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카드·증권사 주민번호수집 여전히 허용...이상한 금융업법 `예외` 규정

정부가 금융사의 주민번호 수집과 활용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금융관련 법 개정안을 대거 통과시켜 ‘봐주기’ 논란이 일고 있다. 7일 발효되는 개인정보보호법의 그물망을 빠져나가는 금융사의 법적근거가 동시에 마련된 셈이다.

6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사 주민번호 수집과 활용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은행법, 자본시장법, 여신전문금융업법, 전자금융거래법, 보험업법 등 20여종에 달하는 금융업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무더기로 통과했다. 채권 추심, 신용정보 활용 등 개인정보 유출과 직결돼 있는 민감한 금융 업무에도 사실상 예외규정을 허용해 논란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주민번호 수집과 활용에 예외 규정을 명시한 금융관련 개정법은 △은행법 △공사채 등록법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기업구조조정 촉진법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보험업법 △상호저축은행법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신용협동조합법 △여신전문금융업법 △예금자보호법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자산유동화에 관한 법률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전자금융거래법 △휴면예금관리재단의 설립 등이다.

금융투자업계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으로 주요 업무에 주민등록번호 수집이 가능하도록 손질했다. 1년 전부터 주민번호 수집이 필요한 업무를 찾아 이를 허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예컨대 개인정보보호법이 주민등록번호 수집을 근로기준법상 ‘원천징수’ 혹은 ‘4대 보험’ 등 목적으로만 가능케 했다는 점에 착안해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고쳐 금융사 임직원의 금융투자 상품 매매와 관련된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할 수 있게 허용했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해 이미 국무회의를 통과했기 때문에 크게 바뀌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수정해 한국금융투자협회에 등록되는 투자권유대행인, 펀드판매 인력의 주민등록번호 수집도 예전대로 유지될 전망이다.

반면에 대면 업무가 많은 카드사와 보험사는 금융업무 범위가 모호해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한 카드사 고위 관계자는 “금융업무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 카드업계가 수행하고 있는 다양한 업무 중 금융업무와 비(非)금융업무가 뒤섞여 있다”며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실상 금융업무가 아니지만 주민번호수집이 반드시 필요한 업무도 비일비재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여신금융협회는 여러 카드사 업무 중 주민번호 수집 가능 업무와 불가 업무를 명확히 구분하고자 의견 수렴을 거쳐 조만간 금융당국에 유권해석을 의뢰할 예정이다. 다만 제휴를 활용한 통신료 및 아파트 관리비 등의 자동이체, 부가서비스 제공을 위한 제휴업체에는 주민번호 제공을 금지하기로 하고 대체 수단 마련에 착수했다.

보험업계는 마케팅동의서 등 부수업무와 보장내역, 납입보험료 등 금융거래 내역을 확인하는 전화상담 외에 단순상담 때도 주민번호를 수집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불명확한 금융업무가 많아 대책 마련이 쉽지 않은 분위기다.

정부는 내년 2월 말까지 주민번호 수집 관련, 약 6개월간 과태료 부과를 하지 않는 계도기간을 뒀다.

[표]주민번호 수집·활용 예외규정 담은 금융유관 법

은행·카드·증권사 주민번호수집 여전히 허용...이상한 금융업법 `예외` 규정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