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 거버넌스 새판을 짜자] <1부>미래 비전이 없다 ⑤기초 체력 약화

○…2008년 1월. 정부가 과학기술부 해체를 결정하자 관련 단체들은 폐지 반대 500만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단체들은 과학기술이 교육 현안에 매몰된다고 우려했다.

[ICT 거버넌스 새판을 짜자] <1부>미래 비전이 없다 ⑤기초 체력 약화

[ICT 거버넌스 새판을 짜자] <1부>미래 비전이 없다 ⑤기초 체력 약화

○…2010년 4월. 학계, 출연연, 산업계, 정부부처 등 종사자 87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74%가 현 정부가 가장 잘못한 정책으로 `과학기술부 폐지`를 꼽았다.

○…2012년 3월. 민주통합당은 과기부 부활로 정책과 예산을 연계 운영해 과학기술정책의 실효성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과학기술계는 즉각 환영했다.

국가 부강은 과학기술 발전과 맥을 같이한다. 한국은 지난 반세기 만에 국민소득 60달러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이면에는 이공계에 열정을 쏟아온 인재들과 현장에서 땀 흘려온 엔지니어들이 있었다.

하지만 과기부가 사라지면서 과학기술 이슈들은 뒷전으로 밀렸다. 청와대는 과학기술을 제대로 못 챙겼고 부처도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국가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소외된 과학기술=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현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 주안점은 지속가능 발전과 과학기술 연구개발사업의 결합 모색이었다. 또 과학기술 위상을 높이고 기초·기반·융합 기술을 국가경쟁력 핵심으로 선정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마련한 정책이 `577 이니셔티브`다. 과학기술 투자를 전체 예산의 5%로 높이고 7대 과학기술 중점 분야를 육성하는 동시에 7대 과학기술시스템을 선진·효율화한다는 내용이다. 또 `녹색성장`의 이념 하에 경제개발 문제와 환경 문제, 과학기술 연구개발사업을 결합했다.

`577 이니셔티브`와 같은 계량화된 정책 목표를 기반으로 주요 과학기술사업을 부흥하는 데 힘썼다. 특히 기초·원천·융합 연구의 중요성을 각인시키고, 이에 실질적 투자를 높이는 데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계량화된 목표를 넘어 과학기술, 경제사회의 통합적 가치와 이념을 창출하는 데는 부족했다. 과기계에는 과학기술이 경제발전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과학기술 거버넌스 문제가 지속적으로 불거진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이다.

◇섣부른 과기부 폐지=가장 큰 문제는 현 정부 출범 시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없애고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를 통합한 점이다. 정부는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의 물리적 통합으로 교육과 과학이 융합될 것으로 판단했으나 교육 이슈에 과학기술 현안이 묻히고 말았다.

이는 참여정부 시절과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가 있다. 참여정부에서는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을 위해 과학기술 부총리와 과기혁신본부를 뒀다. 특히 과학기술부가 부총리 부서로 승격한 것은 파격적이었다. 국가 R&D 예산의 1차 편성권도 과기부가 갖고 있었다.

하지만 교과부로 통합된 현 정부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R&D 예산 확보를 둘러싸고 지경부와 교과부 등 부처 간 갈등이 심화되고 사업 중복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교육과 과학기술 간 불균형도 심각하다. 교과부 내 과학기술 관련 조직과 인력도 대폭 축소됐다.

뒤늦게 정부는 과기 정책 컨트롤타워를 부활시키겠다는 취지로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국과위는 출범 이후 대통령 주재 회의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국과위가 국가 R&D 예산 배분권을 가졌지만 재정부와 협의해 예산을 짜야 한다.

◇컨트롤타워 부재 공백 커=컨트롤타워 없는 과학기술 분야 체력은 뚝 떨어졌다. 기초과학 분야 예산은 증액했으나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다. 세종 행정복합도시 문제와 맞물리면서 과학비즈니스벨트라는 거대 사업도 주춤했다.

지난 4년간 과학기술 분야 일자리는 별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박사후 연구원이나 시간강사 등 계약직 문제도 기대만큼 개선되지 못했다.

과학정책 입안시스템도 붕괴됐다. 과기계 관계자는 “수십년 동안 양성한 과학전문 공무원들이 사라졌다”며 “과학정책 입안시스템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현 정부는 출연연 변화도 모색해 연구 기반을 흔들었다. 산업적 성향이 강한 산업기술연구회 소속 연구원 13개는 지경부로, 기초원천연구 경향이 강한 기초기술연구회 소속 연구원은 교과부 소속으로 배치했다. 출연연에 시장 논리를 적용하면서 10년 뒤 먹을거리를 찾는 미래지향적 연구는 크게 퇴색하게 됐다. 이후 출연연을 국과위로 이관하려는 작업을 시도했으나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연구원 사기는 저하되고 연구개발 경쟁력도 떨어지고 말았다.

◇과기부 부활론 대두=과학기술기획평가원은 새롭게 부상하는 시대정신을 반영한 과학기술 기본계획 이념 정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과학기술계 여러 단체가 과학기술 비전 작업물을 제시하는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 시대정신 키워드를 포착하고 이를 과기정책 이념으로 녹여내는 일은 과학기술 컨트롤타워인 국과위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국과위 `기획`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과위는 최고 과학기술정책기구로서 그 핵심 기능이 `기획`에 있다. 따라서 국과위는 국내외적 변화에 따른 과학기술정책 변화를 주도해야 하며 타 부처에 과학기술정책 이념과 전략을 제시하는 등 과학기술정책 리더십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폐지된 과학기술부를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과기계 한 원로는 “과기부 폐지로 인해 한 번 후퇴한 과학기술 위상 강화와 과학기술을 국정 중심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전담부처가 필요하다”며 “단순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미래 과학강국을 위한 청사진을 그려야 할 때”라고 말했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이명박정부의 과학기술 기본계획 비교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