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청와대 입만 바라보는 정부부처와 공기관](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3/11/19/sdaaia-as5.jpg)
“에이, 설마요” “그렇다니까요. 그래서 인사가 늦어진 거예요” 한 관료와 나눈 대화다. 화제는 현 정부 인사 스타일이었다. 청와대가 부처 국장급 인사까지 챙긴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장(長)이 무엇인가.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다. 인사는 그 의사결정 중 가장 중요한 사안이다. 그래서 인사권이라는 말이 있다. 기업 경영자도 다른 권한을 내줘도 인사권만큼 양보하지 않는다. 맘놓고 일을 맡길 사람을 정하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조직엔 위계(하이어라키)가 있다. 아무리 위아래 평등한 조직에도 있다. 그 조직의 수장에게 인사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위계가 흔들린다. 결국 조직은 엉망이 된다.
국장급 인사는 늘 해당 부처장 몫이었다. 안살림을 맡은 차관 또는 실장이 일차 판단을 하고, 장관이 최종 결정해 올린다. 물론 지금 청와대가 국장급을 직접 선임하는 정도는 아니다. 각 부처에서 올라온 인사안을 검토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국장급 인사까지 청와대에서 논의하는 것 자체가 부처 인사권을 훼손한다.
장·차관, 조금 양보해 실장급까지 인사엔 어느 정도 정무 판단이 필요하다. 청와대가 국정 철학에 맞는 적임자를 직접 고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국장급 이하는 실무자다. 정무 판단보다 실무 능력이 중요한 직책이다. 그 판단을 가장 잘하는 사람도 부처 안에 있다. 그간 국장급 인사를 해당 부처에 맡긴 이유다.
한 조직의 장이 있다. 그는 의욕이 왕성하다. 모든 일을 직접 챙겨야 직성이 풀린다. 이것저것 다 관여하다보니 지친다. 무엇보다 중요한 의사결정에 집중할 수 없다. 그래서 권한을 아래로 나눠준다. 그런데 밑에서 해오는 일이 영성에 차지 않는다. 조금씩 수정 지시를 한다. 어느 순간 다시 예전처럼 일일이 챙기던 때로 돌아간다.
청와대가 실무 인사까지 관여하는 것엔 이런 심리가 작용한다고 본다. 조금 이해할 수 있다. 복지부터 창조경제까지 국정철학이 여전히 겉도니 답답할 노릇이다. 진영 복지부 장관 사임에서 봤듯이 심지어 장관까지 말을 듣지 않는다. 정책이든 조직이든 `직접 챙기자`라는 말이 청와대에서 나올 법하다.
실제로 권한을 위임했다가 실패한 사례도 많다.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 괜히 맡겼나 후회막심이다. 그런데 실패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맡길 일과 그렇지 않아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한 게 첫째다. 제대로 맡기지 않거나 잘못 맡긴 것도 실패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조직마다 조금씩 다르나, 그 수장이 맡을 일은 따로 있다. 조직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고 투자와 같은 중대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게 대표적이다. 맡겨도 꼭 개입해야 할 일도 있다. 미래 먹거리 창출, 효율성 제고, 인재 양성과 같은 일이다. 장이 중간에서 방향을 잡아줘야 한다. 일종의 `코치`다. 이런 일을 뺀 나머지는 과감히 맡기거나 아예 손을 떼야 한다. 이런 권한 구분 없이 위임을 하니 성과는 없이 몸만 피곤하다.
위임을 했는데도 잘 수행하지 못한다. 그러면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철학과 의도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부터 파악할 일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바꾸면 된다. 작은 중소기업부터 정부조직까지 똑같이 적용될 인사 기본 원칙이다.
장·차관이 제 권한을 누리지 못하면 해당 부처 조직이 흐트러진다. 그러면 아무리 좋은 국정철학도 겉돌게 마련이다. 늦어진 공기관 인사만 해도 그렇다. 정무 판단이 필요한 일부 자리를 빼곤 거의 관할 부처장 판단에 맡길 일이다. 여기까지 일일이 개입하니 부처장 힘은 빠지고 공기관 업무 공백만 길어진다. 청와대는 지금 한 가지를 잊었다. 대통령이야말로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이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