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기인의 삶과 꿈]염승윤 C&S로고스 변리사](https://img.etnews.com/photonews/1111/206561_20111117141303_772_0001.jpg)
이른 아침 현관에서 신문을 집어 들면, ‘특허분쟁’이나 ‘특허전쟁’이란 헤드라인 기사가 눈길을 끈다.
최근 국내 굴지 대기업이 외국 유수 기업과 특허 소송을 벌이고 있고, 소송에서 지면 우리 기업 해외 수출에 큰 타격을 입을지도 모른다는 기사에 국민 생활 속에 ‘특허’란 단어가 자연스럽게 들어오게 됐다.
1984년 연세대학교 생화학과를 졸업하던 해,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취직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생화학 전공 학부 출신 여학생이 일반 기업에 취직하기란 쉽지 않았다. 전공과 무관하게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나의 길이 아닌 것 같아 전공을 살릴 수 있다는 이야기만 듣고 특허사무소로 이직했다. 특허가 뭔지, 변리사란 직업이 뭔지 아무것도 모른 채, 특허사무소에서 5년 동안 근무하면서 일이 너무 재미있었다. 평생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두 아이 엄마인 것도 잊고, 변리사 시험에 도전했고 다행히 합격했다. 그리고 변리사가 된지 올해 20년이 됐다. 책임의식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과학기술자들이 개발한 기술 하나하나가 변리사의 기술적·법적 지식에 의해 독점배타적 권리로 완성되고, 더불어 사업적 성공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책임감과 자긍심이 생기게 됐다.
90년대 만해도 해외 나가면 일본 전자제품 광고밖에 접할 수 없었다. 지금은 세계 어디를 가든 삼성이나 LG, 현대 등 제품과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90년대 초반 해외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가도 관심이 없던 외국 변리사들이 최근 빈번하게 우리나라를 방문하면서 우리 기업 지식재산권을 담당하고 싶어 하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런 성장은 밤잠을 설치면서 연구에 몰두한 대한민국 과학자들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 과학자들이 개발한 기술을 외국 기업보다 더 먼저, 더 확실하게 특허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조력한 변리사 역할도 컸다고 감히 생각해본다. 1986년 미국 반도체 회사 텍사스인스트루먼트가 삼성을 특허침해로 제소하면서 상당한 로열티를 수업료로 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거기서 좌절하지 않고 특허에 대한 마인드를 키우기 시작했고, 그 자리에 항상 변리사가 함께 했다고 자부한다. 변리사들은 기술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지재권에 대한 법적 지식과 다년간 경험으로 과학자들이 개발한 기술을 가능한 한 완벽하게 포장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마케팅하고 세일즈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또 과학자들이 개발한 기술이 시장에서 다른 경쟁자 지재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연구 초기 단계부터 관여해 사전에 지재권 침해를 예방하는 일도 하고 있다.
나의 노력과 발전이 작게는 과학자와 기업의 발전에 바탕이 되고, 크게는 국가의 발전에 기본이 된다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열심히 행복하게 살 것을 다짐해 본다.
염승윤 C&S로고스 변리사 syyeom@cnspat.com
후원: 한국여성과학기술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