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훈의 디지털 확대경]왜 독립운동을 했을까

청소년의 역사지식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달 한 방송사 리포터가 거리로 나갔다. `야스쿠니 신사`가 적힌 종이를 내밀자 돌아온 답변은 “옷을 잘 차려 입은 신사”였다. `3·1절`을 아느냐고 묻자 한 청소년은 “삼점일절?”하며 되묻는다.

[최정훈의 디지털 확대경]왜 독립운동을 했을까

인기 아이돌 그룹은 욱일승천기가 그려진 옷을 입고 방송에 버젓이 출연한다. 교실에서는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원흉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을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역에서 사살했다”는 교사의 말에 학생은 “왜 일등박문이 아닌 이등박문을 죽인 거냐”고 질문한다. 한술 더 떠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는 장군들이 나라를 지켰는데 일제시대 독립운동은 왜 의사들이 했냐”는 황당한 질문도 나온다.

지성의 요람인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얼마 전 한 대학의 디자인과 학생들은 욱일승천기 모양을 배경으로 홍보지를 만들었다가 망신을 당했다.

“근대사적 관점에서 5월은 어떤 의미가 있냐”는 질문에 “가정의 달” “축제가 있는 달”이라고 답하는 대학 초년생도 적지 않다.

`한단고기` `조선상고사`를 읽고 민족 긍지와 호연지기를 키우던, 필독서로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탐독했던 대학시절은 이제 아련한 과거 모습이 됐다. 지금의 부모들은 대학시절 민주화를 위해 독재권력에 맞섰겠지만 그들의 자녀는 민주화란 단어를 `개성을 존중하지 않는 획일화`의 의미로 오용한다.

청소년의 빈약한 역사관을 안타까워하며 어른들은 혀를 끌끌 찬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한심스런 아이들은 남의 아이가 아닌 바로 내 아이다. 그 아이들을 그리 만든 것은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대학입시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역사과목을 선택하지 말라고 조언한 우리 어른들이다.

2009년 교육부는 우리 역사를 한 학기 또는 한 학년에 몰아서 공부할 수 있게 했다. 이른 바 집중이수제다. 지난해 교육부는 인성강화를 위해 집중이수제 과목에서 체육·음악·미술을 제외했지만 역사는 인성과 무관하다고 봤는지 한국사 과목은 그대로 뒀다. 또 2005년부터는 대입 수험생의 과목 부담을 덜어 준다는 미명 아래 한국사를 필수과목이 아닌 선택과목으로 바꿨다. 그것도 문과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이과는 선택할 수조차 없도록 만들었다. 한국사를 입시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대학은 서울대뿐이니 서울대에 갈 게 아니라면 그마저도 공부할 필요가 없다.

역사교육에 관해선 모든 게 총체적 부실이다. 일본을 향해 역사 왜곡을 중단하고 역사 사실 그대로를 학생들에게 제대로 가르치라고 목청을 높이면서도 정작 우리 학생들의 역사교육엔 무관심한 게 우리의 실상이다.

답답하니 일부 어른이 나섰다. 민주당 김영환 의원은 초중등 교육과정과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포함시키는 내용의 `교육법 개정안`을 6월 국회에 대표 발의했다.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지난 5일부터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선정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는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니라 창피한 일이다. 역사를 가르치도록 법으로 강제해야 하고, 민간 서명운동까지 벌여야 하는 이 어이없는 세태가 부끄럽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단재 신채호의 말이다. 역사 인식에 관한 정부의 정책 변화가 시급하다. 어른들이 지금 바꿔놓지 않으면 훗날 조상은 물론 아이들을 볼 낯이 없다.

최정훈 정보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