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핫이슈]아이스버킷 신드롬 부른 루게릭병, 원인도 치료법도 없어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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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물 뒤집어쓰기(아이스버킷 챌린지)’가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미국 루게릭협회(ALS)가 시작한 SNS 캠페인이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도 상륙했다. SNS에 ‘얼음물 벼락’을 맞는 영상을 올리고 다음 참가자를 지목하면 대상자가 똑같이 물벼락을 맞거나 100달러(약 10만원)를 기부해야 한다. 참가자 대부분이 기부와 물벼락을 모두 선택한다.

캠페인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루게릭병 환자의 고통을 나누자는 원래 취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루게릭병은 근육위축성측삭경화증(ALS)으로 불리는 신경 질환이다. 메이저리거였던 루 게릭이 이 병을 앓아 ‘루게릭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발병하면 대뇌 피질의 상위운동신경세포와 아래운동신경세포가 점차 파괴된다. 이처럼 운동신경이 파괴되면 근육 수축과 마비가 온다. 얼음물을 맞는 행위 역시 근육이 수축되는 고통을 함께한다는 의미에서 시작됐다. 근육 마비가 지속되면서 결국 호흡근까지 마비, 사망에 이른다.

혀 근육이 마비돼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사레가 들리기도 하고, 흡인성 폐렴이 발병하기도 한다. 보통 발병 후 3년쯤 되면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강 근육이 마비되면 누운 상태에서 호흡 곤란이 자주 발생한다. 호흡 곤란이 가장 치명적인 합병증이라 환자에게 호흡기는 필수다. 인지 기능 장애가 동반되는 사례도 종종 있다.

환자는 운동세포와 근육이 죽어가지만 의식이 또렷해 더 큰 고통을 겪는다. 각종 의료기기와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채 24시간 내내 주변 도움으로 연명해야 한다.

연간 10만명당 1~2명꼴로 발병하고, 환자 생존 기간은 평균 3~4년에 그친다. 젊은 층보다는 50대 후반 중장년층에서,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많이 발병한다. 환자 중 10% 정도는 10년 이상 장기 생존하기도 하지만 정확한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약 50% 환자가 3년 안에 사망하고 약 90% 환자가 6년 안에 사망한다는 보고도 있다.

운동신경이 아닌 근육 자체의 문제로 발생하는 근육위축증과는 다르다. 근육위축증은 비교적 대칭적으로 증상이 나타나고 몸통에서 가까운 쪽부터 근력이 빠진다. 반면에 운동신경 파괴로 인한 루게릭병은 초기 비대칭적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일이 많고, 몸통에서 멀리 있는 근육부터 힘이 빠진다.

증상으로 우선 판별하지만 정확한 진단은 신경전도검사, 근전도검사를 통해 이뤄진다. 유사한 증상의 근육병과 구분하려 뇌의 자기공명영상촬영(MRI), 혈액검사를 병행하기도 한다.

루게릭병은 원인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난치병이다. 유전성 질환이라는 추정만 가능한 상태다. 환자의 일부 염색체에서 원인 유전자 돌연변이가 확인되고 있다. 원인 유전자는 한 가지가 아니라 계속 발견되고 있다. 현재까지 8종 내외 원인 유전자가 루게릭병 발병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러스나 환경 독소의 작용이 루게릭병을 유발한다는 가설도 있지만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

이 때문에 마땅한 치료법도 없다. 유일하게 효능이 있다고 인정된 ‘릴루텍’이라는 약물이 있지만 생존 기간을 수개월 연장할 뿐 근력을 회복시킬 수는 없다. 그 외에 유전자 치료법과 줄기세포 치료법이 연구되고 있지만 효능이 입증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줄기세포 치료법이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8개 업체가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을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41건의 임상시험 승인을 받아 22건을 진행 중이다. 루게릭병을 비롯한 난치병 환자들의 기대를 받고 있지만 유전체 안정성을 충분히 검증해야 한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줄기세포 치료제의 종양 발생 가능성, 유전체 안정성 등을 평가하는 별도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아이스버킷 캠페인은 미국루게릭협회에서 시작해 우리나라에 들어왔지만 우리나라에도 2001년 루게릭병 환자와 의료진이 설립한 한국루게릭협회(KALSA)가 있다. 협회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2500여명의 환자가 투병 중이다.

간병비, 인공호흡기의 소모품비, 폐렴 등 합병증으로 인한 의료비 등이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조광희 KALSA 사무국장은 “한 달 평균 400만~500만원의 비용이 들어간다”며 “특히 40대, 50대 발병률이 높기 때문에 환자가 생기면 가정은 파탄 지경에 이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 사무국장은 “아픈 사람들의 생명도 소중하며 이 세상에 함께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며 “기적처럼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 버텨야 하는 루게릭병 환자들에게 사회적 관심은 그대로 삶에 대한 희망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미국루게릭협회에서 캠페인 시작 이후 13만여명에게서 130억원 이상의 기부금이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아이스버킷 캠페인이 유행을 탄 이래 100여명이 한국루게릭협회에 후원 약정을 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