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법은 속빈 강정?’
게임산업 발전의 토대가 될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진흥법)’ 시행령(안)이 발표됐지만 기존 ‘음반 및 비디오에 관한 법률(이하 음비게법)’과 별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산업을 일으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만들어진 진흥법이지만 실제 시행령안에는 별다른 육성책이 들어있지 않아서 그렇다. ‘진흥법’이 시행된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됐던 게임업계는 막상 뚜껑이 열리자 크게 실망하는 눈치다. 더욱이 규제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강경 일변도여서 진흥법이 아니라 규제법이 아니냐는 말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게임산업을 육성하려는 의지가 얼마나 있는지 궁금하다”며 “(규제를)다 풀어달라고는 못하겠지만 예전 음비게법과의 차이를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최근 ‘진흥법’ 시행령의 기본 골격을 발표하고 6월 중 당정협의 등을 거쳐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발표된 시행령에는 ▲ 사행성 게임물 근절 ▲ 게임산업 진흥과 게임문화 진흥 ▲ 게임물 등급 분류 기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사행성 게임물의 경우 게임물등급위원회에서 결정한다고 못박고 있지만 다양한 규제안을 내 놓았다. 이 안에 따르면 게임제공업소의 시설기준이 크게 강화되고 PC방의 사행성 행위 조장이 금지된다.
또 성인 게임장의 심야영업이 제한되는 등 강력한 규제를 실시할 태세다. 게임물 등급 분류에 대해서는 폭력성, 선정성, 사행성, 언어성 등을 기준으로 한 등급분류 기준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와함께 게임산업과 문화를 진흥하기 위해 우수 인력 양성과 해외 진출 활성화, 건전 게임 문화 조성을 위한 기반 환경 구축 등의 내용도 발표됐다.
그러나 업계는 엄청난 ‘산고’를 겪고 태어난 법안인데도 불구하고 내용은 기대 수준이하라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
특히 사행성과 관련해서는 시행령안이 어중간 해 자칫 산업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사행성 부분이 명확하지 못한 것은 아직 정부에서 사행성의 규제와 관련해 입장정리를 못했기 때문에 이번 시행령안에서도 그 의지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 무엇이 문제인가
업계서 가장 불만족스럽게 보는 것은 사행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사행성 게임물에 대한 기준을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등위)에서 만들도록 한다는 입장이지만 업계는 기본안에 포함돼 있지 않다는 데 크게 우려하고 있다.
업계는 사행성에 대한 기준 마련이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아직까지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것은 향후 진로가 험난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최악의 경우 업계와 시민단체 등의 의견이 대립하면서 사행성 기준이 과거의 ‘음비게법’과 큰 차이가 없는 선에서 만들어 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진흥법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형태의 기준안이 돼 업계의 목을 조르는 악법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 시민단체들이 진흥법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사행성 게임에 대한 기준을 더욱 강화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팽배하다.
업계는 또 게임등위가 사행성 기준을 결정하면 온·오프라인 구분없이 다양한 규제가 이뤄지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환경이 틀린 상황에서 똑같이 규제한다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는 논리다.
예를 들어 ‘게임물 제공자가 손님의 사행성을 조장하지 말아야 한다’는 항목의 경우 오프라인은 가능하겠지만 적게는 1만명에서 많게는 100만명 이상이 오고가는 온라인상에서는 불가능한 조항일 수 밖에 없다.
게임물 사업자의 준수사항 등의 항목에 있어서도 불만을 터뜨렸다. 문화부가 사법부와의 사전 조율 없이 독단적으로 처벌조항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법을 위반해도 처벌조항에 대해서는 문화부와 사법부의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문화부의 일방적인 단속으로 인해 업계만 중간에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음 문제로 보고 있는 것은 게임산업 진흥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안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게임산업이나 문화를 진흥한다는 이유로 정부는 몇가지 조항을 발표했지만 그 내용들이 추상적이어서 공허한 메아리로 작용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 개선책은 무엇인가
업계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행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서둘러 마련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특히 온라인게임의 사행성 기준이 마련돼야 업계가 안심하고 게임을 개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업계는 이런 이유로 아이템이나 사이버머니의 현금거래에 대해 정부가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고 이후 법을 통해 시행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을 주문했다.
특히 온·오프라인의 구분을 명확히 해 그 분야에 맞는 규제가 진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게임의 경우 사행성으로 인정되면 그 특성에 맞춰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행성 게임물이기 때문에 현재 시행령안에 의해 처벌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는 이와함께 아직까지 게임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작지만 최근 한국 산업에 가장 큰 이슈인 FTA(자유무역협정) 등의 대처 방안이나 지난 해부터 중국과 갈등을 빚어온 저작권 보호 문제 등의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냈다.
게임의 수출이 활발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적극 뒷받침해줄 제도적 장치 마련은 필수라는 얘기다.
또 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안 마련을 위한 실질적인 내용도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업체 한 관계자는 “규제에 힘을 싣기 보다는 진흥을 위한 구체적인 안을 마련하는데 더 힘을 쏟아 주길 바란다”며 “진흥법이 정말 게임산업이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화부는 이같은 업계의 요구에 대해 일단 수긍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다음달 1일 열릴 공청회에서 업계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듣고 이를 정책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문화부는 사행성과 관련해서는 규제를 강화하겠지만 다른 게임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명확한 규정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한 진흥법이 게임산업의 토대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육성책 마련과 이를 시행하기 위한 안을 구상중이라고도 했다. 문화부 한 관계자는 “업계 의견을 반영해 시행령안을 만들고 있는 상황”이라며 “미흡하지만 좀더 구체적인 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정부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업계는 정부의 의지가 점차 희석돼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업계 한 관계자는 “관련 업계가 걱정하는 것은 정부의 의지가 아니라 실천”이라면서 “그같은 모습을 이번 시행령안에서 찾기를 기대했는데 결과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매우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안희찬기자@전자신문 chani71@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