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품 초일류]1. 아날로그반도체<5>한국에도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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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디지털시스템온칩(SoC)으로 중소기업이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봐야 합니다. 설계회로를 웨이퍼로 만들어 보는 초기개발비만 수십억원이 드는데, 신생업체가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죠. 게다가 글로벌 업체는 원칩, 중국과 대만업체는 가격경쟁력을 내세워 그나마 있는 자리마저 줄어들고 있습니다. 오히려 시장이 작지만 품목이 무궁무진한 아날로그반도체에 희망을 걸어 볼 수 있습니다. 300억원짜리 품목 10개만 있어도 3000억원 회사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날로그반도체 전문기업인 류태하 디엠비테크놀로지 사장 이야기다.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중소·중견 기업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울 수 있는 길은 이제 아날로그반도체라는 설명이다. 틈새 시장을 찾기도 더욱 쉽고, 소량 다품종으로서도 성공할 수 있다. 중소기업으로 시작해도 기술력만 있다면 충분히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를 증명하듯 아날로그반도체 분야에서 성공사례가 하나 둘 이어지고 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국내 대표 팹리스는 모두 디지털 반도체 기업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의 통합칩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나는 초기 개발비 등이 발목을 잡았다. 디지털 분야에서도 여전히 중소기업이 공략할 만한 틈새시장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아날로그 분야만큼 다양하지는 않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아날로그반도체 기업들의 성장이 두드러져 보인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크게 알려지지 않은 많은 중소기업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들 모두 세계 최고의 아날로그 반도체 전문 기업이 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인재풀, 인력양성기관, 글로벌 시장의 유통망 등 어느 것 하나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없지만 걸음마를 떼고 힘차게 걸어가려는 모습만은 분명하다.

◇성공의 씨앗이 싹튼다=국내 LCD 시장 성장을 등에 업고 LCD 분야 팹리스는 대폭 성장했다. 아날로그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매출 3000억원을 돌파한 실리콘웍스는 LCD 드라이브 IC 등을 주력으로 한다. 이 제품들은 아날로그 기술력이 핵심이다. 더 나아가 실리콘웍스는 전력관리칩(PMIC) 등 아날로그 반도체 비중을 지속적으로 키워가겠다고 밝혔다.

LCD PMIC로 설립 4년 만에 매출 1000억원대 기업으로 성장한 실리콘마이터스도 대표적인 아날로그반도체 기업이다. 이 회사는 LCD용 PMIC 시장에서 더 나아가 모바일, 능동형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PMIC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다. PMIC는 에너지 절감과 모바일화라는 시대 요구에 따라 가장 성장성이 높은 아날로그반도체 중 하나다.

지난해 1000억원대 기업으로 등극한 아나패스 역시 인터페이스 등 아날로그 분야 기술력이 기반이 됐다. 이 회사는 이 기술을 근간으로 차별화된 타이밍 컨트롤러를 개발해 급성장할 수 있었다. 아나패스가 앞으로 사업을 확장해 갈 분야도 아날로그기술력을 특화한 영역이다. 압력을 감지해 이를 이용하는 촉각디스플레이용 칩이 대표적이다. 아나패스는 올해 이 칩을 출시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디스플레이 관련 분야에서 아날로그반도체를 전문으로 하는 주목할 만한 기업이 많다. 디엠비테크놀로지는 LED 드라이버와 앰프, PMIC 등이 주력제품이다. 소량 다품종 전략으로 약 1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디스플레이 관련 모든 아날로그 반도체를 섭렵하는 것이 목표다.

휴대폰 분야에서는 RF 송수신기(트랜시버) 기업이 많이 배출됐다. RF트랜시버는 안테나에 들어온 신호를 받아 베이스밴드 모뎀이 처리할 수 있도록 디지털로 변환해주는 역할을 한다. DMB용 RF 칩으로는 아이앤씨테크놀로지와 라온텍이 대표적이다.

최근 LTE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RF 업체의 성장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시티세미컨덕터와 FCI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두고 있다. 지시티세미컨덕터는 LG전자가 개발한 모뎀칩과 원칩을 만들어 시장에서 주목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엔비디아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FCI는 삼성전자의 LTE 베이스밴드 모뎀이 들어간 스마트폰에 채택되면서 입지를 다졌다. 이 회사는 하이패스 관련 칩도 개발해 자동차회사에 공급하기도 했다.

스마트기기의 성장과 함께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MEMS 센서를 전문으로 하는 국내 기업도 탄생했다. 지난해 송도 RFID/USN센터의 MEMS팹을 인수한 지멤스다. 지멤스는 올해 기반을 다져 스마트폰의 핵심 센서인 5대 MEMS(자이로·가속·압력·컴퍼스·마이크로폰) 센서를 모두 국산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햅틱 디스플레이 관련 아날로그 업체로는 위더스비전과 이미지스테크놀로지가 있다. 위더스비전은 이 분야뿐만 아니라 모터 드라이버 등 다양한 아날로그반도체 제품군을 갖고 아날로그반도체 전문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파운드리도 큰 역할을 했다. 동부하이텍은 5년 전부터 아날로그반도체를 전략제품으로 선정한 후 이 분야 소자기술과 공정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세계적인 전문가들도 꾸준히 영입했다. 2008년에는 TSMC 같은 선발 파운드리보다 앞서 0.18㎛급 복합전압소자(BCDMOS) 공정 개발을 완료해 시장을 선점하기도 했다. 현재는 0.35와 0.18㎛급 BCDMOS를 주력 공정으로 해 50여개의 국내외 아날로그반도체 설계회사에 서비스를 공급 중이다. 제품 포트폴리오도 기존 로직에서 아날로그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특화 파운드리 분야로 제품 구조를 전환하면서 경쟁력 확보에 성공했다. 동부하이텍은 그 결과 2010년에는 세계 특화 파운드리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이 회사는 세탁기·냉장고 등의 대형가전에서 자동차·로봇 등의 고부가가치 첨단 산업분야에 이르기까지 아날로그반도체 사업영역을 넓혀간다는 전략이다.

◇필요한 것은=아날로그반도체는 수천종의 제품이 있지만 국내 기업의 제품군은 그리 다양하지 않다. 시장이 넓고 종목이 다양한 것이 아날로그반도체의 특성 중 하나지만 다양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시장을 꿰뚫는 눈도 부족하다.

한 팹리스 CEO는 “아날로그 시장이 넓다고 하지만 솔직히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못하는 때가 많다”며 “그러다 보니 아날로그 기업이라고 하는 국내 기업이 대부분 비슷한 품목에서 경쟁하는 일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계나 정부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현황을 분석해 기술 지도를 그려주는 것도 중소기업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 인력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나마 중국과 대만 기업과 기술 격차를 벌일 수 있는 분야지만 사람이 없어 허덕이는 때가 많다.

허염 실리콘마이터스 사장은 “중국의 PMIC 인력을 보면 30대 초반이 주류인데 이는 중국의 이 분야 역사가 10년이 채 안 됐기 때문”이라며 “기술 주도권을 쥘 수 있는 분야인 만큼 집중적인 인력양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