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125>진대제 한국블록체인협회장 “건전한 블록체인 생태계 목표"

진대제 한국블록체인협회장은 “블록체인 문제가 사회 현안이고 어려운 일이어서 회장직을 맡았다”면서 “건전한 블록체인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정부와 업계간 소통창구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진대제 한국블록체인협회장은 “블록체인 문제가 사회 현안이고 어려운 일이어서 회장직을 맡았다”면서 “건전한 블록체인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정부와 업계간 소통창구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궁금했다. 자타가 인정하는 혁신 아이콘이자 최고 엘리트인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장관(현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이 지난달 26일 출범한 한국블록체인협회 초대회장으로 취임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는 지금 가장 뜨거운 현안이다. 장관 출신이 논란의 중심에 있는 민간단체의 초대 협회장을 맡는 일도 극히 이례다.

진 회장을 1월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빌딩 5층에서 만났다. 그는 무보수 비상근 회장이다.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이 논란의 중심에 선 만큼 회장직을 맡은 그의 표정이 어둡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는 해맑은 표정으로 담담하게 “사회 현안이고 어려운 문제여서 회장직을 수락했다”면서 “건전한 블록체인 산업의 생태계 구축에 노력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진 회장과의 인터뷰는 1시간 30분 동안 진행했다.

-어떻게 협회장을 맡게 됐는가.

▲지난해 12월 협회 발기인들이 나를 찾아와 회장직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2시간여 동안 질의응답 시간을 보냈다. 그다음에 5명이 다시 찾아 왔다. 3시간여 동안 질의응답을 했다.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은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다. 어려운 일이지만 건전한 생태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 회장직을 수락했다. 나는 어디서건 어려운 일을 도맡아 했다.

진 회장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 시절 16MD램 불량품이 나왔을 때 생산 중단과 출하 중지로 하루 수백억원의 매출을 포기하며 6개월 만에 문제를 해결했다. 그는 지금처럼 메모리칩 공급 과잉이면 회사는 망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공로로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이어서 비메모리 부문 전체를 총괄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는 삼성전자 중앙연구소장직을 겸하면서 위기 극복에 총력을 기울였다. 정보통신부 장관 재임 때는 디지털TV(DTV) 전송 방식을 둘러싼 정부와 방송계 간 논쟁을 깔끔히 마무리했다. DTV 전송 방식 재검토는 대통령 공약 사항이었다. 한국이 개발한 휴대폰 무선인터넷 플랫폼 '위피(WIPI)'와 미국 퀄컴이 개발한 '브루'를 놓고 한·미 간 통상 마찰을 빚고 있을 때도 그가 해결사로 나섰다. 진 회장은 당시 미국 국무부 국제정보통신정책조정관인 데이비드 그로스 특임대사와도 만나 두 시간 동안 위피 탑재를 놓고 격론을 벌여 해결책을 찾았다.

-주위에서 회장 취임을 만류하지 않았는가.

▲많은 사람이 만류했다. 가족도 반대했다. 사회에서 논란이 되는 민간 협회의 회장직을 왜 맡느냐고 말했다. 돈과 관계되는 일이어서 좋지 않게 보는 시각도 있었다. 요즘 적폐를 청산한다는데 하필이면 말썽 많은 협회 일을 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나는 블록체인이나 가상화폐와 아무 이해관계가 없다. 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된 후 인사말에서도 이런 입장을 밝혔다.

그가 회장직을 맡자 의견이 두 갈래로 나누어졌다. 왜 그런 결단을 했는지 의아해 하는 이들과 그가 회장을 맡은 만큼 블록체인 기술이 4차 산업혁명의 혁심 기술이 분명하다는 의견이었다. 일부는 이 산업에 투자해도 괜찮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125>진대제 한국블록체인협회장 “건전한 블록체인 생태계 목표"

-협회의 주요 업무 계획은.

▲협회 기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건전한 블록체인 생태계 조성을 위한 자율 규제다. 올 상반기 중에 자율규제안을 발표한다. 윤리 규정도 만든다. 정부가 법을 만들어도 민간 중심의 자율 규제는 계속돼야 한다. 다음은 블록체인 산업을 '제2 인터넷'으로 활성화하는 일이다. 블록체인은 4차 산업혁명 플랫폼이다.

-회장 임기는.

▲3년이다. 임기를 채울 생각은 없다. 내 일도 바쁘다. 자회사가 10개다. 회장직은 무보수 비상근이다. 건전한 블록체인 산업의 생태계를 만들고, 기술은 발전시킬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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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블록체인 생태계는 어떤 것인가.

▲블록체인 응용과 플랫폼, 코인, 채굴, 거래소를 연결하는 산업 생태계가 건전해야 한다.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일본은 지난해 4월 자본결제법을 개정해 가상화폐를 주식처럼 거래한다. 우리도 자본시장법을 손질해서 가상화폐를 준주식 형태로 관리해야 한다. 정부가 거래소를 폐지하는 건 블록체인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예산 집행 같은 공공 분야를 비롯해 환자 관리나 반도체 공정 등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면 좋은 점이 많다. 새로운 업(業) 개념이 등장할 것이다.

-협회 회원사는.

▲창립총회 날 66개 업체가 회원으로 가입했다. 그 가운데 절반가량이 거래소 업체다. 소프트웨어(SW)업체와 대전시도 가입했다.

-협회 조직이 남다르다.

▲협회에 자율규제위원회, 비상임이사, 자문단이 있다. 사단 법인에는 비상임이사를 둔다. 자율규제위원장은 전하진 전 국회의원이 맡았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서동원 전 규제개혁위원장, 형태근 전 방송통신위원 등이 고문으로 참여했다. 비상임이사는 인호 한국블록체인학회장(고려대 교수)이다.

-자율규제 위반 시 조치 내용은.

▲협회에서 할 수 있는 건 제명이다. 자율규제위가 위반 사항을 적발하면 제명한다. 이건 위원회의 독자 권한이다. 회장도 관여하지 않는다. 거래소 임직원도 제재를 권고할 수 있다. 협회에서 제명되면 시장이 불신,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민원센터 운영과 분쟁조정위원회도 설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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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표준화 구상은.

▲미국처럼 주요 가상화폐 가격과 거래 데이터의 합리 타당한 표준 인덱스를 만들 생각이다. 미국은 코인에 등급을 매기지 않는가.

-교육 사업은 언제부터 시작하는가.

▲협회에서 블록체인 교육 과정을 운영할 계획이다. 나도 외부 강연을 할 생각이다. 2월 하순에 SERI CEO에서 700여명 대상의 블록체인 강연을 한다. 금융, 정보기술(IT), 실물경제를 모르는 사람들이 가상화폐나 블록체인과 관련해 피상에 그친 이야기만 한다. 실상을 알면 투기 현상도 사라질 것이다.

-불록체인 발전을 위한 입법화 계획은.

▲정부나 국회에서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협회도 의견을 수렴, 정부나 국회에 전달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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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들이 주의해야 할 사항은.

▲투자는 자기 책임이다. 한 탕을 노리는 묻지 마 투자는 도박과 다를 바 없다. 기술을 알고 투자해야 한다.

-정부에 바라는 점은.

▲정부는 기준을 정하고, 잘못하면 처벌하면 된다. 나머지는 시장에 맡기는 게 최선이다.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지나치게 좌절하지 않았으면 한다. 현실이 어렵다고 희망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 기회는 도전하는 사람을 기다린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 해외 순방을 많이 수행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해외 순방 시 나를 수행단에 포함시켰다. 외교부 장관 못지않게 대통령을 수행했다.

-이유는 뭔가.

▲정보통신기술(ICT) 때문이었다. 우리가 해외에 나가 자랑할 게 ICT밖에 없었다. 노 대통령은 ICT 전문가였다. 정상 간 대화에서 늘 한국 ICT를 자랑했다. 정상회담에 배석한 내게 IT 전략을 소개하도록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정통부를 폐지한다기에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가서 “정통부를 없애면 순방 외교 시 대통령이 가장 큰 손해를 본다”며 반대했는데 듣지 않았다. 노 대통령의 해외 순방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많다.

-세탁기와 태양광 모듈에 가한 미국의 세이프 가드 대책은.

▲과거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이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좀 세게 한 것뿐이다. 내가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을 할 때도 미국이 세이프 가드를 발효했다. 당시 미국에 삼성 TV공장을 지어서 문제를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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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명과 취미는.

▲좌우명은 '일일학 일일신(日日學 日日新)'이다. '매일매일 공부해서 매일매일 새로워지자'는 뜻이다. 어릴 적에 양주동 박사가 하신 말로, 평생 좌우명이다. 신기술, 신제품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디지털 시대에 갖춰야 할 덕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취미는 골프다.

진대제 회장의 이력은 화려하다. 경기고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거쳐 국비 유학생으로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 대학원에서 전자공학 석사, 스탠퍼드대 대학원에서 전자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 논문은 '진대제 이론'이란 제목으로 반도체 교과서에 소개됐다. 미국 IBM을 거쳐 1985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4MD램과 16MD램 개발을 지휘했다. 1987년 이사, 1992년 상무. 1995년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 취임식에서 카우보이모자에 콤비 양복 차림으로 나타나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미래 비전을 발표하는 것으로 취임식을 대신했다. '미스터 칩' '미스터 디지털' 'IT 카우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정통부장관으로 발탁돼 사상 첫 파워포인트 업무 보고와 IT839 전략을 비롯해 u-코리아 전략을 수립했고, 세계 최초로 와이브로와 디지털멀티미디어브로드캐스팅(DMB)을 개발했다. 3년 23일이란 최장수 장관 재임 기록을 세우고 퇴임한 뒤 2006년 10월 투자 전문 회사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를 설립했다. 삼성그룹 기술 대상, 대한민국 과학기술상, 금탑산업훈장 등을 받았다. 저서로 '열정을 경영하라'가 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