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리우올림픽에서 본 R&D 혁신 방향

2016년 여름, 국민 모두가 연일 이어진 열대야와 지구 반대편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펼쳐진 우리 선수들의 선전에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 눈길을 잡아 끈 것은 12개의 금메달로 종합 6위를 차지한 일본의 약진이었다. 특히 지난날 아시아 국가의 메달 획득은 불가능하다고 인식되던 육상, 수영 등 기초 종목에서 일본의 선전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단기간에 이뤄진 일본의 경기력 향상은 우리에게 부러움과 함께 생각할 시사점을 던져 준다.

[특별기고]리우올림픽에서 본 R&D 혁신 방향

일본의 선전은 전략적 투자, 도전적 혁신, 글로벌 개방이라는 3박자가 어우러진 결과로 보인다. 일본은 1980년대부터 구축된 생활체육 기반 위에 대표선수 경기력 향상을 위한 제도 개선과 과감한 투자를 추진했다. 지난해 장관급 부처인 스포츠청을 신설하는 등 컨트롤타워를 정비하고, 최근 수년 동안 경기력 향상 예산을 대폭 확대해 왔다. 훈련 방식의 발상 전환과 끊임없는 혁신 노력을 병행했다.

일본의 남자 400m 계주의 은메달 신화는 대표 사례다. 일본 계주팀은 높은 실패 위험으로 잘 사용되지 않는 언더핸드 패스 방식을 철저히 분석하고 숙련, 바통 전달 시간을 대폭 단축시켰다. 글로벌 역량 내재화에도 주력했다. 많은 유망주를 조기에 발탁, 해외 유학·연수를 지원하고, 외국인 코치를 대거 영입하는 등 선진 훈련 방법과 노하우를 익히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런 일본의 성공 요인을 보면서 우리 과학기술계의 현실을 반추해 봤다.

어려운 경제 여건에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율 세계 1위, 연 19조원이라는 막대한 정부 R&D 투자는 과학기술에 거는 정부와 국민의 기대를 단면으로 보여 준다. 이에 따라서 투자 규모에 걸맞은 우리 국민의 성과 창출에 대한 요구는 일견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최근 제기된 일부 과학기술계의 민낯과 관행은 연구자 대다수의 사기와 자긍심에 상처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비 또한 국민 눈높이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에 이은 만년 아시아 3위에 머물러 있던 일본의 스포츠가 다시금 도약한 것처럼 우리 과학기술계도 새로운 퀀텀 점프를 위한 시동을 걸어야 할 때다.

그렇다면 과학기술계에 어떤 변화와 혁신이 시급한가. 먼저 막대한 규모에 이르는 R&D 투자와 운용 체계 개선, 즉 R&D 시스템의 효율화다. 미국, 독일 등 선진국과 달리 수많은 정부 부처, 지방자치단체, 관리기관으로 분산·운영되고 있는 R&D 관리체계의 단순화 및 간소화가 시급하다. 부처·기관별로 운영되는 별도의 기획, 관리, 평가 체계는 막대한 행정비용을 발생시킬 뿐만 아니라 유사·중복 연구와 단기 성과 창출 풍토를 필연으로 낳을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해 있는 연구 방식을 철저히 되짚어 봐야 할 때다. 미지 영역 및 글로벌 프런티어 개척, 4차 산업혁명 대비를 위한 연구는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의 접근이 성공 전제 조건이다. 어느 한 분야의 단편에 그친 개선이 아니라 인재 양성·운용, 연구 기획·수행 체계, 평가 및 성과 활용 등 R&D 시스템 전 분야의 방식과 방법 변화가 필요하다. 이른바 과정과 방법을 혁신하는 `메타 이노베이션`식 사고와 접근 방식이 과학기술계에 확산돼야 하는 이유다.

이와 더불어 개방과 융합의 연구 분위기가 과학기술계 전반으로 더욱 확대·정착돼야 한다. 우리가 도전해야 할 미래 연구 영역은 개별 연구자, 개별 연구기관의 역량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졌다. 이제 우리 과학기술이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기관을 막론한 분야별 최고 수준 연구자 중심의 `국가대표급 연구팀`을 구성, 운영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과학기술은 우리 경제의 만성 저성장과 장기 침체 늪, 이른바 뉴노멀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열쇠다. R&D 혁신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혁신 필요성과 기본 방향에 대해서는 정부와 과학기술계 모두가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이제는 총론의 취지가 올곧게 과학기술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는 세밀한 각론과 구체화된 제도를 갖춰 나갈 때다. 구호뿐인 혁신, 정교한 실행 계획 없는 혁신은 과학기술 현장과 국민의 피로감만 높일 뿐이다.

일본 400m 계주팀 성공 뒤에는 사실 그 무엇보다 팀원 간 신뢰가 핵심이다. 그 바탕 위에 반복된 연습·훈련을 통한 철저한 협력과 분업이 이뤄졌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과 혁신 방안도 상호 존중과 신뢰가 없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우리 과학기술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노력에 과학기술계는 물론 정부와 국민의 의지 및 성원, 역량 및 열의가 한마음으로 모아지길 기대해 본다.

이병권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원장 bglee@kis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