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네 번째로 높다. 그러나 한편에선 이공계 기피현상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이를 외면하는 모순된 구조다.
조청원 과학기술인공제회 이사장은 이의 해법으로 ‘행복한 과기인’이란 키워드를 제시했다. 과기인이 행복해야 창조적 성과를 만들어내고 우수인재도 따라오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논리다. 이를 위해 고심해온 조 이사장이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행복한 과기인’을 만들기 위한 조 이사장의 계획을 들어봤다.
■대담 참가자
-조청원 과학기술인공제회 이사장
-주상돈 전자신문 경제정책부 부국장
◇주상돈 부국장=과기공제회가 빠르게 성장했다. 공제회라는 이름만 봐서는 과기인 연금을 비롯해 경제적 복지 지원이 주요업무일 것으로 생각된다. 과기공제회가 필요한 진정한 이유와 의미가 궁금하다.
◇조청원 이사장=단순한 복지 측면을 뛰어넘어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할 것이 있다. 공제회가 태동된 배경에는 이공계 기피현상 문제가 있다. 여기에 과기계 전체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았다. 과기계 내에서도 과학자 본인의 자긍심에 걸맞은 사회적 인식과 대우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를 해결할 주체가 필요했다.
과거 20~30년 전과 비교해 과기인은 같은 위치에 있지 않았다. 인생의 목표와 삶의 질이 30년 후인 지금에는 상대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하다. 과기인 복지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과기 분야에 새로운 차원의 자부심과 사회적 존중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했다. 공제회 역할과 성장배경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물론 과기인을 위한 연금과 복지도 중요하다. 그래서 정부와 과기계는 제도적 지원을 위해 지난 2002년 ‘과학기술인공제회법’을 제정했다. 이것이 공제회 시초다. 이후 연금제도, 공제급여제도, 복지서비스 등을 시행 중이다.
◇주상돈=미처 생각지 못했던 공제회 역할이 있는 것 같다. 과기인력 활용에 대한 구조적 측면에서 그렇고 시기적으로도 맞아떨어진다.
◇조청원=그렇다. 과기계는 이제 은퇴구조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지는 과기인력을 계속 연구소에 투입하는 구조였다. 이제는 은퇴가 이슈다. 정부연구소만 하더라도 올해부터 매년 1000~2000명이 은퇴한다. 과거에는 은퇴하는 과학자가 한 해 3~4명에 불과했다. 이제는 대규모로 나간다. 많은 경력과 경험을 가진 지식층이 지금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과학자는 연구에 돈을 많이 사용하지만 개인이 행복한지 의문이다. 과학자들이 행복해야 새로운 것을 만들고 창조적일 수 있다. 의욕적이고 열정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두 바퀴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왜 공제회가 필요한지,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의 답이 여기에 있다.
◇주상돈=공제회 자산 규모가 1조원을 돌파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조원 돌파의 의미가 적지 않을 것 같다.
◇조청원=지난 10월 21일 과기공제회 자산이 1조원에 도달했다. 설립 8년 만에 거둔 결실이다. 공제회 내부적으로 또 회원으로 가입된 과기인 입장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이 같은 자산규모에 도달하기 위해 소수정예 인력운영으로 사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했다. 금융시장에서 매년 8% 수준 수익을 얻을 수 있었던 점 등이 1조원 달성 원동력이다.
1조원이라는 규모는 새로운 사업을 위한 발판 마련 의미로 보고 싶다. 공제회가 과기인을 위해 구상했던 일들을 본격 추진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주상돈=자산규모가 커진 것은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재원의 성격과 활용 목표가 더 중요하다. 공제회 자산에는 정부재원도 포함된 것으로 안다. 자산 구성에서 정부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 되나.
◇조청원=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공제회 자산은 기본적으로는 과기인 자신들의 재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정부 종잣돈이 들어 있다. 1조원 가운데 정부 재원은 1500억원 정도다. 상대적으로 정부재원 비중이 적어졌다.
개인적으로 정부와 과기인 재원이 50 대 50 비율이 이상적이라 본다. 정부 지원이 정체되면 시간이 흐를수록 정부 비율은 줄어들게 된다. 그러면 공제회의 각종 사업이 당초 설립 의지와 다르게 갈 수 있다. 모든 자산이 과기인 개인 주머니에서 나온 재원이라면 새로운 사업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사업 가운데 돈이 안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냥 과기인 금고가 하나 더 생기는 결과밖에 안 된다. 정부 지원과 결합되면 좀 더 공익적인 일을 할 수 있다. 수익수준이 낮아도 과학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수익성에만 치중하면 어렵다. 공제회 자산이 커졌다고 정부가 손을 떼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주상돈=이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얘기해보자. 과기인의 경제, 의료복지 등도 중요하다. 하지만 공제회 사업 영역을 넓혀본다면 과기 분야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해결해줘야 할 것 아닌가. 과기인이 정말 원하는 것을 찾아야 할 것이다.
◇조청원=좋은 지적이다. 이미 공제회는 밑그림을 그려 놓았다. 내년부터 추진하고자 하는 세 가지 사업이 있다. 우선 과기인은 61세에 연구소에서 은퇴하는데 은퇴과학자 개인적으로 볼 때 본격적인 연구는 오히려 그때부터 시작이다. 인맥 네트워크도 넓고 노하우도 상당하다. 이들이 은퇴 후 20년 동안 일할 장소를 우리가 만들어 주려 한다.
과학자의 핵심은 창조다. 창조를 못하면 과학자가 아니다. 과학과 기술로 사회를 바꾸는 창조를 할 수 있도록 풍토를 마련해야 한다. 연구실은 나라에서 많이 만들어줬다. 하지만 실질적 창조는 연구실보다는 자유로운 사고와 대화가 가능한 분위기에서 만들어 진다. 연구와 휴양을 함께 할 수 있는 곳을 말한다. 수준급 과학자가 같이 모여 얘기하고 쉬는 장소를 만들려고 한다.
미국의 콜드스프링 하버 래버러토리(Cold Spring Habor Laboratory)를 모델로 연구와 휴양을 한자리에서 해결하는 리트리트센터(Retreat Center)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이와 함께 과기인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이 있다. 이들 지역 주요 이슈 역시 보육 문제다. 보육을 포함한 과학자들 복지를 종합적으로 지원할 콤플렉스를 지으려 한다. 전국 16곳에 대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들 지역이 1차 후보지가 될 것이다. 육아부터 교육까지 지원할 예정이다.
◇주상돈=정말로 필요하면서도 그동안 우리가 놓쳐왔던 부분인 것 같다. 어쩌면 단일 기관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나서야 할 일들로 보인다. 얘기 중 은퇴과학자를 위한 프로그램에 많은 관심이 간다. 은퇴과학자들의 열정과 노하우를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이 있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조청원=은퇴과학자 지원 사업은 역점 사업 가운데 하나다.
가칭 ‘한국석좌원’이란 것을 생각 중이다. 은퇴한 과학자들이 모여 투자하고 활동하는 곳이다. 법률 분야의 로펌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현재 전·현직 과학기술인, 기업인, 교수, 공공기관인사 등의 전문가들이 모여 사이언스펌(Science Firm) 형태로 비즈니스, 교육, 연구 등을 수행하는 복지플랫폼 사업모델을 구상 중이다. 경험 많은 과학자들의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다.
우선 이들을 활용한 교육이 있다. 문과를 전공한 사람들이 새롭게 기술을 배우는 과정이 대표적이다. 과학 분야에 30년 경험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 사회적 네트워킹을 컨설팅할 수도 있다. 기술을 가지고도 어떻게 활용할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주상돈=공제회 출범배경에 이공계 자부심 얘기가 있었는데 과학자들이 은퇴한 뒤에도 열심히 활동하는 것을 보면 많은 젊은이들이 공감할 것 같다. 미래 회원이 될 젊은 과학자 학생들을 위한 사업은 없나.
◇조청원=고민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석좌원에서 하는 일 가운데 주니어과학원이란 것이 있다. 석좌원 회원 봉사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석좌원만 제대로 이뤄지면 선순환 틀이 만들어질 것이다. 정부도 이러한 계획에 대해 정책연구를 진행 중이다. 공감대를 가졌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주상돈=여전히 개발을 하고도 상용화 못하거나 헐값에 매각된 기술에 대한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현직 과학인들도 자신이 힘들게 개발한 기술이 사업화를 통해 상용화되기를 원할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없겠는가.
◇조청원=과기계가 풀어야 할 큰 숙제 가운데 하나다. 이 부분 역시 공제회에서 다룰 분야다. 공제회 자산규모가 5조원 정도 되면 반드시 해야 할 사업 가운데 하나다. 일정 규모 재원을 토대로 한 사업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펀드가 선순환 구조로 돌아가야 한다. 현재의 기술펀드는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수익구조다. 하지만 공제회는 현 단계에서도 연구개발 특구나 연구인이 많은 지역 기술창업펀드와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주상돈=과학기술인을 위한 물리적 인프라인 공제회관에 관심이 많다.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가.
◇조청원=지난 2008년부터 대의원회와 이사회에서 공제회관 마련을 검토했다. 이후 지난 3월 공제회관 마련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추진 중이다. 당초 과학기술인 공제회관 마련 연구에 따르면 공제회관 적정 매입 시기는 연말에서 새해 초로 제시됐다. 이를 목표로 강남권역을 대상으로 공제회에 맞는 회관매입을 추진 중이다. 순조롭게 추진되면 내년 상반기 입주할 수 있을 것이다.
◇주상돈=최근 공제회가 장기적으로 추진할 비전을 새로 만들었다고 들었다.
◇조청원=안정적 자산운용과 고수익 실현으로 회원 자산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공제회 기본과제이자 최우선 과제다.
이를 위해 ‘비전 2033’의 3330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복잡하게 보이지만 이는 2033년에 30만 회원, 자산 30조원, 연금 월 330만원을 만들자는 구상이다. 충분히 달성 가능할 것이다.
◇주상돈=공제회가 추진 중인 많은 사업들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과기인의 기대가 클 것 같다. 반대로 과기계가 사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일도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른바 ‘공헌’이란 부분이다.
◇조청원=그 부분은 ‘일하는 복지’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사회에 공헌하면서 일하는 복지다. 이 모델을 만들어보고 싶다. 뉴욕에 인근에 위치한 유명한 연구소가 있다. 연구소는 모두 기업과 개인 기부로 만들어졌다. 뭔가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또 작게는 뉴욕을 위한 연구를 하자는 게 설립 취지다.
그런 연구소가 설립된 지 벌써 120년이 됐다. 지난 1953년에 이 연구소 연구원이 DNA를 규명했고 그 후 노벨상 수상자가 8명이나 나왔다.
과학기술의 한 단계 진보를 위해서는 당연히 내외부적으로 사회공헌 정신이 필요하다. 과학지식을 확대하는 지역별 과학관 건립 등을 추진하고 싶다. 과학자들이 자신의 지식을 공유하고 공헌하는 것. 이것이 한국의 과기계가 나아갈 길이라고 생각한다.
정리=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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