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과 비슷한 시기에 반도체 사업 출사표를 내민 현대는 출발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현대그룹은 1983년 2월 23일 현대전자산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다고 발표했다. 그해 4월 15일 경기도 이천에 공장 착공식을 거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부지 확보에서 난항을 겪는다. 당초 계획은 32만8000여평의 부지를 확보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괄 매입이 어려워지자 국도건설로부터 사들인 23만여평을 포함, 25만3000평을 먼저 활용키로 했다.
더 큰 문제는 정부 규제였다. 현대전자 이천공장 부지에는 일부 개간 농지와 초지가 포함돼 있었다. 주무 부처인 농림수산부는 절대 허가를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현대전자는 2만여평의 개간 농지에 대해 전용 허가를 얻는 일과 개간 고시된 4만6000여평을 해제하는 일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결국 개간 농지 전용분만큼 다른 지역에 농지를 조성할 비용을 부담한다는 조건을 내걸어 허가를 따냈다. 현대전자가 공장을 착공한 시기는 당초 계획보다 6개월이나 늦은 1983년 10월 7일이었다. 이미 삼성은 한 달 전부터 반도체 공장 건설에 전력을 쏟고 있었다. 삼성 시장 진출에 자극 받은 금성반도체도 9월 대규모집적회로(VLSI) 공장을 짓고 있었다.
현대전자의 제1 반도체 공장이 경기도 이천에 완공된 시기는 삼성 기흥공장 준공보다 넉 달 정도 뒤진 1984년 7월 29일이다. 삼성은 공장 건설에 6개월, 현대는 약 9개월 걸렸다. 현대건설이라는 국내 최고 건설사를 보유한 현대그룹이 맡은 경쟁사 대비 공기에서 세 달가량 길어진 것은 언뜻 납득하기 어렵다. 전자산업에 관해서는 현대가 후발 업체이기 때문에 `핸디캡` 아니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전문가는 설명했다. 이는 현대도 수긍하는 분위기다.

“반도체 공장은 사정이 달랐다. 다른 공장에 비해 공기가 많이 소요된 반도체 1공장은 미국 현지법인(HEA) 반도체공장 설계를 그대로 따라 지었다. 설계는 그렇다 치더라도 시공상에는 처음 지어보는 첨단 전자공장이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 클린룸 클래스에 대한 개념조차 정립되어 있지 않았고 먼지, 습도, 진동, 온도 등에 대한 규격을 정확히 지켜야만 했기 때문이다.”
현대전자 사사(社史)인 `현대전자 10년사`에 나오는 내용이다.
현대의 반도체 사업 진출 초기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현대는 1983년 7월 기술 습득을 목적으로 미국 현지에 3000여평 규모의 생산공장을 착공, 이듬해 10월 완공했다. 사명은 현대전자아메리카(HEA)였다. 삼성이나 금성은 해외 업체와 기술 제휴를 맺는 방식으로 반도체 사업을 추진했다. 현대는 인재를 영입해 기술을 습득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전략은 성공하지 못했다. 자체 개발한 16K S램과 64K D램 등을 국내 공장과 동일한 조건 아래 생산에 들어갔으나 수율은 국내 공장에도 못 미쳤다.

정주영 회장은 1984년 10월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 조찬회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의 심장부에는 들어갔지만 외국 기술자를 선택하는데 있어서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 우리에게 적합한 외국 기술자를 고를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열 사람을 골라 채용하면 그 중 다섯 사람은 나중에 부적격자로 판정 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HEA 공장은 1985년 가을부터 가동이 중단됐다. 이듬해 6월 HEA 공장은 해외에 매각됐고 생산 장비는 한국으로 이전됐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