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포럼]ITU 150년, 통신의 역할과 기여

[리더스포럼]ITU 150년, 통신의 역할과 기여

오는 5월 17일이면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설립된 지 150년이 된다. ITU는 전기통신과 관련한 표준화, 주파수 배분, 각종 규제와 협력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제연합(UN)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기구다. 1865년 창립된 ITU는 국제적으로 전신(Telegraph) 방식을 협의하기 위해 만든 만국전신연합으로 시작됐다.

ITU 탄생의 배경이 된 전신 기술은 영국에서 1839년 처음 상용화됐다. 그때에는 음성 전달은커녕 간단한 부호 형태의 신호만 전달이 가능했지만, 기존의 깃발 신호나 편지 교환에 비하면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아무리 먼 거리도 즉시 의사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은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식민지 건설 경쟁이 치열했던 제국주의 시대였다. 이들 국가들에는 세계 곳곳의 식민지로부터 즉각적으로 소식을 듣고 정책을 전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그 시대 최첨단 통신 기술이었던 전신은 곧 국력을 좌우하는 것이었다.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린 만큼 당시 통신 분야에서도 강국이었다. 전 세계의 식민지를 연결하는 영국의 통신망은 올 레드 라인(All Red Line)이라는 별칭으로 불렸고 1911년 완성됐다. 해저 케이블 구간만 16만㎞로 지구를 네 바퀴 돌 수 있는 길이였다. 영국을 고립시키려면 49곳의 케이블을 차단해야 할 정도로 영국의 통신망은 견고했고, 이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이 독일에 대항해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요인이 되기도 했다.

ITU가 설립된 지 1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통신은 여전히 국력을 좌우한다. 오히려 디지털 정보 사회가 되면서 그 중요성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광대역 통신망을 확충하는 것을 주요 정책으로 추진할 정도다. 더구나, 개인이 통신을 꿈꿀 수도 없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한 사람이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여러 개의 통신 기기를 가지고 다닐 정도로 삶의 필수품이 됐다.

이제 긴급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다양한 정보와 콘텐츠를 주고받을 수 있다. 전 세계의 소식이 손안에 펼쳐지고, 고화질 영상 콘텐츠와 오락도 순식간에 전송되어 모니터에 나타난다. 거실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터치하는 것으로 은행이나 쇼핑센터를 오가는 수고를 덜 수 있다. 국가 간의 경쟁력을 좌우했던 통신이 개인들의 경쟁력과 삶의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가 된 것이다.

이처럼 통신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ITU의 역할도 확대됐다. 통신망에 접속하는 것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자, ITU는 전 세계 디지털 정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나아가, 광대역 통신망을 활용해 양성평등, 건강, 기후변화와 환경, 사이버 보안 문제 등 다양한 글로벌 현안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통신의 역할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ITU의 회원국으로 가입한 것은 1952년이었다. 우리나라는 1885년에 이르러 서울-인천 간 전신을 개통할 정도로 전기통신 도입이 늦었다. 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의 식민지 건설 수단으로 통신망을 내어주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나라보다도 빨리 광대역 인터넷망을 전국에 구축했고, 2세대(2G)부터 현재의 4세대(4G)에 이르기까지 이동통신 기술 발전과 상용화에 기여해 왔다. 그리고 지난해 ITU 전권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국제적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ITU 표준화 총국장을 배출하는 등 국제무대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할 기회도 얻었다.

이제 우리는 국제 사회의 일원이자 자타공인 통신강국으로서 국제사회에 기여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우수한 통신서비스와 새로운 기술개발로 ICT 발전을 선도해야 하는 위치에 와 있다. 전 세계가 더욱 발전된 통신환경을 가질 수 있도록 ITU를 비롯한 국제 사회와의 협력에도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설정선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 상근부회장 12jss@kto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