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애플이 삼성 부품을 더 늘리는 이유

[데스크라인]애플이 삼성 부품을 더 늘리는 이유

시장 작동 원리는 신기하다. 돈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옥석 구분하듯 착착 가려낸다. 가끔 이런 질문을 던져 본다. 뉴스 콘텐츠는 유료화가 힘든데 동영상(VoD) 콘텐츠는 유료 서비스가 가능한가. 돈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기준은 무엇인가.

여러 기준 가운데 명확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대체재 유무다. 한국 언론은 비슷비슷한 뉴스를 쏟아낸다. 특정 매체가 유료로 전환하더라도 대체할 무료 뉴스가 넘쳐난다. 소비자가 굳이 돈을 주고 볼 필요를 못 느낀다. 반면에 TV드라마는 다르다. SBS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수목드라마를 MBC나 KBS에서 찾아볼 수 없다. SBS 수목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 본방송을 놓치면 유료 VoD를 구매하게 되는 이유다.

중국 시장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힘들다. 언론에서는 연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그런데 꼭 사드 보복 때문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자동차, 배터리, 휴대폰 부품, 유통 등 타격을 받은 분야 상품이나 서비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중국에 한국 상품을 대체할 로컬 상품이 있다는 점이다. 사드 보복과 별개로 값싼 중국 로컬 상품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고 진단하는 전문가도 많다. 반면에 대체재가 없는 메모리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는 어떤가. 사드 보복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국 정부가 현지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여러 인센티브까지 제시한다.

사드 보복은 우리 산업의 현주소를 직시하게 해 준다. 강점이 무엇인지, 약점이 어디에 있는지. 그래서 따끔한 예방주사가 될 수 있다. 한국 산업은 서서히 데워지는 냄비 안 개구리와 같았다. 위기가 엄습하고 있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다. 사드 충격파에 이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산업 전략부터 확 뜯어고쳐야 한다. 그동안 A부터 Z까지 육성하겠다는 백화점식 전략은 이젠 버려야 한다. 중국이나 다른 나라가 대체할 수 없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미국, 일본 등에 아직 의존하는 상품을 대체할 전략도 필요하다. 한쪽에서는 멀찌감치 달아나면서도 한쪽에서는 빠르게 추격하는 '투 트랙' 전략이 절실하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같은 산업은 삼성이 구사한 '초격차 전략'으로 가야 한다. 기술과 생산성에서 압도해야 대체재가 발을 붙일 수 없다. 이런 전략엔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대규모 연구개발(R&D)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규제도 과감하게 혁파해야 한다. 지금처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투자할 만큼 했다는 식으로 접근하거나 각종 규제로 옭아매면 곤란하다. 그러다간 반도체, 디스플레이마저도 중국 대체재에 따라잡힐 수밖에 없게 된다.

하나 더 중요한 전략은 수입산 대체재 개발이다. 한국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후방산업이 여전히 취약하다. 국산화가 진전됐다곤 하지만 껍데기만 국산일 때가 많다. 부분품이나 핵심 재료는 여전히 수입한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로 번 외화가 후방산업에서 다시 빠져나간다. 뒤쪽이 뚫린 그물로 고기를 잡는 것과 같다.

애플이 차세대 아이폰에 한국산 부품 비중을 더 늘렸다. 그것도 스마트폰 시장의 최대 라이벌인 삼성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더 많이 구매했다. 애플 입장에선 다른 회사 제품을 쓰고 싶지만 대체재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산업 구조는 이처럼 대체재가 없는 독보 산업 중심으로 재편돼야 한다. 제2, 제3 사드 보복에도 거뜬히 버틸 수 있는 핵심 근력부터 키워야 한다.

장지영 미래산업부 데스크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