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단돈 1000달러로 창업한 델이 2000년대 초반 세계 1위 컴퓨터 회사로 성장한 비결은 강력한 공급망관리(SCM)를 중심으로 한 `물류혁신`이다. 델 성장의 기틀인 `직접 판매`도 90년대 초반부터 만든 체계적 SCM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델은 직판으로 주문처리 시간을 단축하고 재고를 절감해 세계적으로 컴퓨터 가격혁명을 일으켰다. 경쟁사 대비 10% 이상 저렴한 가격에 PC를 판매했다. 고객과 부품 공급사를 직접 연결하면서 한 달이 넘던 재고 기간을 이틀 이하로 단축했다. 그물 같은 공급망으로 정확한 수요예측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1995년 35억달러(약 3조9900억원)이던 매출은 물류혁신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서 2000년 250억달러(약 28조5100억원), 2005년 490억달러(약 55조8800억원)로 급증했다. 지난해 매출은 620억달러(약 70조7000억원)다. 물류 혁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성장이다.
◇직판에 날개 달아준 SCM=델은 사업 초기부터 직판 모델을 도입했다. 소매업체를 거쳐 상품이 도착할 때까지 물류비는 판매 수입의 15% 정도를 차지한다. 델은 중간 유통 과정을 과감히 생략해 이 비율을 2%로 줄였다. PC 가격을 낮출 수 있는 결정적 요인이다.
직접 판매는 가격 인하 외에도 `고객 만족도 제고`라는 커다란 효과를 가져왔다. 고객 불만이나 요구사항이 중간 업체에 접수되면 즉각적인 대응이 어렵다. 델은 본사에서 직접 고객 피드백을 받고 대응한다. 수천 명에 달하는 기술지원 인력이 24시간 헬프데스크에 대기한다. 자연스레 고객 응대 시간은 줄어들었고 서비스 만족도는 높아졌다.
직판 모델에 날개를 달아준 게 바로 SCM이다. 델은 10여년에 걸쳐 본사와 부품업체, 조립공장, 물류업체를 밀접하게 연결하는 강력한 SCM 체계를 만들었다. 공급망에 있는 모든 업체가 고객 주문 내용부터 생산계획, 수요예측, 생산진척도, 재고, 판매현황 등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협력한다.
고객이 인터넷으로 제품을 주문하면 주문 정보는 즉시 공장에 전달돼 생산에 돌입한다. 델 사업 모델의 특징 중 하나인 `선 주문 후 생산`이 시작된다. 델은 항공사, 택배 회사와도 정보를 공유해 배송 시간을 단축시켰다. 현재 일반 고객이 주문부터 제품을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6일이다.
SCM 체계를 마련하기 이전엔 특정 부품에 대한 수요 예측이 어려웠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해 재고가 바닥나면 고객이 원하는 시점에 제품을 배송하지 못한다. 특히 방학이나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 등 특정 기간 동안엔 수요가 어느 정도 증가할 것인지 예측이 쉽지 않다. 델은 지속적인 공급망 혁신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
◇돈독한 파트너십 기반 공급망 관리=델은 부품을 재고로 두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상품관리 기법인 `저스트 인 타임(JIT)` 방식을 도입했다. JIT는 재고를 `0`으로 해 재고비용을 최대한 줄이는 방식이다. 필요한 부품을 원하는 시점에 공급하는 게 핵심이다.
델은 이를 위해 부품 공급사를 델 공장 근처로 모았다. 그 결과 생산에 필요한 부품이 20분 내에 조립라인으로 운반됐다. 우수한 공급사와는 장기 계약을 맺어 부품 품질과 공급 정확성을 높였다.
델이 1990년대 중반부터 추진한 `서플라이 커머스` 프로젝트도 부품 공급사와 파트너십 강화가 목적이다. 투명성을 바탕으로 한 돈독한 신뢰가 없으면 아무리 체계적인 SCM이 구축돼도 델과 부품 공급사가 하나처럼 움직이기 어렵다. 델은 1997년 후반부터 여러 회사와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현재 델은 30개 주요 협력사에서 부품의 80%를 공급받는다. 이들과 프로세스 개선을 위해 긴밀하게 협력한다. 1998년 중요한 부품공급사를 위한 개별 전용 홈페이지를 제작했다. 공급업체 편의성을 높여주고 실시간 정보 공유를 위해서다.
델은 신상품이 출시될 때마다 부품업체 엔지니어를 델에 상주시켜 순조롭게 상품을 출시한다. 기업 간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꾸준히 공급업체 수를 줄여 나간다. 상품 배송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물류업체에 최대의 자율권을 보장하는 것도 파트너십 강화의 일환이다.
◇변신은 계속된다=델은 2008년부터 사업 모델 변화를 추진 중이다. 직판으로는 고객 확대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일부 사업 부분에서 유통 채널을 확보해 간접판매를 혼용한다. PC 시장 침체에 따라 소프트웨어와 컨설팅으로 사업 영역도 다변화한다. 판매 예측이 어려워지면서 공급망관리가 더 중요해졌다.
델은 하드웨어를 판매할 때 태그나 재고파악유닛(SKU)을 부착해 재고를 파악했다. 이 방식은 주문 제작 방식의 재고파악에 용이하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판매 기업으로 변신하려면 더 세부적이고 정확한 재고파악과 수요예측 시스템이 필요하다.
델은 조직과 프로세스, 기술 관점에서 발생할 변화에 따른 청사진을 제시하기 위해 전 사업부문에 `비즈니스 아키텍처 가상팀`을 만들었다. 제프 클라크 부회장, 브라이언 글라덴 최고재무책임자(CFO)가 프로젝트를 총괄한다.
변화의 과정에 있지만 델의 SCM 역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비롯해 유수의 대학에서 델의 물류혁신을 다뤘다. 델은 자사 SCM 노하우를 다른 기업에 전파하기 위해 지난해 중국 샤먼에 공급망관리 연구소를 설립했다. 텐진대, 안타이대과 연계해 SCM 고도화 연구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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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천기자 hca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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