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 과학향기]무궁화의 비밀, 꽃이 피고 또 핀다.

“나는 강릉 방동리에 살고 있는 무궁화 나무입니다. 대개 무궁화 나무 수명이 40~50년인데 나는 110년을 살았죠. 둘레도 146㎝나 된답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천연기념물로 정하고 귀하게 대접합니다. 몇 해 전 과학자들이 문화재청 허가를 받고 와서는 나한테서 샘플을 채취해갔어요. 무궁화 유전자를 연구하기 위해서라더군요. 유전자라는 걸 연구하면 백일 동안 피고 또 피는 무궁화 비밀을 알 수 있다면서요. 백년 넘게 여름 내내 꽃을 피우고 또 피우면서 나도 내가 왜 그런지 몰랐답니다. 그 이유를 이제 알게 되는 걸까요?”

천연기념물 제520호인 강릉 방동리 무궁화
천연기념물 제520호인 강릉 방동리 무궁화

무궁화는 태극기 깃대의 깃봉,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와 국회 상징을 비롯해 훈장과 문서 등 나라를 대표하는 문양으로 다양하게 사용된다. 나라의 상징으로 널리 사용되는데 반해 기원이나 원산지, 생육 특질 등에 대한 연구는 정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무궁화는 7월에 개화해 10월까지 대략 100일간 꽃을 피운다. 아침 일찍 핀 꽃은 저녁이 되면 시들지만, 다음 날 아침이면 다른 가지에서 새 꽃이 피어난다. 나무 한 그루에서 한 해 동안 피는 꽃은 무려 2000~5000송이에 달한다. 무궁화는 꽃이 꽃대 아래쪽에서 위쪽을 향해 피기 때문에 꽃대가 자라는 동안 꽃이 무한히 필 수 있다. 이러한 꽃을 무한꽃차례(무한화서)라 부른다. 대체로 많은 식물이 꽃을 피우는 봄을 지나, 무더운 여름날이 이처럼 쉼 없이 꽃을 피우는 무궁화 특성은 신기하게 여겨지기 충분하다. 무궁화는 어떻게 피고 또 피는 꽃이 되었을까? 최근 국내서 이뤄진 연구는 무궁화에 대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사실을 알려준다.

[KISTI 과학향기]무궁화의 비밀, 꽃이 피고 또 핀다.

무궁화 유전체 연구가 본격화된 것은 지난 2013년. 2000년대 중반 차세대 염기 서열 해독 기법(NGS)이 도입된 뒤 식물 유전체 연구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현재까지 배추, 고추, 인삼 등 유전체 100여종을 해독했지만 재배 작물에 대한 실용적 연구가 대부분이다. 무궁화 유전체 검사는 처음이었다. 국립산림연구원은 강릉, 백령도, 홍천 등에서 수령 100년 이상 된 무궁화 노거수에서 샘플을 채취해 유전자 연구를 실시했다. 연구 결과 무궁화 엽록체 게놈은 총 16만여개 염기로 이루어져 있다. 105개의 유전자를 포함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어 2016년 12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 생명연구자원정보센터(KOBIC) 김용민 박사팀, 식물시스템공학센터 권석윤 박사팀, 서울대학교 최도일 교수팀, 경상대학교 염선인 교수팀이 공동으로 무궁화 유전체를 해독한 연구 결과를 `DNA리서치` 온라인 판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총 8만7603개 유전자를 분리해 분석했다. 무궁화는 아욱과에 속하는 식물인데, 이번 연구에 의하면 같은 아욱과인 목화, 카카오와 각각 2200만년, 3000만년 전 종 분화가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무궁화와 목화 종 분화가 일어난 것은 배수체화 현상이 일어난 뒤다. 무궁화는 목화와의 종 분화 이후에도 배수체화 현상이 두 번 더 일어났다. 배수체화 현상이란 유전체가 2배, 3배, 4배 늘어나는 등 고유한 염색체가 배로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자연계에는 이렇게 배수체 특성을 지닌 식물이 여럿 존재한다. 이번 연구대상인 무궁화와 목화 외에도 옥수수, 밀, 커피 등이 해당된다. 만약 동물이라면 유전체가 배로 늘어나는 배수체화가 일어나면 생존하기 어렵다. 하지만 식물은 생존이 가능하며 짝수로 염색체가 증가할 경우 생식이 가능하다.

같은 종의 염색체가 두 배 증가하는 `동질 4배체`는 세포와 기관이 크고 병해충에 저항성이 커지는 특성이 생긴다. 이런 경우 작물 생산량이 늘고 원예 식물은 꽃이 커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들은 번식력을 높이고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인위적으로 배수체를 유도한다. 콜히친이란 약품을 주로 사용하는데, 이 약품을 투여하면 세포분열 중기에 형성되는 방추사 형성을 막아 배수체가 쉽게 형성된다.

연구진은 여러 차례 일어난 배수체화 현상의 결과로 무궁화의 피고 또 피는 무한서화 특질을 갖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연구 결과 무궁화는 개화와 관련된 FAR1 유전자가 다른 식물체에 비해 2~10배가 많은 양상을 보였다. 식물은 배수체화가 일어나면 다시 정상적 이배체로 돌아가려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유전자가 손실되는 이배체화 현상이 생기지만 무궁화는 결실이 일어나지 않고 개화 유전자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배수체화 현상은 어떤 환경에서 일어나게 된 걸까? 연구진은 한반도 빙하기가 그 열쇠라고 밝혔다. 목화와의 종 분화가 일어난 때는 한반도 지역 평균 기온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었다. 무궁화가 자라기 적당한 온도는 30℃인데 비해 낮은 온도가 유지되고, 빙하로 인해 생물체 사이 이동이 제한된 상황 때문에 무궁화가 독특한 유전자 변화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또 무궁화 개화 유전자 외에 병저항성 유전자에서도 특이하게 증가한 유전자군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이번에 밝혀낸 무궁화 개화 매커니즘을 바탕으로 다른 식물 개화와 관련된 연구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아직까지 유전체 해독이 완료되지 않은 배수체 작물인 옥수수와 밀 등의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무궁화는 예부터 동의보감 등에서 언급된 약재로 피부 질환, 두통, 불면증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 최근 무궁화에서 추출한 시리아쿠신 성분에 피부 노화 억제 효과가 있으며 특히 흰 무궁화에서 추출한 시리아쿠신에는 골다공증 억제 효과가 있다고 밝혀져 의학계 관심을 받고 있다. 무궁화를 논밭 주변에 심어 해충을 몰아내는 무궁화 농법이나 화장품 원료 등으로 이용이 다양해지고 있다. 무궁화 유전체 연구가 생물자원 무궁화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무궁화는 어떤 비밀을 또 품고 있을까?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