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업, 좋은 일자리를 찾아서] <3>주성엔지니어링, 벤처서 글로벌 장비기업으로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위치한 주성엔지니어링 (사진=주성엔지니어링)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위치한 주성엔지니어링 (사진=주성엔지니어링)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위치한 주성엔지니어링 본사 입구에는 대형 태극기가 걸려있다. 어떤 날은 대만 청천백일기가, 어떤 날은 중국 오성홍기가 태극기와 나란히 걸린다. 어떤 국가의 기업이 주성엔지니어링과 긴밀히 협업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올해 주성엔지니어링은 오랫동안 공들인 중국 디스플레이 시장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다른 디스플레이 장비 기업보다 중국 진출이 늦었지만 앞선 기술력으로 현지 시장에서 긍정적 평가를 축적해 나가겠다는 자신감이 크다.

주성엔지니어링은 대한민국 대표 1세대 벤처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첨단 기술의 정점인 반도체 분야에서 전공정 장비를 국산화하고 해외 유수 장비기업과 어깨를 견줄 정도로 성장했다. 반도체 기술력을 바탕으로 디스플레이와 태양전지 분야에서도 높은 기술력을 국내외 시장에서 인정받았다.

주성엔지니어링 직원들이 연구개발(R&D)센터에서 반도체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전자신문DB)
주성엔지니어링 직원들이 연구개발(R&D)센터에서 반도체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전자신문DB)

◇한계 깨는 '혁신'으로 기술 경쟁력에 사활

주성엔지니어링은 매년 매출의 10~20%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한다. 매출 1000억~2000억원대 중견기업이 매년 10% 이상 비용을 연구개발에 쏟아붓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기술 난도가 높아질수록 연구개발 기간이 길어지고 신기술이 상용화에 실패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당장 상용화에 필요한 단기 연구에 집중하고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중장기 연구개발에 인색해질 수밖에 없다.

1995년 회사를 창업한 황철주 대표는 늘 '혁신'을 강조한다. 1985년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에 장비 엔지니어로 입사한 후 외국계 장비기업을 거쳐 주성엔지니어링을 창업하기까지 그의 성장동력은 고정관념과 현재의 기득권을 깨뜨리려는 '변화'였다.

당시 국내 반도체 기업은 외국계 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전적으로 의존했다. 첨단 장비 개발은 한국이 할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는 외국계 장비회사에서 근무하며 쌓은 지식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창업 후 핵심 공정인 증착장비를 국산화했다. 난도 높은 증착장비 국산화에 성공하고 국내 고객사를 늘려나갔다. 창업 5년 만인 1999년 코스닥에 상장했다.

혁신과 변화를 동력으로 기술 경쟁력 확보에 주력한 결과 주성엔지니어링은 2016년 기준 특허 2005개를 보유한 '특허기술 부자'가 됐다. 2010년부터 국내 장비 기업이 태양광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대했다가 전방 시장이 기대 이하에 그치면서 큰 손실을 입을 때도 주성엔지니어링은 연구개발 비중을 70% 수준으로 늘렸다. 적자지만 어려움을 헤쳐 나갈 방법은 빠른 신기술 개발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기술 개발에 매달린 결과, 반도체·디스플레이용 원자층증착(ALD) 장비를 상용화했다. ALD는 최근 주성엔지니어링의 대표 제품이 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22년간 세계 최초 제품·기술 10개 선보여

주성엔지니어링 강점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태양광, LED와 OLED 조명 분야 핵심 기술을 융합해 시너지를 내는 것이다. 서로 필요한 기술을 활용할 수 있어 이를 토대로 기존에 없는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개발해낸다. 자연스럽게 개발에 걸리는 시간도 줄어든다.

주성엔지니어링은 반도체용 화학기상증착장비(CVD)를 국산화한 뒤 국내 시장점유율 1위를 유지했다. ALD 장비를 세계 최초로 양산화 한 이후 반도체사업 매출 100%가 ALD에서 나온다. 디스플레이 장비사업에서도 ALD 매출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특히 세계 처음으로 개발한 공간분할플라즈마화학증착(SDPCVD)은 낮은 온도에서도 화학물질을 웨이퍼에 균일하게 증착할 수 있는 장비다. 실리콘산화막, 실리콘질화막, 금속막, 하이케이메탈게이트(HKMG) 등 다양한 소재를 증착할 수 있고 플라즈마화학증착(PECVD), 저압화학기상증착(LPCVD), 원자층증착(ALD) 등 다양한 공정에도 적용할 수 있다.

반도체 장비 기술력을 바탕으로 TFT LCD용 PECVD 장비를 개발해 2002년 국내 최초로 양산에 성공했다. 2005년에는 8세대 규격 장비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태양전지 장비 분야에서도 박막형과 결정형 태양전지 기술을 모두 갖추고 시장 변화에 대응했다.

주성엔지니어링이 지난 22년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제품과 기술은 총 10개다. '세계 최초 기술, 세계에서 단 하나(World's 1st Technology, Only 1 in the World)'를 슬로건으로 삼고 기술 차별화에 매진하고 있다.

표. 주성엔지니어링의 특허 수 추이 (자료=주성엔지니어링)
표. 주성엔지니어링의 특허 수 추이 (자료=주성엔지니어링)

최근에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성과를 높이고 있다. 주 고객사인 LG디스플레이 투자가 증가한 것은 물론 새롭게 중국 패널 제조사를 고객사로 확보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장비 사업은 일찌감치 대만 등으로 고객사를 다변화했지만 디스플레이 사업은 상대적으로 경쟁사보다 진입이 늦었다. 주성은 장비 공급뿐만 아니라 고객사의 미래 기술 개발에도 참여하는 등 협력 수위를 높이고 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 (사진=주성엔지니어링)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 (사진=주성엔지니어링)

◇황철주 대표의 경영 키워드 '누구보다 앞선 혁신'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는 평소 “변화하는 만큼 성장하고, 차별화한 만큼 성공한다”고 강조한다. 주성의 모든 임직원이 현재의 기득권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미래를 선점하는 혁신으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자는 뜻이다. 황 대표가 회사를 창업하고 국산 기술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맞닥뜨렸을 때, 고객사 이탈과 시장 침체로 위기를 맞았을 때 회사가 일어난 동력은 변화와 혁신이었다.

가장 먼저 기술 진화를 예측하고 시장을 선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아이디어를 세계 처음으로 제시하고 이를 시장에 가장 먼저 선보여 1등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들보다 먼저 해내면 혁신, 나중에 하면 모방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황철주 대표는 “누가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빨리' 하느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국 중견·중소기업이라서 글로벌 기업과 맞경쟁하기 힘들다는 선입견을 깨고 세계서 '가장 먼저'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선보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주성은 시장 변화보다 한발 앞서 자체 기술을 개발해 성공한 사례를 다수 만들었다. SD(Space Divided) 기술, LSP(Local Space Plasma) 기술, 대형 디스플레이 패널에 ALD 기술 적용, 세계 최초 반도체 ALD 장비 양산 성과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혁신의 노력에 빠른 속도까지 더한 결과 세계 최초로 개발에 성공한 제품과 기술이 10개에 달한다.

황 대표는 이런 변화와 혁신을 이끄는 원동력이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어렵고 힘든 시도를 거침없이 할 수 있는 기업 문화를 만드는 데 공을 들인다. 주성 구성원 모두가 세계 최초 기술을 개발해 세계 유일의 제품을 만들고 이 과정에서 성공과 행복을 찾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황 대표는 “1세대 벤처 기업들이 창업할 당시 한국 사회는 경제적으로 부족했지만 지금은 풍족한 환경에서 성장한 인재가 대부분”이라며 “때문에 이제는 '지식 경쟁력'이 아닌 '정신의 경쟁력'이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