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이세한 지티앤티 사장(3)](https://img.etnews.com/photonews/0702/070216104416b.jpg)
(3)시련을 넘어-더딘 3G시장 개화에 2년 적자
사업가에게 시련기는 항상 다가오는 법인가 보다. 사옥을 마련하고 개발인력을 풀 가동하면서 잘나가던 사업이 위기를 맞았다. 바로 2002년부터다. IMT2000 투자가 지연되면서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당시 이동통신사들은 2세대(G) 이동통신에 이어 곧바로 3G 이동통신으로 전환키로 하고 이와 관련 구체적인 로드맵도 완성된 시기였다. 정부 방침도 확고한 듯 했다.
개발사인 우리는 당연히 이 같은 정부 정책 로드맵을 따라 제품 개발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통사들은 2G에서 3G로 넘어가지 않았다. 시장 상황이 문제였다. 이통사로 봐선 단말기, 플랫폼, 콘텐츠, 사용자 수준 등 어느 것 하나 3G로 직행하기엔 무리라는 판단이 선 듯했다. 당연히 2G 이동통신에 대한 투자가 마무리되면서 이에 대한 투자이익도 회수해야 했다.
시장이 급속히 위축되기 시작했다. 2G 투자는 마무리됐는데, 새로운 시장인 3G 부문의 투자가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통신장비 업계에 한파가 불어닥쳤다. 우리 회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154억원 수준까지 올랐던 한해 매출이 131억원 수준으로 급락했다. 거듭해온 흑자행진도 멈추면서 7억원 가량의 적자로 돌아섰다. 회사의 앞날이 걱정스러운 수준으로 내몰렸다. 정부의 정책의지나 환경 변화가 기업에 얼마나 큰 어려움으로 다가올 수 있는 지를 실감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다. 활로를 뚫어야 했다. 해외시장이 답이었다. CDMA를 도입하기 시작한 중국이 현재의 아이템을 가지고 비즈니스 할 수 있는 우선적인 시장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국내 시장에서 어려움을 체험한 업체들을 중국시장에서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는 중국의 중계기 시장에 진출할 때 중국 측 파트너에 기술과 인력을 지원하며 샘플용 중계기를 국내 공급가격의 2배 가격에 구매를 제안해 성사단계에 이르렀다. 그만큼 제품 및 기술력에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타 업체들에서 샘플용 중계기를 무상으로 공급하는 등 출혈경쟁이 시작되었다. 중계기 공급가격이 원가 수준으로 하락하는 등 과다 출혈 경쟁으로는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 대 중국용 사업으로는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RF 파일럿 플래시 비콘에 주력하게 됐다. 이때 경험이 해외 사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무상으로 CDMA 중계기를 공급, 이후의 물량 개런티를 받고자 했던 기업들은 어려움을 겪게 됐다. 기술과 노하우 등만 유출 당했을 뿐 사업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중국 사업에서 얻은 교훈이 컸다.
해외 시장 개척은 도움이 되긴 했지만 회사의 어려움을 타개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정부 정책을 믿고 투자한 자금과 인력 투입 등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2003년에도 매출이 좀체 오르지 않았다. 매출도 전년 수준을 밑도는 106억원 수준이었고, 적자폭은 더욱 커져서 17억원에 달했다.
2004년 초에는 마침내 코스닥 관리종목으로 추락했다. 시가총액이 50억원을 하회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적자가 2년 연속 지속되면서 주가가 계속 떨어졌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도 3G 투자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회사 가치를 어둡게 전망했다. 여유 있을 때 사업다각화를 못한 책임이 크긴 했지만 정부의 3G 정책에 올인 한 잘못도 컸다.
그렇다고 미래를 포기할 순 없었다. 적자를 낸 시기에도 매출의 10% 가량을 연구개발(R&D)에 투자했다. 이동통신이 2G에서 3G로 이동할 것은 명약관화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기의 문제일 뿐 기술 추세로 보면 시장은 3G로 가는 것이 분명했다. 그때를 대비하지 못하면 비전이 없을 것이라 여겼다.
이때 많은 성과를 거뒀다. WCDMA 전용 중계기, 2G-3G 겸용 중계기, 신형TMD, RF 파일럿 플래시 비콘장비 등의 개발을 완료했다. 미래를 대비한 결과물들이었다. 물론 연구개발 노력에 매진해준 직원들의 노력 덕택이었다.
sehan@gt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