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3주년 특집Ⅱ-이제는 기술기업이다]부품·소재기업-수출 `레벨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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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범 산자부 장관이 부품·소재 관련 행사 참석 때마다 자주 꺼내는 얘기가 있다. 지난 90년대 한국 주부들로부터 인기 끌던 일본산 코끼리 밥솥과 국산 쿠쿠 압력밥솥에 관한 일화다. 98년 당시, 2000달러 수준에 불과하던 코끼리 밥솥 수입액은 다변화 해제 후 600만 달러까지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대기업들의 잇따른 밥솥시장 철수는 생산제품 전량을 OEM 납품하던 쿠쿠전자에 직격탄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쿠쿠전자는 공격적인 R&D 투자와 자체브랜드 개발을 단행, 수입 다변화 해제로 인한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었다. 그 결과, 쿠쿠전자는 지난해 자체 개발한 발아현미밥솥을 전기밥솥 종주국인 일본에 무려 5000대나 수출했다.

 이 장관이 이런 쿠쿠밥솥 얘기를 자주 꺼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 부품·소재 산업도 과거의 만성적자 산업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기술경쟁력을 갖춘 수출 효자 품목으로 성장했으며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들과도 이제 당당하게 경쟁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전문가들도 “한·일 FTA가 체결되면 10% 가량의 관세 인하 효과로 비메모리, 광섬유 등 첨단 품목의 수입 급증이 우려되지만 지난 90년대 수입선 다변화 해제시의 경험을 살려 적절한 보완책만 마련하면 FTA가 오히려 국내 부품·소재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난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부품·소재산업은 만성 적자에 허덕였다. 눈에 보이는 완성품으로는 세계 시장을 호령하지만 그 제품을 만드는 핵심 부품·소재는 대부분 일본 등 해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 이래로 줄기차게 부품·소재 국산화와 자립 역량 강화를 외쳐왔지만 선진 업체들에 대한 추격 성장에 급급하던 우리로서는 어려운 과제였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지난 97년 이후부터 부품·소재 무역수지는 흑자로 돌아섰다. 올해 상반기 전체 무역 흑자가 작년 동기 대비 17.7%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부품·소재 분야는 31% 증가한 96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수출도 전자부품 15.4%(209억5000만 달러) 증가에 힘입어 작년 동기 대비 11.6% 늘어난 590억3000만 달러로 반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부품 국산화율도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우리나라가 원천기술을 보유한 제품이 늘어나면서 첨단 분야에서 오히려 부품 국산화율이 높아졌다. MP3 플레이어(83%), PDP TV(81.8%), LCD TV(60%)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원천 기술에서 부품·소재, 공정 기술·장비, 완제품까지 일관 체제를 구축, 세계 산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첫걸음을 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해외에 의존하던 기술을 국산화하고 나아가 이를 해외로 역수출하는 부품소재 기업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심텍이 생산하는 메모리모듈용 인쇄회로기판(PCB)은 삼성전자나 하이닉스는 물론 마이크론·인피니온·난야 등 세계 ‘빅5’ 칩 메이커에 모두 공급된다. 만도는 GM, 다임러에 ABS 및 조향장치 공급하고 있다. 우영도 미국 페터스에 LCD모듈을 수출했으며 한라공조는 크라이슬러에 컴프레스를, 동양기전은 GM·오펠·사브 등에 와이퍼모터를 공급하고 있다. 수출 분야도 소재 및 부품에서 장비까지, 산업 분야도 전기전자에서 자동차, 화학·섬유까지 광범위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부품·소재 기술은 아직도 선진국 대비 80% 수준이다. 원천기술을 포함한 첨단 부품·소재는 아직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50인 이하 소규모 기업이 전체 부품·소재기업의 89.5% 차지하는 등 대형화·전문화된 부품·소재 기업도 부족하다. 회사 규모가 영세하다 보니, 대기업과의 종속적 계열화가 고착돼 납품단가인하나 납품수량 확보 불안 등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범용 제품 중심의 수출 구조로 핵심기술을 포함한 모듈화 대응도 아직 미흡하다. 그 결과, 국내 자동차부품 전체 매출(30조 원)이 세계적 자동차 모듈업체인 델파이 1개사(32조원)에도 못 미치는 등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부품·소재산업의 미래는 밝다. 우리나라는 핵심 원천기술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IT·자동차·조선 등 세트산업 부문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는 부품·소재의 대규모 수요처인 주력기간산업이 건재하다는 얘기다. 내수 기반이 튼튼하다는 얘기는 그만큼 성장 가능성도 크다는 의미다.

 주변 경쟁국 상황도 그리 불리하지만은 않다. 일본은 세트와 부품업체 간 계열관계가 약화되고 급속한 고령화·고비용화로 생산거점의 해외 이전도 가속화되고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도 아직까지 핵심부품·소재 공급 능력은 취약하다. 한·중·일 3국간 분업구조 아래 우리나라가 기술집약적 부품·소재 공급의 최적지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부품소재 전문가들은 “아직 뿌리 깊지 않은 국내 부품·소재 산업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수출까지 하기 위해서는 해외 의존적인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 한 분야에 열정을 갖고 끈질기게 천착하는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한 단계 앞선 기술력과 차별화된 제품을 가지고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주상돈기자@전자신문, sdjoo@etnews.co.kr

◆인터뷰-백태일 제4기한국 사장

 “첨단 기술이야말로 경제를 빠르게 성장시켜 잘 살고 품위있는 새로운 국가를 만들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백태일 제4기한국 사장은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는 첨단 기술 개발만이 유일한 희망이며 그 중 제4기한국이 선택한 것이 플라스마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반도체·PCB 분야에서 15년 넘게 줄곧 플라스마 장치만을 개발해 왔다. 제4기한국이라는 독특한 회사 이름도 첨단 기술로 국부(國富)를 쌓아 새로운 한국을 만들겠다는 백태일 사장의 강한 의지를 담고 있다.

 최근 반도체, 인쇄회로기판(PCB) 등 정밀부품 제조공정에서 각광받기 시작한 기술중 하나가 플라스마다. 특히 반도체나 PCB 회로선폭이 갈수록 좁아지고 약품으로는 에칭 하기 어려운 연성기판(FPC)이 등장하면서 에칭·세정 공정에 플라스마 기술을 적용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제4기한국이 개발한 플라스마 디스미어 장비는 인쇄회로기판(PCB) 동도금의 품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비아홀 내벽에 붙어 있는 기판 수지 등 각종 스미어(smear)를 플라스마를 활용해 제거하는 설비로 독일이나 미국 선진업체 1∼2군데만이 관련 공정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백 사장은 “플라스마 디스미어는 관련 설비 가격이 대당 20만 달러를 호가하는 고부가 제품”이라며 “제4기한국이 생산하는 국산 플라스마 장비가 외산보다 오히려 가격이 비싸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제4기한국은 해외 입찰에 성공하는 등 플라스마 디스미어 공정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독일·미국 등 외산 업체들을 제치고 중국 PCB제조업체인 WUS전자 신규 PCB 생산라인에 최신 플라스마 디스미어 설비를 당당히 수출했다. 이를 계기로 상하이에 대리점을 설립하고 영업 및 AS요원 양성을 위한 교육에 착수하는 등 본격적인 중국시장 공략에 나섰다. 또 일본 에이테크(Aitech)사와 공식 대리점 계약을 하고 일본 시장에도 진출하는 등 글로벌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백 사장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플라스마 디스미어 관련 설비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며 “특히 세계 플라스마 장비 시장에는 아직 강자도 약자도 없는 만큼 이제부터가 시작이자 출발”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