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패러다임의 변화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디지털시대를 꿈꾸던 때가 불과 10여 년전인데 벌써 정보화시대를 거쳐 스마트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변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따라다니기 조차 버거울 지경이다.
이런 변화의 바람을 타고 호황을 누리는 산업이 있다. 콘텐츠 산업이다.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콘텐츠를 담아낼 수 있는 미디어가 많아지면서 콘텐츠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에는 누가 얼마나 많은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느냐가 세력의 크기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에 이르렀다. 대기업간 콘텐츠 확보전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애플이 앱스토어에서 보여주었듯이 이제는 콘텐츠 강자가 모든 것을 움켜쥐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우리나라도 이런 시대에 대비해 오래전부터 많은 준비를 해왔다. 콘텐츠진흥원을 설립해 우리 문화원형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벌이는가 하면 될성부른 콘텐츠에 지원을 집중하기도 했다. 최근 유럽 하늘에 울려 퍼진 한류 열풍은 이런 노력의 결과물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최근 한 기관에서 콘텐츠 제작지원사업의 지원대상을 선정하는 심사에 참여했다가 너무나도 실망스러운 현실을 접하고 말았다. 수십 건의 응모작 가운데 순수한 창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대부분이 기존 작품을 다른 플랫폼용으로 컨버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기존의 것을 여기저기 짜깁기해서 내놓은 작품도 있었다. 3D솔루션 기술을 활용해 이야기책을 교육용 e북으로 제작하겠다는 과제가 그나마 그럴듯했지만, 이도 전혀 새로운 콘텐츠는 아니었다.
물론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기존 플랫폼에서 인기를 끌었던 콘텐츠를 원소스멀티유즈(OSMU) 차원에서 활용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콘텐츠 시장이 아류작이나 모방작 또는 그동안 보아왔던 콘텐츠의 확장판으로만 채워져서는 곤란하다. 이 정도로 소재가 말라버린 것인가 하는 씁쓸함은 당일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전문가들이 동일하게 느낀 감정이었다. 콘텐츠산업은 향후 우리의 먹을거리를 제공할 대표적인 창조산업이다. 그럼에도 한류의 성공에 들떠 안일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아직도 가슴 한켠이 무겁다.
김순기 경인팀 차장 soonk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