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벤처기업 줄줄이 상장폐지 위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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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기기 벤처 고사위기, 생태계 부활 대책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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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기기 벤처가 줄줄이 상장폐지 위기에 놓이며 최대 위기를 맞았다. 자칫 우리나라 정보기기 산업 생태계가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어우러진 숲이 아닌 삼성, LG 등 거목만 덩그렇게 남는 기형 구조로 빠져들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관련 부품 업계에 파장을 미쳐 대규모 고용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음도 나온다. 소프트웨어 분야 중소기업 지원에만 관심을 가진 정부가 하드웨어 단말업체의 지원에도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코스닥시장본부는 지난주 엔스퍼트가 자본잠식 50%를 넘어서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우려가 있다며 주권 매매거래를 정지했다. 아이스테이션은 자본전액을 전부 잠식당해 상장폐지 또는 관리종목으로 분류될 사유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국내 대표 PMP 제조사와 국내 첫 안드로이드 스마트패드를 출시했던 유망 벤처가 나란히 유가 증권시장에서 퇴출될 위기다.

아이리버, 코원 등 2000년대 IT 벤처 신화의 주인공은 연간 100억원이 넘는 적자에 허덕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아이리버는 지난해 무려 284억원을, 코원은 1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코원은 창사 이래 첫 적자다. 이 회사는 올 1분기 소폭 흑자전환을 예상하지만 연간 흑자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어학용 애플리케이션으로 새 가능성을 살피지만 뚜렷한 중장기 성장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시장 대응에 급급한 상황이다.

아이리버는 최근 선보인 전자책과 교육용 로봇으로 활로를 모색한다. 하지만 오랜 기간 누적된 적자폭이 크고 중장기적인 사업 차별화 방안이 뚜렷하지 않아 안심할 수 없다.

정보기기 벤처의 몰락은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 열풍으로 규모의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플레이어 중심으로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면서 어쩔 수 없는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HTC·아수스·에이서 등 벤처에서 시작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대만 사례가 있다. 우리 기업의 생존 전략이 실패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우리 기업의 `현실 안주`와 `좁은 시각`은 대만 HTC와 아수스가 세계 변화의 흐름에 기민하게 대처해온 것과 상반된다.

아이리버는 애플 아이패드와 삼성 갤럭시탭이 한창 격돌한 지난해 7월 첫 태블릿PC `아이리버 탭`을 내놓았다. 2007년 1월 애플의 첫 아이폰 등장 때부터 따지면 4년이 훌쩍 지난 기간이다. 코원과 아이스테이션도 각각 안드로이드 기반 PMP와 스마트패드를 뒤늦게 내놓았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반면에 특별한 원천기술 없이 피처폰·PDA 등을 OEM한 HTC는 그동안 쌓은 제조·소프트웨어 최적화 기술을 바탕으로 2008년 9월 첫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G1`을 선보였다. 메인보드 공급을 위주로 해온 아수스는 2007년 넷북인 `이(Eee) 시리즈`를 처음 선보인 뒤 지속적으로 PC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고중걸 로아그룹 선임연구원은 “국내 중소기업이나 HTC 출발은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국내 기업은 PMP와 MP3 성공에 너무 안주했고 스마트기기 제조사로 변신을 시도할 때 글로벌 시장을 지향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HTC는 구글·MS와 긴밀히 협력해 빠르게 변화에 대한 경영자의 판단이 성공에 주효했다”고 덧붙였다.

삼성, LG와 같은 세계 1위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취약한 내수시장도 우리나라 벤처 기업에는 치명적이었다는 지적이다. MB정부 들어 SW산업 육성을 강조하면서 HW 벤처가 관심에서 멀어진 것도 기업의 생존율을 낮춘 요인으로 꼽힌다.

중소 단말업체 한 사장은 “대만은 중소 부품과 세트업체가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산업단지를 제공하고 전략적으로 중소업체 제품의 정부 구매도 늘리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제조업은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대기업 수출 지원책에 관심을 보이고 소비자는 대기업 제품을 선호해 가뜩이나 힘든 중소기업이 설 자리가 없다”고 토로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