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사 적립카드 가입, 주민번호 기재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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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인트카드에 가입하시려면 신청서의 동그라미 친 부분을 적어서 주시면 됩니다.”

 서울 상도동에 사는 정모씨는 최근 자주 찾는 할인점에서 적립금을 쌓기 위해 고객센터를 찾았다. 회원카드 가입을 위해 용지를 받아들고 직원에게 문의하자 친절하게 색연필로 필수로 기재할 부분을 표시해줬다. 정씨는 최근 옥션·하나로텔레콤 등에서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사건이 우려돼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나 직원은 회원가입을 하려면 주민번호를 적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휴사와 정보를 공유하겠다는 약관에 동의도 강요했다. ‘고객의 개인정보를 여타 업체에 제공할 수 있다’는 내용이 불쾌해 동의하지 않겠다고 주장하자, 할인점 직원은 회원가입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브레이크 없는 기차=개인정보 유출사건 이후에도 개인정보 보호의 사각지대인 오프라인 유통점들은 여전히 개인정보 수집에 혈안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신문이 지난 6월 21일부터 2주간 롯데·신세계·현대 등 주요 백화점과 이마트·홈플러스 등 할인매장 11곳의 적립카드 가입 절차를 조사한 결과, 주민등록번호를 반드시 기재해야 회원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등록번호는 이름·주소·전화번호·서명 등과 함께 ‘필수 입력사항’에 포함돼 있었다. 주민등록번호 외의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통한 가입은 불가능했다.

 적립카드는 유통업체들이 고객을 유치하고 오랜 기간 유지하기 위한 영업 수단으로 신분 확인과 신용정보 등이 사실상 필요 없다. 그러나 주민등록번호가 확보되면 기존의 DB·제휴회사·신용평가회사 등의 정보와 엮이면서 특정 고객에 대한 정보를 만들 수 있다. 이 정보를 통해 일종의 ‘타킷 마케팅’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가입서에는 자사 계열사뿐 아니라 SK그룹의 OK캐쉬백, 보험회사 등 제휴사와의 정보 교류 등에 대한 동의 절차가 있었다. 이를 통해 기업 간 고객 정보를 공유하면서 다양한 마케팅 정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유통업체들은 고객의 적립금이 현금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 엄격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주민등록번호를 의무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일환 성균관대 법학과 교수는 “민간 부문이 포인트카드 가입을 유도하면서 주민번호 의무 기재를 요구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라며 “주민등록법상 주민등록번호는 민간기업이 사용할 수 없게 돼 있다”고 말했다.

 ◇현행 규정상 제재 어려워=옥션의 해킹 사태 등을 계기로 인터넷기업은 주민등록번호 대체수단 등을 쓰도록 제도가 바뀌었지만, 오프라인 유통업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녹색소비자연대 전국협의회 전응휘 이사는 “인터넷 쇼핑몰에는 정보통신사업법상의 개인정보보호 적용 대상이지만 오프라인 백화점은 아직 규제나 통제를 할 수 있는 법적 틀이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가 추진 중인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 역시 개인정보 수집에 대한 일반적 관리만 규제할 뿐 민간기관의 주민번호 수집 자체는 허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혜훈 한라나당 의원은 “민간기업이 영업에서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 아닌데도 소비자에게 의무 기재를 강요하는 부분이 있다”며 “개인정보 관련 법안 제정 시 유통업체 적립카드 활용 금지가 가능한지 전문가와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신분증으로 대체해야=개인의 신용, 채권·채무관계 등과 무관한 적립카드 등에서는 주민등록번호 등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휴대폰으로 확인, 신용카드 번호의 일부, 학생증 및 사원증 등으로도 신원 확인이 가능하다.

 윤명 소비자시민연대 부장은 “금전이 오가는 거래에서도 신용에 관련된 계좌번호나 신용카드 번호만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며 포인트카드 등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주민등록번호·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 등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미국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자이언트’에서 회원가입을 하려면 현재 소지한 신분증을 보여주면 된다. 미국 운전면허증에는 사회보장번호가 표시돼 있지 않아 사회보장번호조차도 노출되지 않는다.

 전응휘 이사는 “개개인 소비자가 주민등록번호의 유출로 인해 더 이상의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제도와 관행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통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