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기획] 김정주 회장이 직접 밝히는 “넥슨스토리"

사진=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사진=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짧고 희끗희끗한 머리, 둘러멘 가방끈에 캐주얼한 양복. 단출하고 깔끔한 차림이었지만, 표정만큼은 변화무쌍했다. 말하는 사람의 얼굴을 주의 깊게 바라봤다. 김정주 넥슨 회장(NXC 대표)을 처음 만났을 때 받은 인상이다. 시종일관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기자들을 대하는 태도에선 부끄러움마저 느껴졌다. 1시간여 질의응답 후 그를 둘러싼 기자들에게 가벼운 목례를 건네며 인터뷰장을 빠져나간 것이 올해 5월이었다.

 ◇김정주 넥슨 회장이 KAIST 강단에 선 까닭=넥슨의 일본 기업공개(IPO)를 한 달가량 앞둔 16일 김 회장을 대전에서 만날 수 있었다. KAIST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었다. 검정색 셔츠 위에 짙은 남색 운동복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여전히 수줍음이 많았고 한층 더 자유로워보였다.

 이례적 결정이었다. 2005년 그는 넥슨홀딩스(NXC 전신)를 만들고, 넥슨을 지주사 형태로 개편하면서 경영 일선에서 사라졌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 수업을 들으며 5년간 학생신분으로 지냈다. 그는 선배로서 사회적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올해 초 KAIST에서 자살 사건이 이어지고, 제가 다니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도 마찬가지 불행한 일이 있었어요. 그들에게 더 많이 놀아야 한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었어요.”

 김 회장은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겸임교수 자격으로 학생들에게 지난 석 달여 동안 창업 노하우를 전수했다. 일회 특강이 아닌 한 학기 동안 강연을 맡은 것은 학생들과 깊은 교류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 어울리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주 대구를 방문해 학생들과 테마파크를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지난주에는 에버랜드도 함께 다녀왔다.

 12월 상장 일정이 밝혀진 직후인데도 강의실의 분위기는 예상 외로 조용하고 진지했다. 강의는 ‘기술 벤처’를 주제로 ‘왜’ ‘무엇을’ ‘어떻게’ ‘누구와’ 해야 하는지, 자유로운 질문과 답변, 벤처기업 탐방 등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공장이든 학교든 현장을 직접 찾아가 경험해야 한다는 오랜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KAIST가 ‘벤처창업의 요람’이 된 사연=이날 그의 이야기는 ‘누구와’가 주제였다. 어떤 사람들과 함께 팀을 이룰 것인지가 주제였다. 그의 창업 이야기에는 이해진, 김택진, 김영달 등 내로라하는 벤처기업인이 모두 등장했다. 함께 회사를 다니지 않았지만, “입사동기 같은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김 회장은 ‘바람의 나라’ 개발부터 이야기를 풀어갔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그는 공부보다 창업에 더 관심이 많은 KAIST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그는 당시 박사과정에 흥미가 없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대덕전자(현 대덕GDS)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을 벌었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괴짜박사’로 유명한 이광형 KAIST 석좌 교수 아래서 연구실을 다녔다. 정철, 박현제, 허진호 등 벤처열풍을 주도한 이들과 함께 전길남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프로그램 제작을 도맡았다.

 그는 대학원 동기였던 송재경 현 엑스엘게임즈 대표와 둘이서 게임 개발을 시작했다. 송 대표는 1993년 게임개발을 시작, 게임의 틀을 만들었다. 당시 IBM의 잦은 조직개편 덕분에 서버며 가구, 집기를 가져올 수 있었던 사연부터 외부 벤처자금을 끌어들이지 않은 배경에 대해서도 모두 이야기했다.

 “인터넷의 첫 과금은 1997년 여름 즈음으로 기억해요. 그때 제 기억에 PC방이 처음 나왔어요.”

 1996년에 한 달에 100만원을 벌던 것이 1998년에 이르러서야 매출 100억원을 기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PC방 과금을 통해 유료화 노하우를 쌓아가던 경험도 털어놨다.

 웹에이전시 일을 도맡아 대기업의 홈페이지를 제작해주는 ‘용역’일로 회사 운영을 계속했다. 그때 함께 인터넷 일을 한 것이 KAIST 시절부터 친분을 쌓았던 나성균 네오위즈 대표다. 나 대표의 웹에이전시 사업덕분에 넥슨은 운영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는 나 대표를 두고 “모든 면에서 유능한 친구”며 “엔씨소프트를 뛰어넘는 피망(게임포털)의 성장을 보며 놀랍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도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인재를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대기업보다 벤처에 가까운 온라인 게임사를 선택하는 인재들이 줄지어 입사했다. 넥슨은 ‘인재사관학교’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전문가들이 몰렸고, 계속된 인수합병과 해외진출은 회사 가치를 비약적으로 성장시켰다.

 지난해 매출액은 9343억원, 이 중 해외매출은 절반이 훌쩍 넘는 5980억원이었다. 2001년 289억원의 연매출을 기록했던 회사가 10년 만에 30배 이상의 매출을 거두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세계 최고의 게임회사를 향해, 제2의 창업 ‘IPO’`=‘바람의 나라’의 등장은 대한민국 여가문화를 바꾸었다. 카트라이더 개발을 통해 ‘국민게임’이란 말도 등장했다. 남녀노소, 국경과 나이에 상관없이 어울려 온라인 게임에서 만났다. 15년 전 게임을 즐기던 초등학생은 어느새 직장인이 됐고, 넥슨도 작은 벤처에서 예상 시가총액 10조원을 훌쩍 넘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김 회장을 두고 ‘(상장하면) 대한민국 세 번째 갑부’ ‘은둔의 경영자’ ‘동물적 사업 감각의 소유자’라는 다양한 말들이 쏟아진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8조5265억원),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7조1922억원)에 이어 3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배우자 유정현 이사 몫까지 더한 지분법 평가이익을 두고 7조원대 재벌로 미리 추켜세우는 말들도 적지 않다. 이것 모두 그가 가진 지분을 시장에 팔았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넥슨의 일본 기업공개를 두고 의아한 목소리도 많다. 자본시장에서 평가액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세계 진출은 넥슨의 오랜 꿈이다. 넥슨은 1997년에 국내 게임업계 최초로 미국 실리콘밸리에 현지법인을 설립했으며, 가장 먼저 일본시장에 발을 디뎠다. 김 회장 역시 때로는 삶의 거주지를 송두리째 해외로 옮기기도 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김 회장과 게임회사 넥슨이다. 그는 ‘넥슨은 게임회사’라고 못 박았다. 영화, 음악, 미디어 사업도 넥슨의 몫이 아니라고 밝혔다. 넥슨의 주무기인 온라인 게임은 세계적으로 봐도 성장기의 어린아이나 마찬가지다. 세계 시장의 중심이 콘솔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지금, 그는 성숙된 시장에서 눈을 돌려 개척지인 해외로 발걸음을 옮길 계획이다. 그는 아직도 너무 젊은 기업인이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

사진 왼쪽부터 넥슨 일본법인 최승우 대표, 엔엑스씨 김정주 대표, 룩셈부르크 기욤 왕세자, 룩셈부르크 쟈노 크레케 경제통상부 장관
<사진 왼쪽부터 넥슨 일본법인 최승우 대표, 엔엑스씨 김정주 대표, 룩셈부르크 기욤 왕세자, 룩셈부르크 쟈노 크레케 경제통상부 장관>
김정주 엔엑스씨 대표이사(넥슨 회장)
<김정주 엔엑스씨 대표이사(넥슨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