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 비용 가전사도 부담"

野: 개정안 잇단 발의, 與·업계: 납득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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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권이 방송의 디지털 전환 비용 일부를 TV 제조업체가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제화를 잇따라 추진하고 있다.

 가전업체들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이 같은 움직임에 당혹해 하면서도 법제화를 어떤 형태로든 저지할 태세다.

 1일 국회와 업계에 따르면 민주당은 지난주 천정배 의원 대표 발의로 디지털TV 제조업체나 판매사에 한시적으로 디지털 전환 비용 일부를 부과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지상파 텔레비전방송의 디지털 전환과 디지털방송의 활성화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용경 창조한국당 의원도 디지털 전환의 수혜를 입는 가전사에서 전환기금의 일부를 부담하도록 하는 별도의 디지털전환법 개정안을 조만간 발의하기로 했다.

 민주당 등 야당 관계자는 “경제논리로 접근하기보다 기업의 책임, 사회적 환원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법안이 통과되면 시행령에서 가전사 부담액을 매출액 기준이 아닌 수익금의 0.5%∼0.1% 수준으로 하겠다는 방침이다. 업체에 큰 부담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용경 의원 측도 “국가적 사업에 혜택이 예상되는 사업자가 일정부분 책임을 나눠갖자는 데는 국민 대다수가 공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디지털 전환과 관련해 가전사에 강제로 금전적 부담을 전가하는 것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방송의 디지털 전환은 방송사의 설비투자와 관계되는 사안인데 가전사에 부과하려는 것은 법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한 가전업체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디지털TV 수신기술 및 세트 개발을 위해 매년 수천억원의 투자를 해왔는데 다시 전환 비용을 분담하는 것은 기업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TV 제조업체의 전환 비용 분담은 미국·일본·유럽 등에도 선례가 없는 것으로 (만약 분담이 확정된다면) 해외 수출대상 국가에서 동일한 요구를 해올 경우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민간기업이 디지털 전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면 보편적 서비스사업자인 통신사의 설비투자 비용을 장비업체가 부담하고, 신문사의 인쇄설비 교체 비용을 설비 및 신문용지 업계가 부담하라는 얘기냐”라면서 “강제 부과는 방송사만 특혜를 주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산업진흥회는 업계 차원의 의견을 수렴, 이른 시간 내 관계 부처에 의견을 개진하기로 했다. TV 업계의 국내 영업이익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신규로 부담을 주면 업체들의 영업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 당국과 여당의 반응도 부정적이다. 방통위 고위 관계자는 “가전업체가 TV를 판매하면서 디지털 전환 일정을 국민에게 홍보하는 등 부가적인 역할은 가능하겠지만 사기업에 금전적 부담을 강제하는 것은 부정적인 기류가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야당 측은 “정부와 한나라당은 자금 조달방안·지원시스템은 마련하지 않고 전환 일정만 밀어붙이는 격”이라며 맞섰다.

 아직까지 방송사의 논리에 일부 정치권이 가세하는 상황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국회에서 정치 쟁점화하면서 방송사의 논리를 대변하는 상황으로 번져가게 되면 의외의 상황을 맞이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방송의 디지털 전환과 관련해 케이블사업자를 지원하는 법안은 별 문제 없이 추진될 전망이다. 이성헌 한나라당 의원이 이 같은 내용의 법안을 이미 발의한 데 이어 이용경 의원과 전병헌 민주당 의원도 각각 소외계층에 대한 케이블 사업자 역할과 셋톱박스 구매비용 지원 등의 내용을 포함한 법률 개정안을 다음주 발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승규·양종석기자 se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