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오월동주

 중국 병법서 ‘손자’의 ‘구지편(九地篇)’에는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이라도 같은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면 양손이 협력하듯이 서로 돕기 마련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원수지간이지만 부득이 협력하는 이 상황은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고사성어로 남았다.

 이윤이 최대 목적이자 경쟁이 필연인 기업 간에 오월동주는 다반사다. 최근 발표한 도시바와 히타치, 소니의 중소형 LCD 사업을 통합 결정이 좋은 사례다. 한 치의 양보 없는 경쟁을 벌이던 기업이 이제는 동지 관계를 맺었다.

 3사 통합은 한국에 밀린 일본 LCD 산업이 선택한 배수의 진이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는 올해 들어 샤프까지 제치고 업계 1위 자리를 굳히는 양상이다. 작년까지 8위 수준이던 LG디스플레이도 수직상승, 3위 자리를 넘보는 분위기다.

 도시바와 히타치, 소니는 업계 4, 6, 7위에 불과하다. 각개전투로는 더 이상 살아남기 힘들다고 판단한 3사가 오월동주를 선택한 셈이다. 어려운 결정을 내렸지만 3사가 함께 탄 배는 출항 전부터 불안해 보인다.

 아사히신문조차 칼럼에서 “성공 여부는 진정한 융합에 달려 있다”라고 전제하며 “일본에만 6개의 공장이 있고 기술도 다른 3사가 융합하기는 쉽지 않다”라고 진단했다. 더욱이 3사 협력에서 차세대 유망주인 OLED는 배제됐다.

 한국 디스플레이 업계는 TV용 중대형 LCD에서 원조 격인 일본을 앞지른 경험이 있다. 현재 디스플레이 업계가 전반적으로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기술과 생산, 판매 등 모든 영역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달린다.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와 월나라가 치열하게 겨뤘지만 결국 남부 지역을 아우른 주역은 초나라다. 도시바와 히타치, 소니의 오월동주가 성공할지는 미지수지만 한국 LCD 업계가 아직 초나라라고 자신하기는 이르다. 더욱 기술을 다듬고, 정확한 안목과 신속한 투자라는 3박자를 갖추는 세계 최고의 한국 디스플레이 업계를 기대한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