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훈의 디지털 확대경]수강신청 전쟁 참전기

[최정훈의 디지털 확대경]수강신청 전쟁 참전기

딸과 함께 PC방으로 향한다. 인터넷 잘 되기로 소문난 PC방이다. PC방의 인터넷 속도가 집보다 빠르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위안은 된다.

PC방에 자리잡았다. 작전 개시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UTCk2`에 맞춰 한국표준시각과 PC 시각의 오차를 바로잡는다. 그리고는 접속할 목적 서버의 현재시각을 확인한다. 도메인 주소를 입력하면 해당 서버의 시각을 초 단위로 표시해주는 서비스가 있다. PC와 목적 서버 시각 간 오차가 생기면 모든 일은 수포다. 신중해진다. 해커가 된 느낌이다.

PC와 서버 시각 오차계산과 수정작업을 마쳤다. 서버 접속 후 준비태세에 들어갔다. 긴장감과 초조함이 밀려든다. 6개월 전 실패에 대해 나름 연구했으니 좋은 전과(戰果)를 기대해 본다.

3, 2, 1, 땡. 서버 문이 열렸다. 마우스 광클릭질을 해댄다. 우사인 볼트는 저리 가라다. 1초가 승패를 좌우한다. 모니터 화면에 메시지가 떴다. 서버 접속자 폭주다. 키보드 F5키(새로 고침 키)를 부서지도록 눌러본다. 잠시 후 화면이 다시 떴다. 내 앞에 100여명의 대기자가 있다는 메시지다. 좌절, 또 좌절이다. 이번에도 작전은 실패다.

도대체 뭘 하는데 이 난리인가. 추석 귀성 열차표 예매? 아니다. 대학 새 학기 수강신청이다. 대학생들은 매년 2월과 8월 두 차례 전쟁을 치른다. 이른바 수강신청 전쟁이다. 대학 서버 공략에 실패하면 원하는 과목 수강계획은 물 건너간다.

아이디 하나로 여러 대 PC에서 접속하면 수강신청에 성공할 기회가 많아진다. 마우스의 반복동작을 저장해 자동으로 수행케 하는 매크로 프로그램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 대학이 단일 아이디 다중접속과 마우스 매크로 기능을 차단했다. 동일 조건에서 공정하게 기회를 다투게 하려는 대학 측의 친절한 배려다.

과거 시절에 비해 대학 강의실 수가 늘어났음에도 요즘 대학생은 부모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수강신청 전쟁을 치러야 한다. 왜일까. 서울 및 수도권 대학의 학생 수는 1980년대에 비해 늘었다. 하지만 핑곗거리가 되지 못한다. 학생 수 증가분만큼 교원 및 시설에 투자할 대학의 재정수입도 늘었을 테니 설득력이 떨어진다. 원인은 `수강하고 싶은 과목이 없다`는 학생들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늘어난 학생 수를 감당할 인기과목이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경영학 전공자는 졸업 마지막 학기까지 수강신청 전쟁을 치러야 한다. 복수전공자들의 경영학 과목 수강 쏠림현상 탓이다. 인기과목 수강신청권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고가에 뒷거래되는 게 현실이다. 대학은 학년별·홀짝 학번 선착순제, 장바구니 추첨제, 포인트 경매제 등 고육지책을 쏟아낸다. 언 발에 오줌 누기다.

등록금 1000만원을 내고도 원하는 강의를 들을 수 없는 현실에 학생들은 복장이 터진다. 대학 등록금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공허한 가슴을 대선주자들이 내건 반값 등록금 공약으로 채운 적도 있다. 그것도 한때뿐이다. 종북좌파로 매도되기 전 잠깐 동안의 기억이다.

반값 등록금 실현이 어렵다면 등록금 수준에 맞게 수업의 질과 양이라도 높여야 한다. 그러나 되는 건 하나도 없다. 답답하다. 이렇듯 어른들의 무책임 속에 지성의 요람 대학은 6개월 전과 꼭 같은 부실한 모습으로 새 학기를 맞고 있다.

최정훈 정보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