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조직에는 뛰어난 리더가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필립스는 새삼 일깨워준다. 바닥까지 떨어졌다가 부활하기까지 수많은 임직원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지만 두 명의 리더가 보여준 혜안은 발군이었다. 제랄드 클라이스터리 전 회장과 프란스 반 하우튼 현 회장 얘기다.

클라이스터리 전 회장은 한마디로 필립스의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의 부친은 평생을 필립스에서 일했다. 에인트호번대학도 필립스에서 준 장학금으로 다녔다. 1979년 그는 필립스에 입사해 여러 핵심 부서와 중국 법인장을 거쳐 22년 만인 2001년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그가 CEO에 오른 계기는 위기 때문이다. 문어발식 경영으로 성장한 필립스는 2001년 IT 버블 붕괴와 함께 추락했다. 최악의 시기에 주주들이 내세운 구원투수가 클라이스터리였다. 2대째 필립스맨이라면 사내 누구에게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클라이스터리 회장은 취임과 함께 전면적으로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내부 승진자는 임직원과 이해관계가 얽혀서 추진력이 떨어진다는 말을 무색케 만든 정도의 고강도 구조조정이었다. TV를 시작으로 휴대폰과 VCR, CD플레이어 등 필립스 대표 제품을 매각하거나 아웃소싱으로 돌렸다. 260개의 공장을 160개로 줄이고 직원 25%를 감원했다.
구조조정의 하이라이트는 2006년 반도체 사업부 매각이었다. `기술의 필립스`를 상징하는 사업부이자 클라이스터리의 아버지가 평생을 바친 일터였다. 안팎에서 반대 여론이 들끓었지만 그는 단호했다. 구조조정으로 쌓은 자본은 신성장동력으로 정한 의료기기와 조명에 투자했다. 지금의 변화한 필립스의 초석을 세운 주역이 클라이스터리 회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클라이스터리 체제는 10년간 이어졌다. 그는 강산이 바뀔 시간 동안 쉼 없이 필립스 혁신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후임으로 자신 못지않게 드라마틱한 인물을 골랐다. 현 CEO 프란스 반 하우튼 회장이다.
클라이스터리 회장의 하우튼 카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눈길을 끌었다. 하우튼의 출신과 나이다. 하우튼 회장은 2006년 앞서 말한 반도체 사업 분사에서 떨어져 나간 인물이다. 필립스 경영의 핵심에서 오랫동안 멀어져 있던 그에 비해 경험이 많은 임원이 넘쳐났다. 나이도 쉰에 불과했다.
깜짝 발탁의 이유를 클라이스터리 회장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세대교체와 구조조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인물”이라고 밝혔다. 하우튼 회장은 1986년 입사 후 20년 동안 콘텐츠와 반도체처럼 적자 사업을 회생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하우튼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보름 만에 홍콩 TPV와 TV사업 합작법인 설립을 깜짝 발표했다. TV사업 철수와 마찬가지의 폭탄선언이었다. 그의 행보는 전임자보다 더 빨랐다. 이듬해 8억유로 규모의 비용 절감 프로그램을 내놨다.
하우튼 회장은 최근 니혼게이자이와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이어온 사업을 포기하는 과정에서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필립스의 역사에는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감상에 빠져서는 곤란하다”며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해서 개혁의 필요성을 동감하도록 만드는 게 경영자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하우튼 회장은 사업 영역뿐만 아니라 기업 문화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기술 부문이 주도했지만 이제는 마케팅과 영업이 신상품 개발에 상당한 발언력을 가진다”며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시장에서 원하지 않는다면 혁신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전했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