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글로벌플레이어]위기와 처방- 기업氣 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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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10년간 국가별 GDP 대비 제조업 비중

 디지털 전자제품용 부품 제조업체를 경영하는 김 사장은 최근 들어 공장 해외이전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중이다. 이 회사 제품은 휴대형 전자제품에 영상 재생 기능을 제공하는데 안정성과 성능이 뛰어났지만 가격 때문에 시장에서 외면 받았기 때문이다. 바이어들은 하나같이 “가격만 맞으면 대량으로 구매할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회사 임원들은 가격 경쟁력을 높이려면 인건비와 물류비 절감과 원자재 수급이 용이한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수 차례 회사 임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공장 해외이전 문제를 검토했고 중국도 여러 번 방문했다. 그는 올해 안에 공장 해외 이전 여부를 결정할 생각이다. 더 이상 머뭇거리다가는 시장에서 밀려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산업의 글로벌화에 따른 공동화=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까지 제조업의 기반을 해외로 옮겨가고 있다. 국제 경쟁력을 상실한 산업 및 기업이 해외로 생산기반을 옮김에 따라 국내 생산기반이 약화되고 이를 대체할 신산업 창출과 산업 고도화가 이뤄지지 않아 산업구조에 구멍이 생기는 이른바 ‘산업공동화’가 우려되는 것이다.

현재 부품소재의 글로벌 아웃소싱이 보편화되면서 완제품 조립업체는 품질과 가격이 글로벌 표준에 부합하는 부품소재만을 찾아내 전세계 시장에서 조달하고 있다. 우리 디스플레이 업계의 경우 핵심 부품소재의 80%를 해외에서 수입한다. 우리 기업은 인건비 상승, 노동력 부족 등으로 중국에 진출한 기업이 늘고 있는 데다 기술이전이 가속화해 한·중간 기술격차가 줄어드는 실정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1980년대 중후반부터 산업공동화 문제가 대두됐다. 1985년 급격한 엔고 현상으로 일본 제조업체들이 잇따라 공장을 해외로 옮기면서 산업공동화 문제가 거론됐으나 당시는 일본 경제의 성장세가 두드러져 이 문제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1993년 이후 엔고 현상이 다시 나타나면서 산업공동화의 심각성이 거론됐고,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경제발전이 가속화하자 일본 기업들이 잇따라 공장을 중국으로 옮기면서 본격 거론됐다.

우리나라도 1990년대 후반 들어 공장의 중국 이전이 늘어나면서 국내 제조업체 수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다. 일본에 비해 원천기술이 부족한 우리로서는 생산거점을 중국에 뺏길 경우 그 폐해가 더욱 클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상황이다.

전경련이 지난해 발표한 ‘일본 기업의 자국내 투자 U턴 현상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중국 등 해외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의 국내 U턴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고 일본내 신규 공장 설립은 2002년 844건에서 2006년 1782건으로 지속 증가한 반면 해외공장 설립은 2002년 434건에서 2006년 182건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우리나라의 국내 공장설립은 2004년 9204건을 정점으로 2005년 6991건, 2006년 6144건 등 감소세를 보였고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도 1999년 이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보고서는 “국내 산업공동화를 막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경쟁국과의 비교를 통한 과감한 규제완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수도권규제 등 기업투자를 저해하는 각종 규제의 획기적 개선, 노사관계의 안정과 노동생산성을 고려한 임금 인상, 환율의 안정적 운영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해외 진출 중국 편중 벗어나야=산업공동화는 국내의 생산기반을 무너뜨리고 고용환경을 악화시키기 쉽다. 더구나 해외로 공장을 옮긴 기업의 성능 좋고 가격 저렴한 제품이 국내로 다시 유입됨에 따라 국내 시장을 잠식하는 상황까지 빚는다.

중소기업연구원은 지난해 ‘해외진출 중소기업의 명(明)과 암(暗)-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지역을 중심으로’란 보고서에서 지난 2002년 이후 국내 대기업 해외투자는 주춤해진 반면 중소기업의 해외직접투자가 급증하기 시작해 대기업의 73% 수준으로 늘었고 앞으로 더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보고서는 “낮은 임금만을 겨냥해 해외진출을 시도하다간 실패하기 쉽다”며 “국가별로 업종별 인프라가 상이하기 때문에 종합적이고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해외진출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해외직접투자의 급증으로 국내 산업의 탈공업화 및 공동화 현상이 우려되는 데 따른 대응책으로 △신산업 창출 등에 의한 산업구조 고도화 △경제 및 사회 인프라 개선 △기업환경 개선 △대외환경의 구조적 변화 등을 꼽았다.

현대경제연구원도 국내기업은 지속적으로 글로벌화를 확대하고 있으나 타국 경쟁사에 비해 속도가 뒤쳐지고 있으며, 글로벌화가 다양한 관점에서 전개되지 못하고 비용절감이나 시장개척 등 일차적 요인에 한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 진출 형태도 신규 설립을 선호하고 인수합병(M&A) 활용에는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국내기업의 글로벌화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 편중돼 있고 개도국이나 후진국을 향하고 있어 부가가치가 떨어진다”며 “국내기업이 글로벌화를 한 단계 도약해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면 양에서 질로의 전환, 해외생산에서 해외경영으로의 전환, 글로벌화 지역 확대와 업종 다각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는 기업의 건전한 글로벌화와 해외투자를 지원하되 국내 산업의 공동화 현상과 수출감소 및 역수입 등 글로벌화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법·제도 정비, 세제와 금융 및 보험 지원, 종합 프로그램 제공 등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장 해외 이전을 검토 중인 국내 제조기업은 성급한 판단을 내리기 전에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소영기자 sy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