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단통법 1년…싸늘하던 여론이 돌아섰다

시행 1주년을 앞두고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을 둘러싼 분위기가 뚜렷하게 달라지고 있다. 초창기엔 단점이 부각되며 단통법 폐지론이 강세였다면 지금은 장점을 인정하며 일부 문제점만 개선하자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이슈분석]단통법 1년…싸늘하던 여론이 돌아섰다

자신감을 얻은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큰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세부적인 개선안을 내놓는 방향으로 향후 단통법을 운용해나갈 계획이다.

◇확실한 이용자 차별 해소…통신비 인하효과까지

단통법 제정 가장 큰 목표는 ‘이용자 차별 해소’였다. 과거에는 한 대리점에서 한날 한시에 휴대폰을 구입해도 누구는 공짜인 반면에 ‘호갱’은 제값을 다 주고 사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원금 살포를 통한 가입자 뺏기가 만연하면서 이른바 ‘대란’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졌다. 단통법은 이를 막기 위해 지원금 상한을 정하고 공시하도록 했으며 부당한 이유로 지원금을 차별 지급하지 못하도록 규제했다.

1년간 시행한 결과 단통법이 이용자 차별을 눈에 띄게 해소했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다. 공시된 내용에 따라 누구나 동일한 지원금을 지급받게 됐으며 요금제나 가입유형에 따른 차별도 대부분 사라졌다. 덕분에 기기변경 가입자 비율은 단통법 이전 26.2%에서 8월 현재 54.9%까지 급증했다. 번호이동에 집중되던 지원금이 골고루 퍼지면서 나타난 효과다. 극심한 가입자 뺏기 경쟁도 자연스레 자취를 감췄다. 몇 차례 벌어진 단발성 대란은 방통위의 강력한 제재로 무력화됐다. 대란 수혜자로부터 입은 손실을 ‘호갱’에게서 회수하던 ‘상호보조’ 효과도 사라졌다. 지원금이 경쟁 포인트가 되지 못하면서 다양한 서비스 경쟁이 펼쳐진 것도 단통법이 거둔 값진 성과 가운데 하나다.

지원금을 받지 못한 가입자가 그에 상응하는 요금할인(선택약정할인)을 받게 되면서 지원금 수혜자와 비수혜자 간 차별도 완화됐다. 선택약정할인율이 지난 4월 12%에서 20%로 상향된 이후 가입자가 껑충 뛰었다. 3월까지 15만여명에 불과하던 선택약정 가입자는 8월 177만여명으로 10배 이상 급증했다. 선택약정할인이란 이통사에서 지원금을 받지 않은 휴대폰이거나 받았더라도 약정이 만료된 휴대폰에 요금 20%를 할인해주는 제도다.

서비스 경쟁은 통신요금 인하로 이어졌고, 선택약정할인은 중저가폰 인기로 이어졌다. 단통법 이전에는 서비스 경쟁을 할 필요도, 휴대폰을 싸게 내놓을 필요도 없었다. 소비자 관심이 오로지 ‘지원금(보조금)’에 있었기 때문에 이통사는 지원금을 대량 살포한 뒤 비싼 요금과 휴대폰으로 이를 메웠다. 악순환이 반복됐다. 단통법이 이 고리를 끊어놓자 경쟁 유인책이 생긴 것이다. 단통법 이전 4만5000원에 달하던 평균 가입요금 수준은 현재 4만원을 밑돌고 있다. 6만원 이상 고가요금제 가입자 비중은 같은 기간 33.9%에서 2.9%로 급락하며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중저가 단말기가 인기를 끌자 삼성 갤럭시A8, LG 젠틀, SK텔레콤(TG앤컴퍼니) 루나 등이 쏟아져 나왔다. 인기 중저가 단말기는 대부분 선택약정할인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4월 이후 출시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외국산 휴대폰이나 중고폰 등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단말기 경쟁이 심화됐고 자연스레 가격인하 효과로 이어진 것이다. 미국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던 삼성 갤럭시노트 출고가는 올해 갤럭시노트5를 출시하며 처음으로 국내 가격(758.42달러)이 미국(765.60달러)보다 낮아지기도 했다.

◇확 바뀐 여론…정부, 큰 틀 유지하며 시장자율성 키우기 주력할 듯

한마디로 ‘실적’을 보여주자 단통법을 둘러싼 여론은 사뭇 달라지고 있다. 시행 초기 ‘대란의 향수’에 젖어 있던 일부 사용자 온라인 여론이 언론에 과대 포장되면서 단통법은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이용자 차별 해소, 가계통신비 하락, 단말기 출고가 인하 등 눈에 띄는 효과가 나타나자 서서히 긍정적 여론이 형성됐다. 정부에 등을 돌렸던 언론도 하나 둘 우호적 평가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것이 이번 국정감사다. 단통법 1주년을 앞두고 있다는 점, 내년 4월 총선이 예고돼 있다는 점, 19대 국회 마지막이라는 점 때문에 이번 국감에서는 가계통신비 관련 질타가 쏟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싱거운 국감이 됐다. 박민식, 민병주 등 새누리당 의원이 “이용자 차별이 해소되고 소비자 선택폭이 넓어졌다”며 적극적으로 미래부와 방통위를 옹호한 것이다. 야당 의원 공격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김장원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이사는 “과거 과도한 보조금을 받던 사람들을 제외하면 선택약정할인, 지원금 차별금지 등 제도를 거쳐 다수 통신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갔다”며 “넓은 관점에서 보면 혜택이 늘어난 측면이 더 많기 때문에 단통법을 비판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책효과에 자신감을 얻은 미래부와 방통위는 단통법 전체 구조를 크게 손대지 않는 선에서 세부 문제점을 개선해 나갈 방침이다. 제도가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큰 폭의 변화를 일으키면 자칫 시장 참여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다만 규제 자체가 단통법 목표가 아님을 명확히 하고 시장이 제 기능을 회복하는 단계에 따라 규제를 완화해나갈 방침이다.

구체적으로는 시장안정 효과가 가장 크다고 판단된 20% 선택약정할인 제도 활성화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통신요금 인하와 단말기 경쟁 촉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봤다. 다음 달부터 설명 여부를 가입신청서에 명시토록 하고 오프라인 광고를 확대하는 등 선택약정할인 홍보를 한층 강화할 계획이다. 정책 큰 틀을 유지한다는 방침에 따라 ‘20%’인 선택약정할인율은 당분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류제명 미래부 통신이용제도과장은 “단통법 체제에서 통신시장 참여자들이 변신 과정을 거치고 있기 때문에 제도 안착에 주력할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시장이 제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규제를 완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