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방융합, 새로운 10년을 준비한다]제2부 새로운 규제의 틀을 만들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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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손질해야 할 이중적 허가제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가 전기통신사업법과 방송법에 따라 각각 허가하는 현행 제도는 통·방 융합 분야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가 추진하는 인터넷전화와 KT가 추진하는 IPTV 등 통·방 융합 서비스는 기술적으로 성숙했으나 기형적 허가정책 때문에 서비스를 못하는 대표적 사례다.

SO업계 컨소시엄법인인 한국케이블텔테콤(KCT)은 070인터넷전화 서비스를 위해 정통부에 허가 신청을 했으나 반려 당했다. 반려 명분은 ‘방송과 통신의 공정경쟁’. 그러나 방송계에서는 전기통신사업법에 의한 허가제를 악용했다며 비난했다.

통신 업계 역시 정통부의 광대역통합망(BcN) 시범사업에 참여하려던 지상파방송사들이 돌연 불참을 선언한 것도 방송위원회의 ‘허가 추천제’를 남용한 사례라며 반박했다.

◇정통부·방송위는 지금 충돌중=방송 허가제(허가추천제)로 지지부진해진 융합서비스로는 ‘데이터 방송’이 있다. 방송망을 통한 데이터방송은 기본적으로 방송 서비스이지만 독립 채널을 이용한 독립형 데이터방송의 경우는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상 부가통신 역무에 해당한다는 시각도 존재해 중복규제 논란이 일고 있다.

통신규제를 받는 융합서비스는 ‘휴대폰 방송(준,핌)’이 대표적이다. 방송법 개정안에서는 별정방송으로 분류하려 했으나 결국 삭제됐다. 따라서 현행 방송법에서는 휴대폰 방송에 대한 근거조항이 없는 셈이다.

인터넷방송(Webcasting) 역시 정통부와 방송위로부터 불합리한 이중 규제를 받고 있다. 전기통신사업법의 부가통신역무에 해당되는 인터넷방송은 현행법상 사업자가 부가통신사업으로 신고하도록 됐다. 내용 심의도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방송사업자가 제공하는 인터넷방송은 방송법(제 32조)에 의거 방송위원회가 심의한다. 서비스 성격은 동일하지만 사업자가 방송사업자냐 통신사업자냐에 따라 내용 심의의 주체가 다른 것은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융합서비스는 새 제도로=정통부는 광대역융합서비스법(BCS)을 추진하면서 기존 허가제를 등록·신고제로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단, 전파법에 의한 주파수 허가정책은 유지한다. 방송위원회는 현행 방송법 9조에 의한 방송사업자의 추천·허가·승인·등록 업무와 제12조에 의한 종합유선방송사업에 대한 지역사업권, 제15조·제17조의 방송사업 변경 허가 및 재허가 등은 방송법 대폭 손질이 없는 한 유지시킬 계획이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사에 대한 허가 추천을 5∼7년으로 늘리고 보도PP나 SO에 대한 허가 추천을 늘리는 방법 등에 대한 의견도 나오고 있다. 즉 방송의 공익성에 더해 사업성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융합서비스에 대해서는 허가제 보다는 등록 또는 신고를 하는 ‘종별 면허’ 제도를 도입하는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녹색소비자연대의 전응휘 상임위원은 “기간 역무 대상을 법으로 규정하는 등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라며 “진입 규제를 완화하면서도 경쟁환경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통신 규제 환경 변화

 통신기업은 국가 산업 발전을 위한 필수 인프라를 제공하고 일반 국민이 기본적 생활을 영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다수 국가에서는 처음부터 국영 또는 공기업 형태로 운영됐다.

통신산업은 자연독점적 성격과 망 외부성이라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자연독점성은 한 기업의 생산품이 2∼3개 기업이 생산하는 것보다 저렴할 때 발생한다. 네트워크 외부성(Network Externalities)은 이용자가 많을수록 망 가치가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 같은 특성 때문에 규제 당국(정보통신부)은 공익성이 강한 통신 인프라에 대해 독점에 따른 생산 효율성을 확보하면서도 독점 기업의 지위 남용을 방지하는 대안을 찾았다. 규제 당국은 △가격 규제 △보편적 서비스 제도 △접속 및 공급 의무 △필수설비제도(지배적 사업자에 다른 경쟁기업이 동등하게 거래하도록 의무화한 제도) △망 세분화(통신서비스에 필요한 요소를 분할 구매) 등을 차례로 도입했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제 환경은 지난 1∼2년 사이에 ‘통·방 융합’ 현상과 기술 발전에 따라 급속하게 변했다.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는 통신에서 자연 독점적 성격이 사라지고 경쟁 체제가 도입됨에 따라 진입 규제를 철폐·완화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등의 조치를 하고 있다. 영국은 지난 2003년 진입 허가제를 등록제로 바꾸는 등 규제정책 완화를 시도하고 있고 일본도 지난 2004년 허가·등록·신고 제도를 등록·신고로 이원화했다.

◆방송 규제환경의 변화

 방송산업은 전파 희소성에 따른 자연적 결과로 처음부터 독점 상태로 출발했다. 또 채널 운영에 막대한 비용이 필요해지면서 잠재적이나마 접근 자체가 제한돼왔다. 방송산업은 그동안 국가 산업에 준하는 공적 기관이라는 인식 아래 규제를 받아왔으며 공공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각종 공익의무가 부과됐다.

 방송 산업은 그동안 △전파의 희소성(전파 자원의 유한성) △보편적 서비스 △공공재적 성격 △사회적 영향력 등을 인정받아 규제돼왔다. 그동안 규제 대상은 △진입(허가) △소유·겸영 △내용(광고)·편성·채널 △기술 등이었다.

 규제정책은 또 방송의 공적 책임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다른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통제했다. 이종(혹은 동종) 매체 간 균형 발전과 공정 경쟁을 위해 소유 및 겸영도 규제했다.

 그러나 다매체 다채널 시대로 접어들면서 전파의 희소성에 근거한 방송산업 규제는 점차 그 정당성을 잃어가고 있다. 또 융합에 따라 통신산업과 교차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어 새 시대에 맞는 방송산업의 규제 이념과 규제틀을 논의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방송서비스 사업자 분류 제도도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방석호 교수(홍익대 법대)는 “통신사업자의 데이터 방송 서비스는 방송법상 열거된 방송사업자로서 허가를 취득한 이후에 할 수 있기 때문에 제한돼 있다”며 “방송법이 전송수단 중심으로 허가 체계가 이뤄져 있어 방송과 통신 융합에 따른 서비스 융합은 전송수단과 각 전송수단에서 제공되는 서비스가 대응하기 어렵게 만들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융합시대, 4가지 규제 원칙

통·방 융합이 어떤 방향으로 진전되든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고객이자 소비자로서의 국민이다. 통신과 방송 업계가 모두 ‘국민을 위한 서비스’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국민을 외면한 채 그들만을 위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진행돼온 제도 개선 논의는 이용자 복지 증진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도외시한 채 이해 관계자 중심이었던 게 사실이다. 영국 정부가 ‘커뮤니케이션 규제’를 발표하면서 제시한 정책 목표 중의 하나가 바로 공익과 소비자 보호였다. 미국의 FCC가 통·방시장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한 규제기관 모델의 목표도 ‘모든 국민이 통·방 혁신의 수혜자가 될 수 있는 기회의 촉진’에 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융합시대에 흔들리지 말아야 할 4개의 규제 원칙으로 △사업자의 시장 참여 유인 극대화로 신규 융합서비스 도입 촉진 △규제 일관성 추구-기술중립적 차원에서 동일서비스에 동일규제 원칙 적용 △공익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의 도출 △세계화에 적합한 규제 환경 도입을 제시하고 있다.

 이상우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통신방송연구실 책임연구원은 “정부 정책의 기본은 다양한 융합서비스를 촉진함으로써 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이라며 “이미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하며 사업자의 창의적인 시장 개척 의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입이 지연되는 것은 사회 후생적 측면에서 적지않은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재권기자@전자신문, gj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