 거꾸로 말해서 청룡언월도가 있었다면 대도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실제로 관우가 사용한 것은 평범한 창이었다고 한다. 청룡언월도는 후세에 만들어진 전설인 것이다.무협작가로 ‘대도오’, ‘생사박’, ‘혈기린외전’ 등의 작품이 있다. 무협게임 ‘구룡쟁패’의 시나리오를 쓰고 이를 제작하는 인디21의 콘텐츠 담당 이사로 재직 중이다.

[사진설명 : 사진 순서대로..]

◇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검.

◇ 청룡도. 중국식 검의 대표적인 형태.

◇ 월왕구천지검.

◇ 청룡언월도.

◇ 팔극권. ◇ 검의 세부 명칭.

◇ 원시적 형태의 창이라고 할 수 있는 ‘과’.

<좌백(佐栢) jwabk@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