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T CEO] 이재원 슈프리마 대표

2000년대 초반 지문인식 기업은 모조리 사기꾼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다. 국내에서는 도저히 판로를 찾을 수 없어 생존을 위해 해외 시장에 눈을 돌렸다. 하지만, 세계의 벽은 높기만 했다. 사업 초기엔 지문인식 모듈을 들고 무작정 찾아간 세계 최대 보안전시회에서 발품을 팔았지만 바이어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창업 10년을 맞이한 현재 발품을 파는 주체는 전 세계 바이어들로 바뀌었다. 세계 최대 보안전시회에서 지문인식 기업 중 가장 큰 전시관을 열고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고객을 맞느라 분주하다. 세계인의 손도장을 정확히 판독하는 지문인식기를 10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세계 시장 점유율 20%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슈프리마 이재원 사장(42)이 일군 성과다.

처음부터 벤처 창업이 그의 꿈은 아니었다. 이공계 출신답게 엔지니어로 사회에 진출해 기술연구에 몰두하며 평범한 나날을 보냈다. 박사학위 취득 후 첫 직장인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에서 신수종 사업이었던 자동차 연구를 택하면서 그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발전한 분야였던 지능형 차량시스템을 개발해 상당한 성과를 냈지만,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구조조정하면서 그의 엔지니어 자부심도 수포로 돌아갔고 대기업의 조직 생활에 대한 깊은 회의감을 느꼈다.

그는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학창시절 동고동락했던 서울대 전기공학과 후배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IMF 외환위기 여파로 원하는 직장에서 원하는 연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의기투합은 예상외로 쉬웠다. 한창 달아오른 벤처 창업 분위기도 창업에 힘을 실었다. 창업 당시 미세전자제어시스템(MEMS)을 사업 아이템으로 택했지만,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으로 1년 만에 지문인식 기술로 방향을 틀었다. 세계에 내놓아도 남부럽지 않은 최고의 지문인식 기술을 보유한 슈프리마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확신에 가득한 방향 전환이었지만, 외적인 환경이 나빠도 너무 나빴다. 2000년대 초반 지문인식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은 최악이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패스21 사건` 탓이다. 패스21은 `DJ 정권` 말기 정국을 뒤흔들었던 `윤태식 게이트`의 중심에 자리한 기업이다. 지문인식 관련기업은 모조리 사기꾼으로 취급받던 시절이었다.

“벤처 거품이 빠진데다 패스21 사건까지 겹쳐 투자도 받지 못하고, 국내에서는 제품을 팔기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악조건은 슈프리마를 강한 기업으로 만들었다. 벤처 붐을 등에 업고 수백억원의 투자금을 받아 홍보와 마케팅에 치중했던 벤처 1세대 기업과 달리 그는 원천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었다. 시장에서는 불신이 강했지만, 지문인식 기술에 대한 이 사장의 확신은 굳건했다. 지문인식 분야는 기술의 혁신이 제품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앞선 기술력만으로도 승부를 걸 수 있다고 판단했다.

“IT 제품군 중에서 기술력이 제품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지문인식입니다. 대기업은 브랜드와 마케팅으로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많지만, 지문인식만큼은 예외였죠.”

그의 확신은 틀리지 않았다. 사실, 지문인식 분야는 높은 인증률과 인증속도가 제품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지문인식 제품은 인증률 및 인증속도를 높이기 위한 알고리듬과 센서를 비롯한 다양한 주변 기술이 필요하다. 한 마디로 기술 장벽이 매우 높은 분야다. 대기업이 브랜드와 마케팅을 앞세운다고 해도 기술력 강한 중소기업을 쉽게 무너뜨리기 힘들다. 벤처기업 슈프리마의 성공이 이를 증명한다.

2년 여 간의 연구 끝에 2002년 지문인식 모듈을 개발했지만, 국내에서 판로를 찾기는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야만 했다. 첫 시제품을 넣은 여행 가방을 들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보안전시회인 `ISC WEST`를 찾았다. 보따리 장사꾼처럼 전시관을 돌아다니며 무작정 제품을 홍보했다. 회사를 위해 창업멤버이자 학부시절부터 박사과정 때까지 함께 연구하던 문영수 부사장도 해외영업에 직접 뛰어들었다.

한 마디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얻은 것이 더 많았다. 세계 시장의 높은 벽을 뼈저리게 느끼고, 세계 시장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슈프리마를 전혀 모르는 고객에게 물건을 팔려고 달려들 만큼 절실했습니다. 비록, 물건을 팔지 못했지만 직접 고객과 부딪혀본 것만으로도 큰 성과였습니다. 팔리는 제품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어요.”

이듬해인 2003년 세계 시장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의 기술을 개발했다. 결국 2004년 지문인식 알고리듬 세계 경연대회(FVC)에서 1위를 수상하고, 미 연방수사국(FBI)의 인증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이 회사는 ISC WEST에 당당히 참가하기에 이른다. 엔지니어 출신인 문 부사장이 이끄는 해외영업팀은 다른 경쟁 회사와의 영업력에서 차별화를 꾀하기에 충분했다. 지문인식 분야는 고객도 전문가인 경우가 많아, 엔지니어 출신 영업자가 기술에 대한 깊이 있는 설명이 매우 효과적이었다.

처음부터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려 판로를 개척한 것은 슈프리마를 강소기업으로 성장하게 만든 원동력이다. 몇 개의 해외 대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정반대의 사업 방식을 선택했다. 전 세계에 걸쳐 거래선을 두고 있어 외부 충격에 강했다. 일례로 지난해 세계 경제 위기가 유럽과 북미 대륙을 휩쓸 때 선진국 시장이 크게 출렁거렸지만 슈프리마의 매출에는 영향이 미비했다. 경제위기 여파가 미치지 않은 브라질과 인도 등의 수출이 증가, 완충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해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초기부터 마케팅 전략도 과감하게 짜기 시작했다.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인터넷 검색광고를 시도했다. 구글 · 야후 등 유명 해외 검색사이트에 영문으로 지문(Fingerfrint)을 입력하면 슈프리마가 가장 먼저 배치되는, 지금은 일반적인 검색광고를 한 발 앞서 시작했다. 인터넷 검색이 마케팅의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란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이공계 출신으로 마케팅이나 경영을 따로 공부한 적 없는 이 사장의 타고난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학창시절 동아리 활동을 했던 경험이 회사 경영에 큰 밑천이 됐다고 회고했다. 여행 동아리 활동을 하며 호연지기를 기른 덕분에 위기 속에서도 기업 경영을 대담하게 해왔다고 귀띔했다. 여러 사람과 어울리고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이 사장은 직접 나서 대학 연합 연극동아리를 만들어 직접 연기는 물론 캐스팅과 기획까지 다양한 역할을 도맡아 했다. 연극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의 협업을 몸소 익혔다.

동아리 활동의 중요성을 잘 아는 이 사장은 사내 동아리 활동을 적극 지원한다. 중소기업이지만 기업 문화를 조성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직원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만들어내는 문화가 슈프리마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회사 발전 시기에 맞춰 재무 · 회계에서부터 조직관리 등에 이르는 경영학을 독학으로 공부한 이 사장은 이공계 위기 현상에 대해 일침을 놓았다. 이공계는 비전이 없다는 편견부터 깨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우리나라가 먹고 사는 길은 결국 수출뿐이에요. 다만 수출 산업이 제조업에서 콘텐츠와 서비스로 바뀌었을 뿐이지 뭔가를 창조해내야 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죠. 창조력의 핵심은 기술에서 비롯됩니다.”

지문인식 분야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지문인식뿐만 아니라 바이오인식 업계 1등이 되기 위한 첫 발을 내딛었을 뿐이다. 주로 범죄수사 및 출입통제에 쓰이는 바이오인식 기술은 응용 분야가 폭넓다. 바이오 인식 응용 분야에서 모두 1위를 거머쥐는 게 그의 목표다. 이 사장은 바이오 인식산업의 미래를 매우 밝게 내다봤다.

“올해 초 미국 인구통계청에 지문스캐너를 수출한 뒤 미국 지문인식 업체와 특허 소송이 붙었어요. 중소기업으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죠. 꽤 괜찮은 시장에 들어가려다 보니 견제가 들어오는 것 같아요.”

특허권 분쟁에도 굴하지 않고 슈프리마 제품은 오늘도 전 세계로 팔려나가고 있다. 얼마 전 슈프리마는 벤처캐피털을 설립했다. 제2의 슈프리마 기업을 직접 발굴 · 육성하고 바이오인식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서다. 토털 바이오인식 1위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그의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경원기자 w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