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핫이슈]이름만 듣고 얕봤다간 큰코다치는 `태풍`

8호 태풍 너구리가 지난주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쳤다. 편서풍에 진로가 꺾이면서 한반도에 본격 상륙하지 않았지만 제주와 남부 일부 지방에 피해를 줬다.

제주에서는 총 50여건 7억원가량의 재산 피해가 발생해 당국이 복구에 나섰다. 부산 해운대에서는 최고 3.5m 높이 파도에 백사장 모래가 대거 쓸려나가 72m던 백사장 폭이 57m로 10m 이상 줄었다. 너구리가 남기고 간 열대 지방의 덥고 습한 공기는 찜통 더위를 부추기고 있다.

너구리는 귀여운 이름과 다르게 무서운 위력으로 일본을 강타했다. 발달 절정기 풍속이 51㎧ 이상을 기록했고 우리나라를 스치며 일본에 상륙할 때도 30㎧ 전후 풍속을 유지했다.

열도에 진입한 뒤에도 최고 27㎧ 풍속으로 곳곳에 피해를 줬다. 도쿄 도심에서 주택 100여채가 파손되고 건물 600동 이상이 침수됐다. 3명이 사망하고 49명이 부상하는 등 인명 피해도 속출했다. 오키나와 주민 59만명은 긴급 피난 권고를 받았다.

태풍은 나비, 제비, 장미 등 이름이 친근하지만 무서운 위력으로 큰 피해를 준다. 이 때문에 유사한 피해를 막고 경계심을 강화하고자 이름을 바꾸거나 없애기도 한다. 2005년 일본을 강타한 태풍 나비는 ‘독수리’로 이름이 바뀌었다. 태풍 이름의 퇴출은 매년 개최되는 태풍위원회 총회에서 결정하는데 태풍 이름을 처음 지었던 국가가 변경된 이름을 다시 제출한다.

태풍의 이름이 처음부터 이렇게 귀여웠던 건 아니다. 태풍에 처음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 것은 호주의 예보관들이었는데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가의 이름을 붙였다. 싫어하는 정치가의 이름을 따 “태풍 ‘A’가 엄청난 재난을 몰고 올 것”이라는 식으로 예보를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공식적으로 이름을 붙이기 시작할 때는 예보관들이 아내나 애인의 이름을 사용해 1978년까지 태풍은 ‘여성’이었다.

1999년까지도 태풍의 작명권은 미국에 있었다. 그러다 2000년부터 태풍위원회가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자 회원국 고유의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국가별로 10개씩 이름을 제출해 140개 이름이 5개 조로 구성됐다. 태풍이 연간 30여개 발생하기 때문에 1조부터 5조까지 순차적으로 사용하는 데 4~5년이 걸린다. 140개 이름이 모두 소진되면 1번부터 다시 사용한다.

현재 우리나라가 제출한 태풍 이름은 개미, 나리, 장미, 미리내, 노루, 제비, 너구리, 고니, 메기, 독수리다. 북한에서도 기러기 등 10개 이름을 제출했기 때문에 한글 이름은 총 20개가 됐다.

일반적으로 태풍은 북서 태평양에서 발생하는 열대 저기압 중 강한 풍속과 비바람을 지닌 저기압을 지칭한다. 세계기상기구(WMO)에서는 중심 부근 최고 풍속이 33㎧ 이상이면, 한국과 일본에서는 17㎧ 이상이면 태풍으로 분류한다. 발생 초기에는 무역풍을 타고 서북서진하다 북상하면 편서풍 영향으로 북동진한다. 수증기 잠열이 주 에너지원이기 때문에 육지에 상륙한 뒤에는 세력이 점차 약화된다.

발생 횟수는 연 평균 31.3개 정도로 해마다 변동이 커 많을 때는 40개가량, 적을 때는 20개 이하일 때도 있다. 이 중 한반도까지 이동하는 태풍은 연 평균 3.8개 정도다. 아직 예측 모델이 전 지구적 기압 흐름을 파악하는 단계까지 발달하지 못해 발생 전에 태풍을 감지·예측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연간 발생량은 기존 통계와 그해 기후 모델을 참조해 예측한다. 기상청은 올해 우리나라에 8호 태풍 너구리를 포함해 2~3개 태풍이 지날 것으로 내다봤다. 단기적으로는 향후 10일 이내 태풍 발생 가능성을 확률로 나타낼 수 있다.

발생 자체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발생한 태풍의 진로 예측 기술은 진화했다. 인공위성 덕분에 태풍 중심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일단 정교한 위치 파악이 가능해지면 북반구 기류 모델을 토대로 태풍 진로를 예측할 수 있다. 기상청 국가태풍정보센터 홈페이지에 가면 태풍 위치와 위성 영상을 수시로 볼 수 있다.

정교한 예측이 가능해졌지만 태풍은 여전히 불청객이다. 피해를 막기 위해선 일기예보를 살피고 시설물 점검, 대피 준비에 만전을 기하는 수밖에 없다.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를 강타한 태풍은 2002년 ‘루사’가 대표적이다. 일 최고 순간 풍속이 56.7㎧로 역대 3위를 기록했고 일 최다 강수량은 870.5㎜로 역대 최다였다. 인명 피해는 246명, 재산피해액은 5조1479억원을 기록했다. 인명 피해 규모로는 열 번째, 재산피해액으로는 최대 태풍이었다.

1904년부터 지난해까지 통계를 보면 8월, 7월, 9월 순서로 태풍 상륙 횟수가 많다. 루사 역시 2002년 8월 30일부터 9월 1일까지 우리나라를 덮쳤다. 너구리가 방향을 틀면서 7월을 무사히 넘기고 있지만 8월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