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무게의 강철보다 강하면서 고무보다 유연하다. 탄성이 좋아 평소 길이의 4배나 늘어나는 것은 물론 질기기까지 해 방탄복을 만드는 데도 쓰인다. 인간의 면역체계를 자극하지 않아 인공장기의 소재로도 활용될 수 있다. 꿈의 천연섬유인 거미줄 이야기다.
현재 지구상에는 약 4만 5천여 종의 거미가 살고 있다. 3억 8천만년 동안 수많은 진화를 거치며 발달해 온 거미줄은 우리 생각보다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기에 그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예를 들어 박테리아와 곰팡이를 억제하는 거미줄은 의학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충분하다.
이론일 뿐이지만, 거미줄로 만든 로프는 비행 중인 제트여객기를 낚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렇게 거미줄만큼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소재는 많지 않다. 하지만 거미줄의 이 신비한 힘이 어디서 온 건지 밝혀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거미줄 유전자 분석이 어려운 이유
모든 거미줄은 다양한 단백질들을 맞춤형으로 연결해 만들어 진다. 각각의 단백질은 신축성, 탄력성 등 거미줄의 용도에 알맞은 속성을 부여한다. 문제는 반복되는 연결 구간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
미국자연사박물관의 거미줄 유전학자 셰릴 하야시에 따르면 같은 거미가 만드는 거미줄이라도 드라마틱할 정도로 아주 다른 연결 구조를 수백 번 반복해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한다. 먹이 포획, 알 포장, 이동 등 등 다양한 거미줄의 용도를 수행하기 위해서다.
놀라운 것은 그 수많은 단백질 구조들이 단 하나의 유전자 군을 바탕으로 진화됐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유전자를 분석하면 거미줄의 비밀을 파헤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마침내 거미의 유전체 분석을 통해 거미줄의 복잡한 분자구조를 밝혀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의 연구원들은 2014년부터 거미 70종의 유전자 3,400개를 비교 분석하는 고된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기존의 생각보다 더 많은 유전자가 거미줄 만들기에 관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에 따르면 거미의 유전체에서 거미줄 및 그 접착력(potential silk and glue components)과 연관된 유전자만 총 209개인 것으로 드러났다. 예컨대 황금원형거미(Nephila clavipes)의 경우, 총 28개의 거미줄 유전자가 있으며 그 중 8개는 과학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발견이었다.
황금원형거미의 유전체를 분석한 펜실베이니아대 연구팀은 약 400개 정도의 짧은 패턴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 이들을 분석하면 유연성, 점착성 등 다양한 거미줄의 특성을 확인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인공 거미줄 가능할까
이제 과학자들의 관심은 인공 거미줄 제작에 쏠린다. 거미는 양식이 불가능하기에 거미줄의 대량생산은 지금껏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 하지만 거미줄의 복잡한 분자구조가 밝혀졌으니 인위적으로 인공 거미줄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이미 암실크, 아디다스, 노스페이스 등 많은 기업들이 거미줄의 분자구조를 모방해 우수한 생체섬유를 만드려는 시도를 해 왔다. 안타깝게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거미줄을 이루고 있는 단백질의 크기가 인체 단백질의 약 2배인 600kDa(kilodalton)에 달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기술로는 이만큼의 단백질을 복제하는 것이 어렵다. 이보다 크기가 작으면 실제 거미줄만큼의 강도와 탄성, 유연성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실망은 금물이다. 관점을 바꿔 거미줄의 특성을 갖는 섬유를 다른 생물로부터 뽑아내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거미줄의 유전자를 누에에 넣어 거미줄의 장점을 가진 실크를 만드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아직은 시기상조지만 구조가 밝혀진 이상 거미줄을 인공적으로 생산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언젠가 스파이더맨처럼 손에서 거미줄을 발사하며 빌딩숲을 날아다닐 날이 올 지도 모를 일이다.
글: 김청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