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과학기술·ICT를 버린다는 건

[데스크라인]과학기술·ICT를 버린다는 건

정치가 뜨겁다.

대한민국은 정치권력 중심으로 들어가기 위한 아귀다툼이 한창이다. 4월 13일은 누군가에겐 입신양명의 개선문, 누군가에겐 빚 독촉장 가득한 우편함이 열리는 날이다.

천당과 지옥으로 갈리는 일이니 천당행 티켓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티켓 발부 독점 창구인 당 지도부나 공천관리위원회의 위엄과 권한은 추상같다. 터럭 끝도 바뀔 수 없고, 내려진 결정은 국법처럼 따라야 하는 것이 돼 버렸다.

공천(公薦)은 말 그대로 당이 유권자를 향해 `삼가 이러한 자를 내놓으니 평하여 표로 택해 주십시오`하는 공개 천거다. 그 천거에서도 표를 얻지 못하면 공천 자체가 잘못됐거나 후보가 모자란 것이고, 표를 받으면 당은 잘한 일로 믿고 당선자와 다음 일을 도모하면 된다.

그런데 냉정히 보자.

공천 작업부터 공공의 이익이나 나라의 미래는 사라졌다. 오로지 정치상의 유불리와 계파·주군을 위한 세 싸움에 쓰이는 장치일 뿐이다. 공천이라 해 놓고서 사천(私薦), 독천(獨薦)이 난무한다. 떨어뜨린 자와 떨어진 자의 감정과 화풀이, 헤쳐모여만 있을 뿐 변화와 발전이 없는 건 당연하다. 4년 주기로 되풀이된다. 문제의식이 스며들 틈도 없고, 변화무쌍한 민심을 읽어야 하는 의무감도 없다. `너 아니면 내가 죽는다`만 존재한다.

이 과정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기술(ICT)·벤처창업·핀테크계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공천 여론전이 연일 `학살` `유린` `참수` 같은 살벌한 단어를 뿜어내는 사이에 정치를 잘 못하거나 모르는 과학기술·ICT계 지성은 조용히 기다렸다. 과학기술, ICT, 혁신을 잘 모르는 정치권이 손을 내밀면 국가 경제와 우리 미래를 위해 빈칸을 채워 주겠다는 순진한 마음을 품고서.

그러나 정치 술수와 계산 앞에 이런 뜻은 쓸데없는 사치품이 됐다. 20대 국회는 과학기술과 ICT에 기반을 둔 국가·경제 발전 입법·제도화에서 19대보다 후퇴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대부분 국민이 알고 있듯 `19대 국회가 사상 최악의 국회`였으니 20대 과학기술, ICT 기반의 국가 혁신 전략에 대한 평가는 이미 답이 나온 것이나 진배없다.

정치권의 정치성을 뭐라 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가 인간의 가장 고등한 사회활동이라 한다면 거기에는 인간계에서 벌어지고 축적되는 수많은 아이디어와 경험·노하우가 섞여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정치 본연의 발전도 기대할 수 있고, 정치를 통한 사회·국가시스템 전반의 업그레이드 기회가 만들어진다.

답은 분명하다.

정치가 정치를 위해서만 작동할 때 국민은 피곤하고 외면하게 된다. 정치 속에 과학과 ICT가 살아 숨 쉰다면 정치를 보는 눈도, 국민 기대도 달라진다. 만날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내일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두근거리는 일로 바뀔 수 있다. 그 값진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건 곧 정치의 생명성을 단축시키는 것과 같다.

정치가 과학기술과 ICT를 버린다는 건 국민이 정치를 버린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진호 산업경제부 데스크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