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핫이슈]에볼라 대응, 격리 vs 인권침해 팽팽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에볼라 환자와 접촉했거나 위험 지역을 여행한 사람들을 잠복기간 동안 의무 격리하는 것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에볼라 확산을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는 입장과 과도한 조치로 인해 인권이 침해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호주가 발병 국가 입국자에 대해 비자 발급을 중단했고, 북한도 입국하는 모든 외국인을 격리하는 조치를 시행해 눈길을 끌고 있다.

메인주의 자택 격리 명령에 반발해 남자친구와 함께 자전거 시위에 나선 히콕스
메인주의 자택 격리 명령에 반발해 남자친구와 함께 자전거 시위에 나선 히콕스

최근 미국에서 에볼라 예방을 위한 격리 문제가 화제가 됐다. 미국 뉴저지주는 서아프리카 의료 봉사를 다녀온 간호사 케이시 히콕스를 약간의 열이 있다는 이유로 의무 격리 대상자로 지정했다. 히콕스는 격리 후 에볼라 음성판정을 받았음에도 강제 격리가 유지됐다. 이 같은 조치에 비난 여론이 빗발쳤고, 결국 뉴저지주는 사흘 만에 격리를 해제했다.

히콕스가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번엔 자택이 있는 메인주가 다시 ‘자택 격리’ 명령을 내렸다. 히콕스는 이에 반발, 남자친구와 함께 자전거로 동네를 달리며 항의했다. 히콕스는 기자회견을 하고 취재진과 악수를 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려는 주 정부의 조치에 정면 대응했다.

메인주는 히콕스가 반발하자 체포영장 신청 등 가능한 모든 공권력을 동원하겠다는 입장이다.

히콕스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의료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올 것”이라며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인권침해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격리를 택한 나라는 미국뿐이 아니다.

호주는 에볼라 발병국가인 서아프리카 3국에 대한 비자발급을 전면 중단하는 초강수를 택했다. 증상 여부에 관계없이 해당국가 출신은 호주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조치다.

스캇 모리슨 호부 이민부 장관은 “에볼라 발병국 국민의 비자 신청을 받아주지 않겠다”고 의회에 밝혔다.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3개국 국민의 비영구 비자와 임시 비자는 전부 취소되고, 아직 호주에 도착하지 않은 영구 비자 소지자는 에볼라 최대 잠복기인 21일 간 격리기간을 거쳐야 입국할 수 있다.

호주는 에볼라 환자를 치료하고 돌아온 자국 의료진에게도 자가 격리를 권고하고 있다. 이것도 의무 격리로 강화를 검토 중이다.

호주의 비자발급 거부라는 초강수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다. 인권 침해 논란은 물론이고, 과도한 조치로 인해 공포감만 키운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호주 정부는 비난을 받더라도 이 같은 조치를 바꾸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북한도 에볼라 확산을 우려해 외국인에 대한 격리 조치를 시행했다. 정부에 따르면 북한이 입국하는 외국인에 대해 21일 간 의무 격리조치를 시행하는 것이 공식 확인됐다.

통일부가 영국 외교부 등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부터 모든 외국인 입국자를 21일 간 격리조치 하기로 했다. 북한은 이 같은 내용을 평양 주재 공관과 국제기구에 공문으로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나 북한만큼의 강도는 아니지만 우리 정부도 에볼라 환자를 치료하고 돌아온 의료진에 대해서는 21일 간 의무격리를 택하겠다는 입장이다. 방역이 우선이라는 판단이다.

앞으로 의무 격리를 택할 나라가 늘어날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증상이 없는 사람까지 강제 격리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맞지 않고, 인권도 침해한다는 반대 여론이 거세다.

반기문 UN사무총장도 의무 격리를 반대했다. 반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치료에 참여한 의료진은 인류애를 위해 헌신한 보기 드문 사람들”이라며 “이들에 대한 의무격리 조치는 불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의무격리는 의학적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것인 만큼 이들을 격리해서는 안 된다”며 “지원이 필요한 이들에게 낙인을 찍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강제격리가 의료진의 사기를 꺾고, 자칫 에볼라 구호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밝혔다.

에볼라 환자 치료에 참여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도 강제격리 조치를 비난했다. 미국 일부 주의 강제격리 조치 때문에 미국 국적 의료진이 임무를 마친 후 유럽에 머무는 등 귀국 시기를 늦추고 있다는 것.

소피 들로네 국경없는의사회 상임이사는 “현지 의료진 사이에서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닥칠 문제에 대해 염려와 당혹감이 커지고 있다”며 “잠재적인 에볼라 감염자로 낙인찍히고 격리되는 것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한편 세계 각국의 의료 지원에도 불구하고 에볼라 환자는 꾸준히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달 27일 기준 에볼라 감염자가 1만3703명이고, 사망자는 4920명이라고 발표했다. 앞선 23일 발표보다 감염자가 3000명이나 증가했지만, 신규 감염자가 아니라 기존에 누락된 감염자를 합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에볼라 감염률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브루스 에일워드 WHO 사무부총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라이베리아에서 에볼라 감염률이 며칠째 줄고 있고, 진료소에 비어 있는 병상이 늘고 있다”며 “이 추세가 지속되면 12월에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이 에볼라 억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