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3주년 특집]노키아의 빈자리, 벤처기업이 채운다

‘노키아 몰락’으로 핀란드에는 새로운 스타트업 생태계 바람이 불고 있다. 시련이 오히려 기회의 디딤돌이 되고 있다. 핀란드 정부가 2만여 노키아 실직자의 경제활동을 돕기 위해 내놓은 각종 정책이 스타트업 기폭제로 작용했다. ‘앵그리버드’의 로비오, ‘클래시 오브 클랜’ 슈퍼셀 등 글로벌 기업이 잇달아 탄생했고, 슬러시나 스타트업 사우나 등 창업 프로그램도 독특한 창업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핀란드에는 노키아 빈자리를 이들 벤처기업이 대신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했다.

◇‘노키아식 창업’이 나왔다.

핀란드 스타트업 바람은 노키아의 몰락에서 비롯됐다. 노키아는 2000년대 핀란드 전체 국내 총생산(GDP)의 절반을 차지했다. 국가법인 소득세의 4분의 1을 차지할 만큼 글로벌 시장뿐 아니라 핀란드 내수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노키아의 빈자리는 그 만큼 핀란드 정부의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했다. 정부는 이 같은 충격을 완화시키고자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았다.

대표적인 정책이 2011년부터 3년간 실시한 ‘노키아 브릿지 프로그램’이다. 노키아 출신이 창업한 스타트업에 한해 1만5000유로(약 2000만원) 혹은 직원 당 2만5000유로(약 3400만원)를 지원한다. 기업가 정신교육, 창업 멘토링 시스템뿐 아니라, MS에 매각된 노키아의 수많은 특허를 무상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노키아 출신만의 특별 창업 지원혜택인 셈이다. ‘노키아식 창업’이란 말이 나온 이유기도 하다.

노키아식 창업 열풍으로 독특한 방식의 창업 문화도 등장했다. 2009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시작된 ‘슬러시’는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여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다. 서로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내놓고, 전문가집단과 함께 평가·토론을 하면서 경쟁력을 키워간다. 슬러시 프로그램 가운데 창업경진대회도 있다. 대회 예선에 통과한 100개 신생기업이 투자자 앞에서 사업을 소개하고 냉정한 평가를 받는다. 대회를 통해 지난해만 약 7000건의 투자 상담이 이뤄졌고 1억5000만달러(1660억원)의 투자금이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번 모임에 약 1만4000명이 참여할 정도로 창업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학 중심의 창업문화도 생겨났다. 헬싱키공대·헬싱키경제대·헬싱키예술디자인대가 통합한 스타트업 특화대학 알토대는 매년 ‘스타트업 사우나’ 행사를 연다. 행사는 이들 대학 중심으로 매년 30개 팀을 선정해 한 달간 창업과정을 멘토링하고 투자유치 기회를 알선한다. 핀란드 최고의 기업가들이 자발적으로 멘토로 참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0년 이후 90개 신생기업이 스타트업 사우나를 거쳤고 투자금액만 약 278억원에 달한다.

◇노키아의 빈자리 벤처기업이 채운다

노키아가 무너질 때 세계는 핀란드 경제도 함께 몰락할 것이라는 예측을 쏟아냈다. 하지만 사실과 달랐다. 핀란드는 무너진 노키아를 발판 삼아 다양한 글로벌 강소기업을 만들어 냈다. 노키아 인재들이 스타트업으로 대거 몰렸다. ‘앵그리버드’의 로비오, ‘클래시 오브 클랜’의 슈퍼셀 등 게임업체가 잇달아 나왔고, 노키아 출신 개발자들이 창업한 욜라는 이미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욜라는 노키아가 침몰하던 2011년에 설립됐다. 노키아가 자체 OS로 개발하던 ‘미고(Meego)’를 버리고 안드로이드로 바꾸면서, 미고 개발자들이 노키아를 뛰쳐나와 만든 회사다. 욜라는 태블릿과 스마트폰을 내놓으며 유럽과 아시아 등 34개 국가시장에 판매망을 확보하고 있다.

욜라의 가장 큰 경쟁력은 노키아 시절 미고의 장점을 그대로 물려받은데 있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소비자가 직접 수정하고 구글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사용할 수 있다. 글로벌 스마트폰 OS의 80%가 안드로이드인 만큼 향후 전망도 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글로벌 모바일 게임 선두기업 ‘슈퍼셀’도 핀란드에서 탄생했다. 2010년에 창업한 수퍼셀은 2011년, 앱스토어에 ‘클래시 오브 클랜’을 출시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013년 매출 8000억원에서 지난해에는 1조8000억을 매출을 달성했다. 놀랍게도 지금까지 출시한 게임은 단 세 개뿐이다. 회사 직원도 글로벌 시장까지 합쳐 고작 150명뿐이다. 직원 1인 당 매출을 따지면 100억원이 훌쩍 넘는 셈이다. 핀란드의 대표적인 창업모델로 꼽히는 이유다. 이 회사는 노키아 몰락을 철저하게 분석해 이를 기업 경영과 철학에 담은 것으로 유명하다. 아무리 회사가 성장해도, 독립적인 ‘셀’형태 조직을 유지한다는 의미에서 슈퍼셀이라 지었다. 실제 셀 당 최소 7명에서 많게는 50명의 직원이 있다. 셀 당 게임개발부터 마케팅, 영업까지 독립 운영되는 것은 물론 시장 결과에 따른 책임이나 성과도 철저히 구분한다. 결국 노키아의 몰락에서 나온 창업의욕은 차별화된 기술과 시장 경쟁력뿐 아니라, 기업조직까지 예전보다 강한 핀란드로 성장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