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신고립주의 파고, 과학기술 혁신으로 넘어서자

[ET단상]신고립주의 파고, 과학기술 혁신으로 넘어서자

도널드 트럼프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트럼프의 미국`에 대한 전망과 우려는 당선 직후부터 쏟아져 나왔다. 그 핵심은 자국 우선주의, 국익 중심주의를 표방한 신고립주의(neo-isolationism) 확산일 것이다. 미국 국민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글로벌 이슈에 대한 미국의 개입에 따른 비용이 이익보다 크며,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경제 번영보다 자국 내 불평등을 확대시켰다고 판단했다.

사실 이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의 영국, 개헌 국민투표가 부결된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각국의 정당은 반유럽연합(EU)과 반세계화를 기치로 국민의 지지를 모으고 있고, 이는 전 세계로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50%에 육박할 정도로 대외 의존도가 높고 동북아 안보 상황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신고립주의로의 대외 여건 변화는 우리나라에도 분명 커다란 도전일 것이다. 여기에 정치권의 리더십 변화까지 앞두고 있는 현 상황과 맞물리면서 신고립주의 확산 불안감은 한층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신고립주의 확산에 마냥 불안해하기만 할 게 아니라 그 본질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국가의 역량과 지혜를 모아 대응책을 마련해서 당면한 불확실성을 효율 관리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

거시 관점에서 오늘날의 신고립주의가 세계 경제에 미칠 여파는 우려만큼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주된 이유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전 세계 경제산업 구조의 지각 변동에서 찾을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은 연결, 공유, 융합의 혁명에 있다. 이 혁명은 세계를 빠르게 하나의 경제산업 생태계로 묶어 나가면서 기술과 산업 간 경계까지 허물고 있다.

모든 사람과 사물이 하나로 연결돼 생산과 소비 시스템이 효율의 정점을 치닫고 있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넘어 두뇌까지 빠르게 대체해 가고 있는 이 시대에 저임금 일자리 유턴을 위한 제조업 리쇼어링(reshoring)과 같은 보호무역 정책이 미칠 파급 효과는 우려만큼 크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와 함께 미국·중국·유럽 등 주요 경제권과 이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본격 시행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무산 위기의 일본, 신고립주의 중점 견제 대상인 중국과의 글로벌 경쟁에서 분명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강도 높은 주력 산업의 체질 개선과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핵심 기술에 역량 확충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고착화된 너트크래커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트럼프노믹스의 본격 시행에 따라 전기자동차, 신재생에너지 등 당장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적은 미래형 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원이 약화될 것이란 전망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이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우리나라가 미래 산업의 글로벌 주도권을 확보하는 호기로 활용할 수 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노믹스 등 신고립주의 정책은 글로벌 인재 유치 경쟁에도 일대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측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 과학자들이 미국 내 연구를 위해 사용하는 JI 비자(교환방문 비자) 프로그램을 종료시키겠다는 언급을 한 바 있다. 3만여명에 이르는 영국 내 EU 출신 연구자도 브렉시트 영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압도한다. 특히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등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핵심 기술 분야의 젊은 글로벌 인재 유치에 어려움을 겪어 온 우리 입장에서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브렉시트 등 선진국의 브레인(우수 인재) 유출 상황을 코리아엔터(Korea+Enter) 전략으로 발빠르게 대응, 국내 젊은 연구자의 유턴은 물론 재능 있는 글로벌 인재를 적극 유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한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돌이켜보면 인류 역사는 개방과 고립이 반복되며 발전해 왔다. 춘추전국시대 진나라는 백리해(百里奚), 건숙(蹇叔) 등 타국의 인재를 널리 등용해 국가 역량을 키워 통일의 대업을 이뤄 냈다. 반면에 정화(鄭和)의 원정을 통해 동아프리카에까지 위세를 떨친 명나라는 왜구의 약탈 등을 이유로 바다를 통한 무역을 금하는 `해금정책`을 펼친 결과 서구 열강과의 경쟁에서 뒤처지는 심각한 어리석음을 범하고 만다. 결국 신고립주의 추세가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하나된 지구`라는 도도한 흐름을 막아서지는 못할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호는 신고립주의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격랑 속에서 과학기술 혁신이라는 튼튼한 돛을 달고 미래의 바다로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 지나간 역사가 증명하듯 시대와 사회 변혁의 돌파구는 결국 과학기술과 혁신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병권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원장, bglee@kis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