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2주년 특집]제조업의 또 다른 변화 ‘시험인증’을 주목하라

반도체·조선·자동차·철강 등 제조업은 우리 경제발전을 이끌어 온 일등공신이다. 하지만 과거 100년보다 앞으로 10년의 변화 속도가 빨라진 오늘, 종전 산업구조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게 됐다. 우리나라가 소프트웨어(SW) 중심국가로 발돋움하고자 하는 이유다. 하지만 하드웨어(HW) 부문의 획기적인 변화 없이는 SW 중심국가 구현은 물론, 앞으로 5년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제조업은 혁신을 바탕으로 한 재도약을 필수 과제를 남겨뒀고 ‘시험인증’ 산업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험인증 산업 SWOT 분석(출처:국가기술표준원)
<시험인증 산업 SWOT 분석(출처:국가기술표준원)>

◇‘고부가가치’ 시험인증 시장…국내 경쟁력은 ‘아직’

스마트폰·노트북과 같은 디바이스, 자가용·선박·비행기 등 이동수단, 침대·소파와 같은 가구까지, 우리 일상을 함께하는 제품은 시험인증을 거쳐 비로소 세상에 나온다. 안전·성능·유해성 등을 점검해 일정 기준을 충족해야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험인증 산업은 제조업체의 역량과 시민의 안전, 환경은 물론이고 넓게는 국가 경쟁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부가가치 창출에 있어 시험인증 산업의 중요성도 높다. 세계 시험인증 시장 규모는 2010년 132조원, 2011년 145조원, 2012년 153조원을 기록하는 등 지속 성장을 기록했다. 해외 시장조사 업체에 따르면 세계 시험인증 시장은 2015년까지 연평균 5.2%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기존 제조업의 수요가 꾸준하고 전기차·의료기기 등 새로운 산업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상당하다는 점도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환경·건강 문제가 두드러지며 관련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도 시험인증 산업에 주목하게 만든다. 글로벌 제조업체의 경쟁력은 이미 성능·가격뿐 아니라 친환경성·안전성 등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험인증 대응 역량을 갖추지 못 한 기업은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 됐고, 이 같은 추세는 갈수록 강화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각종 전자제품과 반도체, 자동차, 선박 등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지만 시험인증 역량은 여기에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글로벌 제조기업이 많아 세계 시험인증 시장의 5.5%를 차지하면서도 자체 경쟁력이 부족해 ‘남 좋은 일’만 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윤영석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국내 7대 시험인증 기관의 인력은 스위스 시험인증 기관 SGS 한 곳의 24분의 1에 불과하다. 국내 시험인증 기관은 약 2000개에 달하지만 연 매출이 수억원에 불과한 곳이 상당수다. 해외 기업이 주목할 만한 세계적인 시험인증 기관 탄생은 아직 요원한 상황이다.

◇인증의 대명사, 美 UL을 벤치마킹하라

미국 UL은 세계에서 인증의 대명사로 통한다. 미국 최초의 안전규격 개발 기관이자 인증기관인 UL은 1894년 설립 후 약 120년 동안 수많은 제품을 시험하고 인증을 제공하며 시장에서 높은 신뢰를 쌓았다. 붉은색 UL 마크가 붙은 제품은 세계 어디서든 안전하고 믿을 수 있다는 약속으로 통한다.

키스 윌리엄스 UL 회장은 “우리는 보다 안전한 삶과 환경을 위해 일하는 회사”라며 “그동안 높은 신뢰를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엄격한 기준과 독립성 덕분”이라고 말했다.

UL의 사업은 △C&I(Commercial & Industrial) △컨슈머(Consumer) △서플라이체인&서스테이너빌리티(Supply Chain & Sustainability) △라이프&헬스(Life & Health) △워크플레이스 헬스&세이프티(Workplace Health & Safety) 등 크게 5개로 나눠진다.

C&I 부문에서는 UL이 100년 이상 쌓은 기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기업이 안전하고 우수한 제품을 신속하게 개발, 글로벌 시장에 출시할 수 있도록 안전·성능·규격 준수 관련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시험소간 긴밀한 협업을 바탕으로 기업이 제품을 글로벌 시장에 적시에 제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컨슈머 부문은 제조업체의 제품 생산 전 과정, 유통업체의 공급망과 관련된 성능시험 서비스를 제공해 기업의 위험부담을 최소화하고 각종 규격에 적합한 제품을 제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안전의 영역이 복잡·다양해지는 추세를 반영해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플라이체인&서스테이너빌리티 부문에서는 기업이 지속가능한 제품을 제공할 수 있도록 종합 서비스를 제공한다. 라이프&헬스 부문은 보건·의료 부문 관리를, 워크플레이스 헬스&세이프티 부문은 건강하고 안전한 근무 환경 구축을 지원하고 있다.

◇기술·노하우는 기본, 변화에 대응이 ‘핵심’

UL의 경쟁력은 120년 동안 축적한 기술과 노하우뿐만이 아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사업 영역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성공적으로 안착시켜 온 점이 우리 시험인증 업체가 벤치마킹해야 할 부분으로 꼽힌다. 국내 기업도 정보기술(IT) 부문 강점을 바탕으로 사업 대상을 전략적으로 확대하면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UL이 성공적으로 사업을 확대한 사례로 컨슈머 부문이 꼽힌다. 컨슈머 부문에서는 TS(Transaction Security), 컨슈머 테크놀로지(Consumer Technology), 컨슈머 제품(Consumer Products), 리스판서빌리티 소싱(Responsible Sourcing) 등의 사업을 담당한다. 스마트폰,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 첨단기기의 인증을 담당하는 것도 컨슈머 부문이다.

환경 부문 사업에 거는 기대도 높다. UL은 원자재부터 최종 생산품이 제작돼 수명이 다 할 때까지 환경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측정시험과 평가, 환경인증, 컨설팅 서비스를 바탕으로 업체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돕는다.

넓어진 사업 영역에 발맞춰 UL은 해외 사업을 지속 확대했다. 1990년 이전에는 해외 인력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55%의 직원이 미국이 아닌 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1996년 UL코리아를 세워 지금은 210명이 근무하는 핵심 조직으로 성장했다.

윌리엄스 회장은 “변화에 발맞춰 사업을 전개해 나간 것이 UL의 강점이자 원동력”이라며 “향후에도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20세기와는 또 다른 청사진과 운용 방식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스1/정부, 시험인증 산업 경쟁력 확보에 ‘박차’

정부도 시험인증 산업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대응책을 마련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연초 ‘시험인증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한데 이어 세부 실행계획으로 최근 16대 유망 시험인증서비스 상용화를 위한 ‘유망 시험인증서비스 전략로드맵(안)’을 발표했다.

산업부는 세계 최고의 스마트 시험인증 시스템 구축, 컨소시엄을 통한 통합 브랜드 도입으로 시험인증 산업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매출 3000억원 이상의 히든챔피언 3개 육성, 고급 이공계 일자리 9000개 창출, 해외 매출액 10배 성장, 해외거점 5개를 확보를 목표로 설정했다.

5대 전략 추진과제로 △시험인증 유망분야 집중 지원 △통합 브랜드 추진 확산 △시험인증 역량 강화 △신시장 확충 △법·제도 선진화를 꼽았다.

국가기술표준원은 시험인증 유망분야 집중 지원의 일환으로 유망 시험인증서비스 전략로드맵을 최근 발표했다. 에너지저장장치 과충전 시험, 인공심장 생체적합성 시험, 스마트폰 충전효율성 시험 등을 16대 유망 시험인증서비스로 선정했다. 이달 자동차 기능안전성 시험과 스마트폰 무선충전 시험 시범사업에 나설 예정이다.

글로벌 시험인증 기관과 비교해 규모가 열악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합 브랜드를 구성할 방침이다. 시험인증기관 간 컨소시엄을 구축하고 브랜드 가치와 인지도 제고를 위해 통합 브랜드를 도입한다.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미주·유럽·동남아·중동·아프리카 등 5개 거점지역에 교두보를 구축하고 해외진출을 위한 해외투자보험, 장비 구매를 위한 무이자 융자 지원 펀드를 신설한다. 또 시험인증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시험인증제도 운영 및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도 제정할 방침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통합 브랜드 도입을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시험인증제도 운영 및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은 내년 입법 과제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스2/“UL의 경쟁력은 치우치지 않는 엄격함”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UL 프리몬트랩은 삼성전자, LG전자, 애플 등 글로벌 전자업체가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의 성능, 위해성 등을 평가한다. 프리몬트랩을 무사히 통과한 제품만이 소비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

이곳에서 만난 마이크 쿠오 UL 북미지역 컨슈머 테크놀로지 부문 부사장은 자사의 경쟁력을 “객관적이고 엄격한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이나 소비자 중 한쪽에 치우쳐 인증을 부여하지 않고 오직 엄격한 원칙에 따라 평가함으로써 UL의 신뢰가 보장된다는 설명이다.

쿠오 부사장은 “우리는 국제 기준을 가장 염두에 두며, 기업이나 소비자 어느 한쪽에 치우쳐 기준을 정립하지 않는다”며 “소비자의 우려나 요구사항은 제조사가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며, 여기에 지나치게 관여하면 객관적이고 엄격한 기준을 갖고 일한다는 UL의 원칙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 예로 제품 안전이나 오용, 디자인 문제 등으로 소비자가 부상을 당해 관련 소송이 진행되는 경우 우리는 제3의 전문기관으로서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할 것”이라며 “어떠한 경우에서도 객관적인 기준을 가장 중요시 한다”고 덧붙였다.

컨슈머 테크놀로지 분야 중 UL이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는 부문은 첨단기술(Hi-tech)이라고 말했다. 그 중에서도 무선기술과 전자결제보안 관련 서비스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쿠오 부사장은 “무선기술은 다양한 산업에 접목 가능해 자동차 산업 등에서도 관심이 높다”며 “모바일과 전자결제 산업은 한국에서는 많이 활성화 됐지만 미국은 이제 시작 단계인 만큼 발전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최근 각광을 받는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관련해서는 인체 유해성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모바일 기기와 무선기술이 접목돼 데이터를 교환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 과정에서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쿠오 부사장은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대한 특정 안전기준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다양한 기관과 공동 연구를 통해 적합한 기준을 만들기 위한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