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한국 벤처여, 세계로 비상하라

“도전정신이 많이 줄었다. 도전해서 실패하는 것이 두렵고, 실패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젊은이들이 확신을 갖지 못한 것 같다.”

지난달 19일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마포 강북청년창업센터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던진 말이다.

`도전` `실패`. 이 두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가 `벤처`다.

고위험고수익(하이리스크하이리턴)을 추구하는 벤처.

정확히는 두 단어에 `고수익(대박)`을 더하면 그것이 바로 벤처다.

2000년대 초반 벤처 버블(거품)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오랫동안 벤처에 대한 꿈과 희망도 사라졌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은 `벤처`라는 단어에서 절망 · 실패를 더 먼저 떠올린다. 버블 여파다.

하지만 이제는 변하고 있다. 정확히는 바뀌어야 한다. 한국 경제 특성상 정부가 바뀌어야 하고 바뀌고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벤처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대단하다”고 말했다.

늦었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2001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MS) 당시 CEO는 “(벤처) 버블의 붕괴는 기술 붐의 종말이 아니라 그 시작의 낢이라고 말한 바 있다. `버블 붕괴`란 위기를 기회로 봤으며, 그의 예상은 정확했다.

기술 없이 가능한 산업은 없다. 전통 굴뚝산업도 그 자체로는 경쟁력을 잃어간다. IT를 접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그것이 바로 고객에게 어필하는 수단이다. 그 새로운 기술을 누가 개발하느냐가 글로벌 무한경쟁에서의 기업 생사(生死)와 직결된다.

지금은 한국 벤처에 크나큰 기회다. 빌 게이츠 MS CEO가 말한 벤처 버블 붕괴시점을 새로운 기회로 활용하지 못한 우리에게는 지금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새로운 도전의 기회다.

시장은 크게 바뀌었다. 그동안 변화를 두려워하며 기존 고객과 시장을 고수했던 기업들은 이번 위기를 계기로 자신을 새롭게 보고 있다. 기업들의 사업부 매각, 인수합병(M&A) 그리고 인력 구조조정이 그 사례들이다.

기업 수요자들도 변화한다. 더 좋은 품질에 더 좋은 가격을 찾고 있다. 그동안 높은 진입장벽으로 뚫지 못했던 우리 기업들에게는 절호의 기회다. 소비시장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아왔다. 위기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였다. 그래서 상품을 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적당히 필요하면 사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꼭` 필요한지를 돌아보게 한다. 이들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한다. 제품에 혁신을 가미해야 한다.

한국 벤처에 시장에서의 기회요소만 힘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재원도 풍부하다. 벤처기업이 맘껏 기술개발에 매진할 수 있도록 벤처캐피털업계는 자금을 쏟아 부을 준비가 돼 있다. 벤처펀드 시장은 우리나라가 미국과 비교해 얼마나 기회요인인지 명확히 알 수 있다. 미국 벤처펀드 시장은 2007년을 정점으로 최근까지 가파른 하락세다. 2007년 362억달러에 달했던 벤처펀드 결성규모는 2008년 285억3000만달러, 지난해 158억2000만달러 그리고 올들어서도 6월말 현재 65억5500만달러에 불과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금이 안전자산만을 찾아서다.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는 벤처에 `위기`라는 불안감이 투자에 나서는 것을 막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이번 글로벌 위기에 벤처펀드 결성규모가 오히려 늘었다. 2007년 9626억원이었던 신규 펀드 결성규모는 2008년 1조1435억원으로 1조원대에 진입했으며 지난해는 그 규모가 1조4069억원까지 올랐다. 올들어서도 7월말 현재 7568억원이며 연말까지 여러 펀드 출범이 대기 중이다. 업계에서 하는 말로 `총탄은 장전된` 상태다.

시장은 분위기며 흐름이다. 우리는 과거 벤처 거품이 사라질 때 끝없이 추락하는 악몽을 경험했다. 날개 없는 추락을 느꼈으며 크나큰 고통을 온몸으로 겪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당시의 고통이 언젠가는 우리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때가 드디어 왔다.

대통령부터 시작해 정부가 `벤처`에서 다시 희망을 논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지난해 2기 벤처지원대책에서 2012년까지 1만개 벤처가 탄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이들 신생벤처는 2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으로 전망했다.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과거 벤처 열풍 당시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이 숫자도 결코 많아 보이지는 않다.

사회가 변화하고 정부가 바뀌고 산업계가 꿈틀거리고 있다.

이제는 도전이다.

각계에서 젊은이들의 도전을 원하고 있다. 제도도 완비되고 있다. 그들의 의욕을 갖고 펼친 경험이 결코 헛되지 않고 다시 활용할 수 있도록 `재도전` `회생` 이라는 명칭을 담은 프로그램들이 속속 만들어진다.

벤처인의 과감한 도전정신을 북돋기 위한 움직임도 있다. 대학생 등 청년기업가정신 운동이 전개되고 있으며, 청년 기업가정신센터도 민관 공동 출자로 설립된다. 미국에는 1992년 리더십센터가 설립돼 기업가정신이 확산되기 시작했고, 이미 1989년부터 뱁슨대를 시작으로 기업가정신 학부가 생겨났다. 영국에서도 1996년부터 유사한 움직임이 진행됐다.

늦었지만 오히려 우리에게는 더 크고 강하게 다가올 수 있다. 이러한 `다시 해보자` `도전하자`는 정신이 일시에 충만한다면 결코 시점은 중요하지 않다.

황철주 벤처기업협회장은 벤처인들에게 `창조적 명품을 만들자`는 비전을 제시했다. 정리하면 과거 좁은 국내에 얽매이지 말고 과감히 세계로 나가 인정을 받자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벤처고, 이를 통해 한국 벤처의 저력을 과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100% 옳다. 지난 벤처 붐이 일시에 그것도 크게 붕괴됐던 배경에는 내수 위주의 기업들이 너무 많아서다. 좁은 시장에 수적으로 너무 많은 벤처가 몰렸고, 이는 커다란 거품으로 이어졌다.

더 이상의 실패는 없다. 우리는 과거의 실패를 바탕으로 많은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우리에게 저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 저력을 살리는 순간, 우리는 `제2기 벤처 성공신화`를 논할 것이며 그 시점에 우리 벤처기업들은 당당히 세계시장 곳곳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을 것이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