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침묵해온 과학기술계가 현 정부의 과기 정책에 대한 쓴 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국가 발전의 근간인 과학기술 정책이 화려한 외형을 입었지만 실속은 챙기지 못한다는 위기감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과학기술부 폐지로부터 출발한 컨트롤타워 부재 문제는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투입의 효율성과 직결됨으로써 현 정부는 물론 다음 정부까지 문제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다.
27일 과실연(대표 민경찬)이 발표한 설문조사는 학계(375명)와 출연연(319명)·산업계(110명) 등 과기 전문가 집단을 대상으로 과기계의 목소리를 종합적으로 담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MB정부 중간평가에 따른 성적은 한 마디로 “양적으로 성장했지만 국가 과학기술 조정능력의 부재로 실효성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부처 개편에 따른 ‘컨트롤타워 부재’가 이번에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응답자의 64%가 현정부의 과학기술 정부 조직개편이 ‘잘못’ 또는 ‘아주 잘못’이라고 답했다. 국가과학기술정책 종합조정기능 작동 여부를 묻는 질문에도 63%가 ‘잘 안 되고 있다’를 선택했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과기계는 과학기술부총리제 부활(47.5%), 국과위 확대개편 및 종합조정기능 강화(36.1%), 청와대 과학기술 수석 신설(10.8%)을 꼽았다.
‘577전략’ 등 주요 국가과학기술 전략에 대해서도 양적 투자 증대를 환영하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적지 않았다.
과학기술인들은 MB정부 들어 가장 잘한 정책으로 ‘기초원천 연구개발비 투자비율을 2012년까지 50%로 확대하는 것’을 꼽았다. 그러나 정부의 연구비 확대로 연구기회가 확대됐다는 응답은 29%에 그쳤다. ‘별 차이가 없다(51%)’거나 ‘오히려 연구기회가 감소됐다고 느낀다(20%)’는 응답자가 많아 연구비의 효율적인 분배 문제가 부각됐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은 세계수준대학(WCU)에 대해서도 ‘반대’ 또는 ‘적극 반대’ 의견이 42%로, 찬성하는 응답자(30%)보다 많았다. 특히 외국 연구자들을 필요 이상으로 우대하면서 국내 연구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이유 등으로 대학의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과실연은 밝혔다.
이규호 과실연 공동대표(한국화학연구원 연구위원)는 “정부가 13조원이 넘는 연구개발 예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는지를 이제 꼼꼼히 따져볼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가 곧 마무리할 출연연 선진화 작업도 논란거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 주도로 출연연이 흔들리는 것에 대해 과학기술인의 59%가 반대했으며 특히 출연연 연구원들은 83%가 부정적 견해를 표명했다.
출연연 거버넌스 개편에 대해 전길자 과실연 공동대표(이화여대 화학과 교수)는 “국과위를 상설조직화하고 부총리급 위원장과 과학기술혁신본부 형태의 사무국을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며 “기초연과 산기연 산하 출연연은 국과위 소속으로 편입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과실연은 지난 3월 ‘현 정부 과학기술정책 중간평가 TF’를 구성해 이번 설문조사를 실시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내달 25일 포럼을 개최한 뒤 6월 중 과기계의 종합 정책 제언을 정부에 제출할 계획이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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