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100만번째 단어는 ‘희망’

[데스크라인] 100만번째 단어는 ‘희망’

 100만번째 영어 단어가 10일 탄생한다. 미국 텍사스 소재 신조어 연구기관인 글로벌랭귀지모니터(GLM)는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영국 스트래퍼드 어폰 에이번 시각으로 10일 오전 10시 22분에 100만번째 영어 단어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 단체는 새로운 단어가 각종 미디어나 소셜네트워킹사이트(SNS), 다른 경로 등을 통해 2만5000회 이상 사용될 경우 신조어로 간주한다. 100만번째 영어 단어로 선정될 유력 후보군에는 슬럼(slum)과 개(dog)가 결합돼 ‘빈민가 거주민’을 뜻하는 ‘슬럼독(slumdog)’과 ‘교류를 끊다’는 의미를 가지며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의 SNS에서 주로 쓰이는 ‘디프렌드(defriend)’가 있다. 이들 단어와 함께 은행가(banker)와 갱스터(gangsta)의 합성어인 ‘뱅스터(bangster)’, 인터넷 사용자 사이에 ‘신참’을 의미하는 ‘누브(noob)’ 등이 최종 후보군에 올랐다. 이 외에도 몇몇 신조어가 후보군에 올라와 있지만 개인적으로 ‘슬럼독’을 빼고는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없다. 그나마 이 단어가 눈에 띄는 이유는 단어 자체에는 가난과 슬픔이 묻어 있지만, 영화에서처럼 ‘작은 희망’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상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이 신조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선 경제와 관련된 단어들이 유행했다. 금융위기로 부도 위기에 놓인 GM 등 자동차 빅3는 ‘TBTF(Too Big To Fail)’라는 약어로 불렸다. ‘대마불사’라는 말처럼 망하도록 내버려두기에는 빅3가 너무 크다는 의미를 가졌다. 각 기업들이 보너스 대신 구조조정 및 임금삭감에 나서자 ‘말러스(malus)’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이 단어는 ‘보너스’의 반대말로 통한다. 이들 신조어 역시 경기침체로 우울해진 미국 사회를 반영한다. 이렇듯 미국에서 유행한 신조어 중에 ‘희망’을 내포한 단어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청년 실업과 일자리 창출이 화두였던 올 상반기 국내에서는 ‘인턴’과 관련된 ‘행인’ ‘메뚜기 인턴’ 등의 신조어가 대학가를 중심으로 유행했다. ‘지나가는 사람’을 의미하는 ‘행인(行人)’은 행정인턴을 부르는 신조어다. 아르바이트와 별반 다를 게 없이 정해진 짧은 기간 동안 잔심부름만 하다 가는 행정인턴들의 서러움과 세태를 반영했다. 조직에 적응하지 못해 중도 이탈하는 인턴도 꾸준히 늘면서 ‘메뚜기 인턴’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메뚜기 인턴’이란 인턴으로 입사한 후 중도에 그만두거나 더 나은 인턴자리를 찾아다니는 사람을 말한다. 이 외에도 ‘삼일절(31세까지 취업 못 하면 취업 길 막힌다)’ ‘청백전(청년 백수 전성시대)’ 등의 신조어가 등장, 청년 실업 문제의 심각성을 반영했다.

 단어는 생명력을 지닌다. 새로 탄생하는 단어가 있는가 하면 세월이 흐르면서 경쟁력을 잃고 사라지는 단어가 있다. 88만원 세대·이태백 등의 단어는 하루빨리 소멸되고, ‘한국판 빌 게이츠’ ‘청년 실업 제로(0)’ 등과 같이 ‘보고 듣고 말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신조어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10일 발표될 100만번째 영어 단어 역시 모두에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단어가 뽑혔으면 좋겠다.

 김종윤 국제부부장 jy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