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큰 정부, 작은 정부가 아닌 '절도 있는 정부'

[곽재원의 Now&Future]큰 정부, 작은 정부가 아닌 '절도 있는 정부'

대통령 선거일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지금 안보 문제와 맞물려 경제 활력을 되찾는 게 급선무인 가운데 대개혁 관련 논의와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선택으로서 여러 개혁 시책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은 개혁의 '각론'이 아니다. '총론'이다. 우리는 개혁이 왜 필요한가, 미래 한국의 모습은 어떻게 그려야 하는가, 어떤 나라로 만들 것인가 등 '개혁의 국가상'이 절실한 시점이다.

대선에 기대는 것은 이러한 국가 과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정치 리더십이다. 10년 전 일본 정치가 몹시 흔들리고 경제가 침체에 빠짐으로써 국가 쇠망론까지 나왔을 때 마침 일본을 방문한 폴 케네디 미국 예일대 교수는 일본 쇠퇴의 근본 요인을 “정치 리더십의 상실과 함께 1980년대 이후 일본과 일본인의 명확한 국가 목표가 없어지면서 나라가 수렁에 빠지고 국민이 분열, 개혁에 필수인 국민들의 결속이 풀어졌다”고 지적했다.

'대국의 흥망'을 쓴 역사학자 케네디 교수가 요즘 한국을 본다면 똑같은 말을 할 것 같다. 외국 언론들은 한국이 정치와 경제, 사람들의 삶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큰 기로에 섰다고 보도하고 이러한 난국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 새로운 정치 지도자를 뽑는 대선에 주목하고 있다.

대선 논전은 크게 2개 프레임으로 펼쳐지고 있다. 경제·사회 분야에서의 큰 정부와 작은 정부 논전, 대북 정책 등 안보 분야에서의 진보와 보수 논전이다.

우선 정부의 실패를 지적하며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작은 정부론, 반대로 시장의 실패를 들며 정부에 맡겨야 한다는 큰 정부론의 각축전이다. 경제·사회 격차 시정과 경기 대책이 절실한 시점인 만큼 큰 정부론이 우세한 상황이다. 정부에 의한 소득 재분배를 포함한 복지정책의 필요성에선 더욱 그렇다. 실제로 지난 20년 가까이 정부의 모습을 보면 진보 성향의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큰 정부를 지향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반대로 작은 정부를 지향할 것으로 봤지만 역시 큰 정부를 택했다. 성향은 보수지만 박정희식 정부 주도의 개발 경제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간 경쟁을 위축시켜 가며 공무원 권한을 확대해 온 큰 정부 아래에서 사회 보장은 훨씬 나아졌는지, 격차는 줄어들었는지, 경기 대책은 충분했는지 점수는 어떨까. 높은 점수는 주기 어렵다.

큰 정부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격차 시정과 경기 대책이 항상 큰 정부에서만 가능한 게 아니라는 의미다. '작은 정부'와 '큰 복지'는 양립할 수 없는가.

이 논쟁은 비단 우리니라만 하는 게 아니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첫 취임 연설에서 “큰 정부인가 작은 정부인가가 아니다. 문제는 정부가 기능하는지 못하는지다”라고 역설했다. 실제로 그는 환경 분야를 비롯한 신산업 발전 지원, 의료제도 개혁에선 큰 정부를 택했다. 무역 등에선 글로벌 스탠더드를 내걸고 시장 원리와 경쟁 원리를 중시하는 작은 정부를 따랐다.

지금은 규제와 자유, 계획과 경쟁 간 밸런스를 취한 '절도 있는 정부'가 세계 대세다. 안보 논전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의 대북 정책은 김대중 정부의 '햇빛정책', 노무현 정부의 '포용정책',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 정책',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지나왔다. 보수와 진보는 과거를 놓고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있다. 4대에 걸친 이들 정책은 시점마다의 명분과 논리를 담은 서로 다른 유산이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대북 정책 방향은 진보와 보수를 아울러 진영 논리를 극복하는 통일 정책 과제를 만드는 데서부터 가닥을 잡아야 할 것이다. 이 역시 '절도 있는 정부'라야 가능한 일이다. '큰 정부는 진보, 작은 정부는 보수'라는 등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21세기 한국의 국가전략' '한국 재창조' '한국 재생의 조건' '4차 산업혁명과 국가전략' 등 수많은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다. 대한민국이 새로운 발전 단계를 향하고 있는 희망이 엿보이는 징조다. 이를 현실로 끌어당기는 일은 국가 리더의 몫이다. 난국 한가운데에서 권익 정치를 단절하고 국가 과제를 실천하는 담대함과 결기에 찬 리더의 출현을 고대한다. 절도 있는 정부를 꾸리는 것은 바로 이러한 리더의 대국(大局)관을 상징한다.

곽재원 서울대 공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