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 눈물의 마지막 공장가동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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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찾은 팬택 김포공장. 뙤약볕이 내리쬐었지만 왠지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한때 1400명이 북적대던 이곳은 화장실도 줄서서 가야 할 만큼 붐볐다.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사람이 한두 명씩 줄다가 급기야 생산라인을 세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날 공장 생산운영팀 메인 조립라인에는 모처럼 17명의 직원이 모였다. 드문드문 앉은 이들은 무언가 열심히 조립 중이었다. 미국 버라이즌에 납품하기로 한 노트북용 무선통신 모뎀 ‘스파클’ 2380개. 이들이 마지막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팬택이 고객과 약속한 LTE모뎀 2380개를 생산하기 위해 다시 조립라인 앞에 앉았다. 지난 29일 김포공장에서 직원이 테스트라인 한곳에 붉을 밝히고 모뎀을 조립하고 있다.
<br />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팬택이 고객과 약속한 LTE모뎀 2380개를 생산하기 위해 다시 조립라인 앞에 앉았다. 지난 29일 김포공장에서 직원이 테스트라인 한곳에 붉을 밝히고 모뎀을 조립하고 있다.
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팬택은 지난 26일 기업회생절차 폐지를 신청했다. ‘파산’이란 단어가 직원들 마음을 짓눌렀다. 굳이 라이터 크기 모뎀 2380개를 납품하지 않아도 나무랄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한동안 쉬면서 아르바이트로 전전하던 생산라인 직원들이 사실상 마지막 공장가동을 위해 모인 이유가 궁금했다.

1996년 스물 한 살에 입사한 김포공장 원년 멤버 허경수 차장(40)은 “고객과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듬해 입사해 메인조립공정 파트장을 맡고 있는 이영호 과장(39)은 “임시직으로 생활비를 버는 사람도 있는데 어렵게 모았다”며 “팬택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26일부터 30일까지 생산한 버라이즌행 모뎀은 1일 김포공장에서 출하된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번이 정말 마지막 출하다.

허 차장은 “팬택과 처음과 끝을 같이하려고 한다”며 “예전에는 활기찼는데 극소수만 출근하니 적막하고 허전하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7년 열 아홉 살에 실습생으로 입사한 김종원 과장(37)은 “예전에는 지인들에게 팬택 휴대폰을 추천했는데 이제는 자랑거리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선풍기 소리 요란한 조립라인에 모인 허 차장, 이 과장, 김 과장 3인은 모두 자녀가 둘이다. 결혼을 일찍 한 이 과장은 벌써 큰아들이 중학교 2학년이다. 20년 가까이 ‘청춘을 바쳐’ 일하며 일군 가정이지만 이제 회사는 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었다.


이 과장은 “먹고살 걱정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고 했다. 김 과장은 “뭘 해야 할지 몰라 생계가 걱정”이라고 말했고 허 차장은 “마지막 조립을 하느라 생계 걱정을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세 사람은 2013년 4월 국내 최초로 풀메탈 보디를 채택했던 ‘아이언’ 출시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당시 메탈 보디를 국내외 어디에서도 출시한 적이 없어 생산 노하우가 전혀 없었다. 스마트폰을 눕혀서 조립하는 일반 제품과 달리 메탈폰은 세워서 조립해야 했다. 그만큼 작업자 피로감이 높고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이 과장은 “스크루(전동 드라이버) 공정이 많다 보니 인대가 늘어날 정도로 일해야 했다”며 “오전에 안 된다고 했던 수량을 저녁 때 맞추자 본부장님이 갑오징어 회에 소주를 사줬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작년에는 아이언2가 나온 기념으로 김포 장기동에 있는 갑오징어집을 다시 찾았다고 한다.

‘전성기 시절’을 회상하는 이들의 얼굴엔 금세 미소가 번졌다. 말이 많아지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허 차장은 “2005년 회사 한마음 체육대회에서 마티즈 자동차가 당첨됐던 게 생각난다”며 즐거웠던 기억을 끄집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은 어느새 현실로 돌아왔다.

허 차장은 “팬택이 다시 살아난다면 무엇보다 마음이 안정될 것 같다. 자식처럼 애착이 있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청춘을 바친 회사다. 잘돼서 다시 다니고 싶다”며 아쉬움을 토로했고 이 과장은 “살아날 겁니다”고 짧게 답해 여운을 남겼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