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미래다]2부. 글로벌 창업 시장을 가다 (10)동남아시아

“인도네시아 인구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2억4000만명입니다. 중국, 인도, 미국에 이어 세계 4위의 인구 대국입니다. 주목할 점은 이 가운데 15~35세 사이가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제대로 된 직업을 못 구하고 있어요. 대졸 실업자만 100만명에 달하는 게 인도네시아의 현실입니다. 산업화 기반이 빈약한 우리가 이들을 어떻게 구해야 할까요. 바로 `기업가정신`입니다. `창업`입니다.”

찌뿌뜨라 회장
찌뿌뜨라 회장

동남아시아의 대표적 이머징 마켓인 인도네시아. 이 나라 최대 부동산 재벌인 찌뿌뜨라 그룹의 찌뿌뜨라 회장(82)의 말이다. 지금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싱가포르, 중국, 일본 등 아시아는 기업가정신 열풍이 한창이다. 동남아 국가는 낙후된 근대화 기조를 `창업`으로 극복하려 한다. 일본 역시 갈수록 노후화돼가는 산업기반을 되살리는데 `기업가정신`을 적극 활용한다. 이들 아시아 국가의 창업 열기와 기업가정신 현황을 짚어본다.

◇인도네시아

인구의 30% 이상이 갓 사회에 쏟아져 나오는 청년들이다.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려면 최소 400만개의 기업이 필요하다는 게 인도네시아 정부의 분석이다. 매년 6%대의 높은 GDP 성장률을 보이지만, 여전히 열악한 이 나라 산업·경제 환경은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주목받는 게 `기업가정신`이다. 인도네시아 제2 수도 수라바야에 위치한 `찌뿌뜨라 대학교`는 인도네시아 유일의 `창업` 특성화 대학이다.

인도네시아 재계 5위의 찌뿌뜨라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2006년 개교했다. 학생 2200명이 재학 중이다. 매주 수요일 기업가정신 교육을 공개강좌로 진행한다. 전체 학생 중 50% 이상의 학생이 이 교육을 받는다.

찌뿌트라 대학을 졸업한 학생의 절반이 취업이 아닌 `창업`을 한다. 대학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사람은 대부분 직장에 들어가길 원하지만, 우리 대학은 기업가정신을 가르치고 창업을 유도한다”며 “총 5학기 동안 모든 학생은 기업가정신 교육을 필수과목으로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가정신을 위해 찌뿌트라 그룹이 설립한 것은 비단 대학뿐이 아니다. 수도 자카르타에는 `찌푸트라 기업가정신센터(UCEC)`가 있다. 100억원의 펀드로 조성된 이 센터는 창업과 기업가정신 관련 교육과 실무 훈련을 맡는다. 지금까지 총 8500여명의 수료생이 배출됐다. 주로 공무원과 교사, 학생 등이 주 교육 대상이다. 이 가운데 2500명이 기업가정신 전문 강사로 육성됐다.

센터는 향후 25년간(2033년까지) 400만명의 새로운 기업가를 배출한다는 목표다. 현재는 3개월 코스로 학생 기업가정신과정과 단기 창업훈련과정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 기업가정신 관련 언론 홍보와 출판 등도 센터의 몫이다.

안도니우스 타난 찌뿌트라그룹 UCEC 이사

▲찌뿌트라그룹의 기업가정신 철학과 교육훈련 체계는.

-ENVISION, EXPLORE, ENCOUNTER(비전을 갖고, 개발하며, 도전을 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찌뿌트라만의 기업가정신 원칙과 훈련을 추구한다. K12 학교 시스템(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전 교육과정에 걸친 12년간에 걸친 계획)을 위한 기업가정신교육 체계를 수립해 운영 중이다. 고등교육(기업인과정)을 위한 기업가정신교육도 병행한다.

▲다른 기관과 협력은.

-우리는 미국 카프만재단이 지정한 글로벌 기업가정신네트워크의 인도네시아내 공식 파트너다. 인도네시아 정부와 협력프로그램을 공동 운영중이다. 전국 350개 대학에서 2000회 가량 기업가정신 강연을 해오고 있다.

▲한국과 협력방안은.

-한국에는 약 5만명의 인도네시아인이 외국인 근로자 신분으로 체류하고 있다. 이들은 어렵게 번 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낭비한다.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과 공동으로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기업가정신과 창업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시키려 한다.

◇싱가포르

싱가포르에서 우리나라의 서울대에 비유되는 학교가 싱가포르국립대(NUS)다. 이 대학에 최근 `기업가정신센터`가 설립돼 기업가정신과 창업을 가르친다. 센터 고문으로 있는 버지니아 차 교수는 상하이와 프랑스비즈니스스쿨, 인도대학교에서 기업가정신을 가르치는 있다. 엔젤로서 벤처투자도 병행한다. 최근에는 특허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어 학교 내에 ILO(Industrial Life-zone Office)를 신설, 학생들에게 특허와 관련된 교육을 별도로 시키고 있다.

기업가정신센터는 싱가포르 내 여러 대학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 센터에 대한 투자금 지원(펀딩)은 싱가폴연구재단(National Research Foundation)에서 담당한다. 싱가포르는 2009년에 스타트업 기업에 약 3억8000만 싱가포르달러를 지원했다.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인큐베이터들과 공동 매칭펀드로 이뤄진다. 이를 현지에서는 바이더웨이(By-the-way) 펀딩이라 부른다. 주로 기술기반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다.

주목할 점은 싱가포르에서는 멘토가 펀딩도 같이한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지만 시장에 진입하는 방법을 모르는 학생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펀딩멘토를 붙여준다. 멘토에게는 대학교가 돈을 지급한다. 또 멘토가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학생들이 창업해 성공하면 대학교에서는 이들 멘토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그래서 멘토들이 멘티들의 사업에 직접 투자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문제는 뒤심 부족. 평균적으로 엔젤투자가는 10만 싱가폴 달러, 인큐베이터가 8만8000싱가폴 달러를 각각 매칭펀드로 투자하지만, 이후 세컨드 라운드 투자가 부족하다. 싱가포르에서는 현지 특성상 벤처 캐피탈이 최대 100만 싱가폴달러 이상의 투자를 하지 않는다. 때문에 그 이상의 투자를 받으려면 싱가포르를 떠나야 한다.

버지니아 차 싱가포르국립대 기업가정신센터 고문교수

▲기업가정신 과정이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나.

-별로 없다. 하지만 상하이를 비롯해 베이징, 미국 실리콘밸리, 스톡홀름, 인도, 이스라엘 등에 있는 싱가포르국립대 해외 자매학교(NUS Overseas College)에서는 인기다. 학교에서는 보험과 비행경비를 학생들에게 지원해준다. 물론, 저소득층에는 장학금을 지급해준다. 학생들은 현지 국가의 대학교에 나가 1년동안 인턴으로 일하고 월급을 받는다. 그리고 자매 대학의 수업을 듣고 학점을 취득한다.

▲창업교육 수업은 교수들 중심인가 기업 CEO 위주인가.

-둘 다다. 기업가정신만 가르치는 교수도 있고. 겸임교수 신분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기업인도 많다.

▲아무래도 교수들은 실무 감각이 떨어질 텐데, 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따로 있나.

-없다. 하지만 교수교육(Trainer to Trainer) 프로그램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다.

중국·일본도 IT창업 열풍

◇중국

중국의 기업가정신의 메카는 상해기술기업가정신센터(EFG)다. 지난 2006년 설립된 EFG는 3개의 주요 사업부문으로 나뉜다. 첫째, 스타트업 자금지원 부문에서는 올 120개 창업자에 투자를 목표로 10월말 현재 70개 창업자에 투자가 이뤄진 상태다. EFG는 사업시작을 위해 10만 위안을 지급한다. 대학을 졸업한지 5년 이내의 기업가에게는 30만 위안을 투자한다. 지금까지 총 520개의 상하이 소재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두 번째는 `교육`이다. EFG 트레이닝 프로그램 교육생의 20%가 창업한다. 강의는 `예비창업가 교육`과 창업 2년 이내 `초기창업가 교육`으로 나뉜다. 여기에서는 금융·투자를 비롯해 고용·해고방법 등 회사경영 전반에 필요한 모든 사항을 교육시킨다. 세 번째는 `투자`다. 지난 2009년부터 현재까지 총 18개의 회사에 투자가 이뤄졌다. 이를 위해 중국내 18개 대학들이 1000만 위안을 기부했다. 20명 대학생이 여기서 투자를 유치했을 정도다. 상하이 시정부 역시 약 1억 달러를 출자해놓은 상태다.

기업가정신이나 창업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EFG는 지난 2010년부터 19개의 대학교를 돌아다니면서 특강을 진행 중에 있다. 주로 선배 창업가가 각 대학 학생에게 강연을 해준다. 한국의 YES리더 기업가정신 특강과 유사 개념으로 운영 중이다. EFG의 스타트업 기업의 절반 이상인 55%가 IT(소프트웨어, 인터넷, 클라우드 컴퓨팅, 모바일게임)기업이다. 나머지 17%가 제조, 30%가 바이오·신소재 업체들이다.

EFG의 담당 부처는 중국의 교육과학기술부다. EFG는 중국 교과부와 협력, 이 모델을 심천과 홍콩 등에 우선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일본

아시아국가 중 상대적으로 기업가정신이 희박한 나라가 일본이다. 좋은 대학을 나오면 대기업 취업이 당연시되는 게 일본이다. 대기업이 아니어도 마음만 먹으면 전통의 강소기업이 즐비한 일본에서 청년 취업은 다른 아시아 개도국들만큼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일본 역시 갈수록 노화돼가는 산업·경제구조에 `새 피`를 수혈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이게 일본 대학가에 기업가정신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유다.

일본의 기업가정신은 국립도쿄대학교 내 기업가정신센터(SEED)에서 길러지고 있다. 지난 2004년 설립된 SEED는 교육에만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대학의 지적재산이나 연구를 통해 기업가정신을 함양한다. SEED는 크게 대기업과 연계 활동을 하는 쪽과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파트로 나뉜다. 주로 대기업과 라이선스 체결 등 지적재산 관련 연계활동이 업무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스타트업 관련 부문을 지속 확대하기 위해서 인재육성에 역점을 두고 지난 2005년부터 관련 커리큘럼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도쿄대 내 학생(학부생,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플랜 수립을 6개월 과정으로 운영 중이다. 이 과정에는 대기업 부문 팀들은 철저히 배제된다. IBM컨설턴트 출신을 비롯해 자기 사업을 해본 기업인과 보스턴 컨설팅그룹·파나소닉 근무 경력자 등 실무형 교수진을 구축해놓고 있다.

도쿄대는 일본에서는 유일하게 벤처캐피탈을 학내에서 운영한다. 일본 현행법상 국립대는 직접 출자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자회사 형식으로 VC를 운영하고 있다. 소니 등 민간기업에서 예산의 일부를 보조받는다. 이런 방식 운영이 가능한 이유는 도쿄대의 연구성과와 발명건수가 1년 600~700건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는 연간 400여건에 불과한 미국 MIT를 능가하는 실적이다. 타케도 SEED 교수는 “구체적으로 자신이 기업가정신을 통해 무엇을 하고싶은 지 알지 못하는 학생들이 아직도 많다”며 “이들을 위한 일대일 컨설팅과 창업 상담을 별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