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만의 體認知]<375>참을 수 없는 접속의 가벼움과 견딜 수 없는 접촉의 즐거움(1)

디지털 시대, 인터넷의 발달로 온라인이나 사이버 세계가 일상적 삶과 다른 또 하나의 세계로 부각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상보다는 가상의 세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살아간다. `원더박스:낯선 역사에서 발견한 좀 더 괜찮은 삶의 12가지 방식`이라는 책을 읽다가 촉각의 자극이 감각기능 발달을 촉진시킨다는 연구결과를 접하면서 현대인들은 과연 접촉을 통한 오감체험의 기회를 얼마나 갖고 있는지를 잠시 생각해보게 됐다. 아날로그 세대인 나 역시 전자책보다는 아직도 종이 책을 읽을 때가 더 편안하고 저자의 생각과 고뇌의 흔적을 따라 읽어가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저자의 호흡을 따라가는 책 읽기가 일상에서 맞이하는 큰 행복 중 하나다.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고 내 생각을 공란에 써넣고 메모장에 별도 기록하는 등 지저분하게 책을 읽어야 비로소 책을 읽는 기분이 든다.

나는 키보드로 쓰는 글의 양도 많지만 손으로 직접 메모하고 만년필로 단상을 쓰는 경우도 많다. 키보드로 입력하는 생각이나 아이디어가 한 편으로 글로 탄생하는 장면도 좋지만 손으로 쓰는 글씨는 또 다른 촉감이 있어서 좋다. 손가락을 움직여 하얀 백지위에 내 생각대로 잉크가 따라 흐르면서 아름다운 글의 무늬를 수놓은 느낌이 너무 좋아 만년필과 볼펜을 애지중지한다. 가슴으로 느낀 체험적 소산이 머리로 올라가 논리적으로 정리되는 과정이 손가락으로 전해지고, 그것이 잡고 있는 필기구의 움직임을 따라 한 편의 글이 완성되는 과정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생각은 저 만큼 멀리 가 있지만 손가락의 움직임이 따라주지 못해 마음은 조급해지면서도 쓰고 싶은 강렬한 욕망의 물줄기가 종이 위에 수를 놓으면서 표현되는 글의 촉감에서 또 다른 영감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손가락이 만년필과 맞닿는 접촉, 그 접촉의 과정에서 종이 위에 새겨지는 글자 소리는 키보드로 입력되는 글쓰기 과정과는 또 다른 창작의 즐거움을 주고도 남음이 있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