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인터넷]무선 망 개방(2)일본

 현지취재를 위해 일본 도쿄에 도착한 지난달 8일. 도쿄 시내는 한참이나 술렁였다. 아키하바라에서 행인 7명이 이유 없이 살해되고 10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범인은 현장에서 잡혔지만 엽기적인 범죄에 열도는 충격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그 다음날 더 화제가 됐다. 범인이 지난 5일부터 휴대폰으로 게시판에 범행 수법을 자세히 예고했고 범행 7시간 전 휴대폰 메일로 글을 올린 뒤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 언론을 거쳐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후 일본에선 유해 정보 등 무분별한 글이 올라오는 모바일이라는 채널이 여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 휴대폰으로 인터넷하는 나라=극단적인 사례긴 하지만 일본은 이처럼 휴대폰 인터넷이 보편화된 나라다. 유선 인터넷 게시판의 글이 사회문제가 되는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은 휴대폰 인터넷 게시판이 그 대상이다. 휴대폰 이용자 1억1000만명 가운데 80% 이상이 인터넷을 이용한다. 세계에서 으뜸이다.

 물론 유선 인터넷은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뒤진다. 유선 브로드밴드 확산이 더딘데다 좁은 일본의 가정에 PC가 들어설 자리도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약한 유선 인터넷이 되레 모바일 인터넷 시장을 확대하는 약이 됐다. 큰 것을 선호하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으로 작은 것을 선호하는 일본인의 성향도 휴대폰 인터넷과 궁합이 맞다. 그러다 보니 휴대폰으로 못 하는 게 없다. 게임이나 음악 다운로드는 물론이고 e메일을 보내기도 하고 SNS(Social Network Service) 사이트에 글도 남긴다. 모바일 소설로 1위를 달리는 가코스타츠는 소설로만 한 해 5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릴 정도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TV뉴스보다, 유선 웹사이트보다 모바일 인터넷 게시판이 더 빠르게 움직인다.

 오창렬 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KIICA) 일본사무소 수석은 “심지어 모바일 인터넷 때문에 가정 내 대화가 사라졌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라며 “일본 청소년은 PC 없이는 살아도 휴대폰이 없으면 생활이 안 될 정도로 휴대폰이 인터넷 도구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일본 최대 콘텐츠 제공업체(CP)인 모바게타운 조사에 따르면 일본 사람이 휴대 인터넷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시간은 오후 8∼10시까지다. 일과 후 여가 시간 대부분을 휴대폰 인터넷을 하면서 지낸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일본 가정에선 저녁 시간, PC가 아닌 각자의 방에서 모바일로 인터넷을 즐기는 것이 익숙한 풍경이 됐다.

 ◇ 총무성의 적극적인 망 개방 의지=비결은 뭘까. 단지 유선이 덜 발달됐기 때문에 생긴 반사이익일까. △총무성의 적극적인 망 개방 의지 △정액제 조기 정착 △풀브라우징 서비스의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일본은 2001년 ‘차세대 이동통신 시스템에서의 비즈니스 모델에 관한 연구회’가 결성된 이후 무선 망 개방에 관한 논의들이 급진전됐다. 같은 시기에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한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특히 총무성이 앞장섰다. 2002년 4월 총무성은 NTT도코모에 의무화 개방 대상을 통신 회선에서 과금과 회수 시스템 등으로 확대했고 오픈 웹 정책을 고수하도록 해 외부에 문호를 열었다. 그 결과 일본의 CP 수는 세계 최대인 10만개다. 특히 이 가운데 이통사가 과금대행을 하는 공식 CP는 1만개에 그치는 데 비해 이통사와 별다른 관계가 없는 일반 CP는 무려 9만개에 달한다. 일반 CP 중에는 이미 매출액이 수천억원을 넘어서는 모바게타운 같은 성공사례도 나왔다.

 총무성이 무선 망 개방에 앞장선 이유는 간단하다. ‘소비자’ 때문이다. 전파라는 것이 공공재 성격을 띠고 있고 이를 막는 것은 공정 경쟁 원칙에 위반된다는 논리다. 노부히라 니시가타 일본 총무성 서기관은 “기본적으로 모든 플랫폼을 오픈한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방침”이라며 “지난 1985년부터 시작한 각종 유무선 망 개방은 지난 5월 MVNO가이드라인 제정에 이르기까지 개방 수준이 거의 100%에 가깝다”고 자랑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일본 총무성은 3세대 통신 시장에서 △콘텐츠 애플리케이션 레이어 △플랫폼 레이어 △커뮤니케이션 레이어 △네트워크 레이어 △터미널 레이어 등 모든 층이 상호 접속을 허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경쟁을 통한 정액제 확대가 기폭제=2005년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정액제는 모바일 인터넷 이용자 확대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2위 사업자인 KDDI가 서비스 차별화를 위해 가장 먼저 선보인 이후 소프트뱅크, NTT도코모가 경쟁적으로 출시에 나섰다. KDDI는 지난해 12월 월 6000엔(약 5만원)만 내면 무제한으로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상품을 출시해 큰 인기를 끌었다. NTT도코모도 비슷한 서비스를 5985엔에 이용할 수 있는 패크호다이 상품을 내놨다. 하루히코 메대 KDDI 홍보실장은 “이전에는 모바일 인터넷을 조금만 사용해도 한 달에 5만원 이상의 요금이 나왔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고객이 많았다”며 “그러나 정액제를 도입한 뒤 소비자의 부담이 줄고 모바일 인터넷 시장이 확산되는 것이 눈으로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2004년부터 시작한 풀브라우징 서비스도 효과가 컸다. 이통사 중심으로 형성돼 온 모바일 비즈니스 구조를 ‘개방형 모델’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다카마사 키시하라 모바일콘텐츠포럼 사무총장은 “일본 모바일 인터넷 시장은 무선 망 개방을 기점으로 급속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특히 망개방에 따른 콘텐츠 공급 확대가 일본 모바일 인터넷 시장 확대를 불러왔다”고 강조했다.

 도쿄(일본)=한정훈기자 exist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