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반도체 '끝없는 추락' 이대로 가다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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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주도 프로젝트에 의존, 업계 교만이 부실 불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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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반도체 산업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

D램 반도체 업체인 엘피다가 파산 위기에 몰리면서 매각 절차에 들어갔고 대표적인 아날로그반도체 업체인 르네사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 반도체의 양대 축이 허물어지면서 산업 붕괴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80년대 후반 세계 반도체 시장을 호령하며 황금기를 거쳤던 일본 반도체 산업이 20여년만에 바닥까지 추락했다.

◇D램 이어 아날로그 `흔들`=엘피다 인수전이 한·미·중 3파전으로 굳어졌다. D램 반도체의 원조인 일본에 유일한 전문업체가 외국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기반 자체가 사라질 처지에 내몰린 것이다.

아날로그 반도체 산업도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세계 반도체 서열 5위 업체인 르네사스가 경영 악화로 정부에 자금지원을 타진할 정도로 위기 상황이다. 현지에서는 `르네사스 6월 위기설`이 나돌고 있다. 또 다른 아날로그반도체 업체인 로옴도 올 1분기 대규모 적자로 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 반도체 업계는 1980년대 후반까지 승승장구했다. 1989년 세계 반도체 10위권에 절반이 일본 업체였다. NEC와 도시바, 히다찌가 1위부터 3위까지 `싹쓸이`했다. 몇 년 후 인텔에 선두자리를 내줬지만 1990년대에도 일본 업체들의 위상은 여전히 막강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미국과 유럽, 한국 업체에 밀려 10위권에 3개 업체만이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에는 도시바와 르네사스만 남아 명맥을 유지했으나 이들 마저 자금난을 겪고 있어 올해 순위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비참한 현주소다.

◇정부 주도 프로젝트가 화근=일본 언론들은 자국 반도체 산업이 쇠락한 근본 원인을 `정부 주도 사업`에서 찾는다. 2000년대 들어서 정부 프로젝트가 난립하기 시작했다.

2001년 반도체 제조공정을 개발하기 위한 `아스카 프로젝트`와 시스템반도체(SoC) 제조공정 프로세스 통합을 목표로 한 `ASPLA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일본 정부는 이 프로젝트에 각각 국비 200억엔(약 2800억원)과 315억엔(약 4400억원)을 쏟아부었지만 실속있는 기술은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프로젝트 참여 기업들이 공동 기술 개발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경쟁기업들을 참여시킨 탓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일본을 대표하는 수탁생산(파운드리) 공장을 세울 계획이었으나 참여 기업들이 책임을 서로 미루고 비용 부담을 우려해 끝내 좌절됐다.

◇업계 `교만`이 부실 불러=1990년대까지 호황을 누렸던 일본 업계가 “한국은 절대 쫓아올 수 없다”고 자부했던 `자만심`도 경쟁력 하락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당시 엔지니어들의 기술유출 사례가 빈번했으나 결국 최대 경쟁자를 만들어냈다고 지적했다.

세트 산업 중심의 업계 시스템도 문제다. 세트 대기업들이 반도체 기업들을 부품 조달 자회사로 거느리면서 부실을 키웠다는 것이다. 세트 업체들이 내부 거래로 반도체를 조달받으면서 품질이나 가격을 제대로 따지지 않아 가격 경쟁력이 계속 약해졌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업체들은 하청 구조가 굳어지면서 해외 수출을 소홀히하게 되자 세계 기류 변화에 둔감한 `우물 안 개구리`로 전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츄오대학의 타케우치 켄 교수는 “경영 악화에 시달리는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적자 사업에 매달리지말고 해외 시장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독보적인 영역 개척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대기업 의존도를 하루빨리 낮춰야한다”고 지적했다.


연도별 세계 반도체 상위 10위 기업 추이

(자료: 일본동양경제)

일본 반도체 '끝없는 추락' 이대로 가다간…

서동규기자 dk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