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훈의 디지털 확대경]원로정치인의 스토리텔링이 절실하다

“우리를 웃고, 울리고, 영감받게 할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세요. 노인은 위대한 스토리텔러다.”

코바코가 연초부터 내보내는 공익 캠페인 `실버톡(Silver Talk)` 시리즈의 광고 카피다. 전통놀이를 가르치는 유치원교사 황한규(77세), 노인들의 한글선생님 노노강사 양경복(70세), 실버넷 사진부장 실버기자 송선자(73세), 아동성폭력 예방 시니어 인형극단 그랜드파파마마가 광고 모델이다. 모두 70대다. 광고는 노인들이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스토리텔링의 방법으로 젊은 세대에 전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제2의 인생을 찾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젊은 세대는 노인 세대의 경륜에서 지식과 영감을 얻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최정훈의 디지털 확대경]원로정치인의 스토리텔링이 절실하다

우리는 노인을 어르신이라 높여 부른다. 예를 존중하는 사회 통념상 어르신은 오래 산 것 자체만으로도 존경받는다. 공자는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서 하늘의 뜻을 깨달아 아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50세,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이치를 깨달아 이해되는 이순(耳順)의 나이를 60세, 하고 싶은 대로 무엇을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종심(從心)의 나이를 70세라 했다. 동양사상에서는 나이가 든다는 것을 단순히 생물학적 노화현상이 아닌 삶의 지식과 지혜를 쌓는 인간숙성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현대사회에서도 위대한 70대 어르신의 스토리텔링을 주목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산업사회가 되면서 등장한 것이 정년(停年)제도다. 업무 처리능력이 저하되는 연령에 도달하면 강제로 퇴직하게 한다. 근로자 평가기준을 노동성과를 내는 도구로 간주하면서 생겨난 산업적 관점의 제한규정이다. 정년이 없는 직업도 있다. 바로 국회의원이다. 그들에겐 경륜이 밑천인지라 예외가 인정된다. 그래서 바둑에서 최고 경지에 이른 최고 기성(碁聖)을 9단이라 평가하듯 비록 비공인일지라도 정계에 정치 9단이 존재한다. 여기서 정치 9단이란 권모술수에 능한 정치꾼이 아닌 선의의 9단을 말한다.

우리나라 19대 국회의원의 평균연령은 53.88세다. 국회의원의 47%가 50대다. 60대 연령 비율도 23%나 된다. 국회의원의 4분의 3가량이 50~60세 연령층이다. 하늘의 뜻을 익히 깨달았을 뿐 아니라 타인의 말을 들으면 이치를 충분히 헤아릴 수 있는 지천명과 이순의 달관자가 우리 국회엔 차고 넘친다.

그런데 연령 성숙도에 걸맞게 우리 국회가 훌륭한 스토리텔러 집합체로서의 역할을 해낼 것이라는 기대는 부질없어 보인다.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입법기관이자 민의(民意)를 반영해 합의와 대타협을 이뤄내야 하는 국회는 이번 정부조직법 처리과정에서 난맥상을 그대로 드러냈다. 경륜을 따져보더라도 합의, 대타협의 귀재가 모여 있어야 할 국회는 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 많은 자의·타의 정치 9단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대의보다는 당리를 좇아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합의와 타협의 비결을 조언할 정치 9단의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종심 즉, 70대 퇴역 정치원로가 스토리텔링의 진수를 보여줘야 할 때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답답한 일이다. 코바코의 실버톡 공익광고를 보고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건 지금의 정치원로다.

과거 이건희 삼성 회장이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말했다가 격앙된 정치권 반응에 곤욕을 치렀다. 17년이나 지난 일이다. 세월이 꽤 흐른 지금에도 그 말이 가슴에 와 닿는 건 왜 일까. 역시 문제는 정치권이다. 정치원로의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때는 다름 아닌 바로 지금이다.

최정훈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